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씀씀 Nov 05. 2024

근무 중 식곤증에는 헛소리가 최고


회사에서 보는 창밖은 언제나 반짝거린다. 햇빛은 네온이 따로 없고, 빗줄기는 크리스마스트리에 얹혀진 전구 줄과 다름없다.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은 심심한 거리를 꾸미는 가랜드랄까. 창틀이 액자 프레임이고, 회사는 갤러리며, 창 너머의 저것은 흠결 없는 작품인 것이로구나.


컷! 좋아, 정신승리 완벽해. 의식의 흐름이 모처럼 스무스해.


그럼 이제 그 네모난 환상을 네 눈앞 네모난 노트북에 적용해 보자. 얼마나 흥분되는 일이니. 노트북 프레임은 네가 채우는 것이니, 그 시간만큼은 넌 더 이상 관람객이 아닌 작가, 화가, 예술인, 창조자가 되는 거라구!


읭? 그럴 리 없다고? 노트북에 띄워진 워드는 몇 시간째 흰 바탕이오, 눈치 없는 커서만 깜빡깜빡 부지런을 떤다고?


맙소사... 이렇게 뭘 몰라요. 동네 사람들! 이 녀석 좀 보세요! 여기 무심히 살던 이 친구가 말이죠. 실은 본인 자리를 밝히는, 워드 컬러의 무드등까지 둘 줄 아는 친구였지 뭡니까? 근데 그래놓고는 정작 그 무드를 지만 몰라요. 아, 무드등의 정식 명칭은 블루라이트 차단 필름이라고 하네요.


어디 그뿐이게요. 키보드를 다루는 저 손놀림. 그건 마치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하는 듯, 세상 감미롭고 유려하니. 이 친구 이거 아주, 낭만쟁이. 세상 끼쟁이였구만요.


그래도, 그래서. 다행이구려. 회사가 숨 막히거나 그 일이 고되진 않을 듯 하니. 여어기 하나, 저어기 하나. 본인의 숨구멍 만들어 낼 줄 아는 인재를 두고 걱정이 과했던 듯 하니까.


근데 이 친구 퇴근은, 어째서 아직도 4시간이나 남은 거라오? 출근한 지 열 시간은 된 것 같다는데, 아직도 밖이 훤-하니. 서울도 백야의 도시였던 겁니까?

작가의 이전글 어떤 청소의 부작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