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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 중 식곤증에는 헛소리가 최고

by 씀씀


회사에서 보는 창밖은 언제나 반짝거린다. 햇빛은 네온이 따로 없고, 빗줄기는 크리스마스트리에 얹혀진 전구 줄과 다름없다.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은 심심한 거리를 꾸미는 가랜드랄까. 창틀이 액자 프레임이고, 회사는 갤러리며, 창 너머의 저것은 흠결 없는 작품인 것이로구나.


컷! 좋아, 정신승리 완벽해. 의식의 흐름이 모처럼 스무스해.


그럼 이제 그 네모난 환상을 네 눈앞 네모난 노트북에 적용해 보자. 얼마나 흥분되는 일이니. 노트북 프레임은 네가 채우는 것이니, 그 시간만큼은 넌 더 이상 관람객이 아닌 작가, 화가, 예술인, 창조자가 되는 거라구!


읭? 그럴 리 없다고? 노트북에 띄워진 워드는 몇 시간째 흰 바탕이오, 눈치 없는 커서만 깜빡깜빡 부지런을 떤다고?


맙소사... 이렇게 뭘 몰라요. 동네 사람들! 이 녀석 좀 보세요! 여기 무심히 살던 이 친구가 말이죠. 실은 본인 자리를 밝히는, 워드 컬러의 무드등까지 둘 줄 아는 친구였지 뭡니까? 근데 그래놓고는 정작 그 무드를 지만 몰라요. 아, 무드등의 정식 명칭은 블루라이트 차단 필름이라고 하네요.


어디 그뿐이게요. 키보드를 다루는 저 손놀림. 그건 마치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하는 듯, 세상 감미롭고 유려하니. 이 친구 이거 아주, 낭만쟁이. 세상 끼쟁이였구만요.


그래도, 그래서. 다행이구려. 회사가 숨 막히거나 그 일이 고되진 않을 듯 하니. 여어기 하나, 저어기 하나. 본인의 숨구멍 만들어 낼 줄 아는 인재를 두고 걱정이 과했던 듯 하니까.


근데 이 친구 퇴근은, 어째서 아직도 4시간이나 남은 거라오? 출근한 지 열 시간은 된 것 같다는데, 아직도 밖이 훤-하니. 서울도 백야의 도시였던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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