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퍼지려 하기 전에(6) - 단편소설

by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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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조대의 민박에서 같이 밤을 보내고 사근진에 있는 텐트로 돌아오니 해진과 동규는 막 잠에서 깨어난 얼굴이었다.

“어제 어떻게 됐어. 작전 성공한 거야?” 해진이가 싱글벙글하며 짓궂게 물어왔다. 나는 대답은 하지 않고 그냥 말없이 웃기만 했다. 그 모습을 보고 동규가 말한다.

“해진아 얼굴 보면 모르겠냐? 조만간 청첩장 날아올 것 같은데. 흐흐.”

우리는 라면을 끓여 아침을 해결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텐트를 철거하기 시작했다. 나는 정화의 텐트가 걱정되어서 동기들의 양해를 구하고 정화가 있는 곳으로 갔다. 텐트를 철거해주고 짐을 정리하여 우리 텐트 쪽으로 정화와 함께 돌아오니 동기들은 이미 정리를 끝내고 차를 출발시키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었다.

“기주에게 연락했더니 미정 씨 텐트는 자기가 가져다주기로 했다고 같이 갖고 오라고 하는데.”

“그럼 정화 씨는 망우동에 있는 집으로 바로 가시면 될 것 같아요.” 나는 정화에게 말했다.

“그래 주시면 저야 고맙죠. 너무 신세 지는 게 아닌지 걱정이네요.”

“우리가 남인가요? 조만간 가족이 될 수도 있는데. 당연히 해드려야죠. 안 그래 윤기야.” 동규는 나를 보고 말했다. 그런 동기의 말에 정화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보이자 해진이 동규를 툭 치며 “동규가 성격이 급해서. 이해하세요. 정화 씨.”라고 말했다. 그제야 정화는 웃으며 나를 바라본다.

정화와 내가 뒷좌석에 타고 해진과 동규가 앞에 승차하였다. 우리는 춘천에서 닭갈비로 점심을 먹기로 하고 춘천을 향해 출발하였다. 텐트촌을 빠져나와 해안도로에 진입하였다. 차창 밖으로 사근진 해변을 바라보니 오늘도 일단의 대학생들이 서핑을 하며 추억을 만들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그해 여름이 나에게 슬픔으로 기억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춘천에 도착한 우리는 강원대학교 앞에 있는 닭갈비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대학교 앞은 방학이라 학생들이 많지 않아 한적한 분위기였다. 점심을 먹고 캠퍼스 안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 마신 우리들은 서울로 돌아가기 위하여 주차장 방향으로 이동했다. 주차장 근처에 있는 메타세쿼이아 나무를 본 정화가 말했다.

“나무가 너무 크고 예뻐요. 겨울연가 드라마에서 본 것 같아요.”

“메타세쿼이아는 남이섬이 제격인데. 겨울연가도 거기서 찍었어요.”

“그래요. 한번 보고 싶네요.”

“그럼. 보러 가요. 동규, 해진이도 괜찮지?”

나의 물음에 동규와 해진은 머리를 긁적이며 서로의 눈치를 보다가 해진이 말한다.

“사실. 오늘 여자 친구랑 만나기로 해서 서울 빨리 가봐야 하는 데. 동규도 그렇고.”

“그럼. 우리가 남이섬 가는 배 타는 데 까지 태워줄게. 두 사람 남이섬 구경하고 기차 타고 오는 게 어때. 둘이 데이트도 할 겸.” 동규의 제안에 나는 정화의 눈을 쳐다보았다. 눈 속에 싫지 않은 표정을 보고 나도 그러 마하고 우리는 같이 차를 타고 선착장으로 향했다. 선착장에 내린 나와 정화는 동규와 해진을 보내고 둘이서 배를 타고 남이섬에 들어가기 위하여 승선표를 구입했다.

우리는 남이섬에 가는 배의 티켓을 구입하고 시간이 남아 근처 유원지를 산책했다. 둘이 오붓하게 길을 걸으니 오래된 연인 같은 느낌이 들었다. 승선 시간이 되어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선착장으로 걸어가서 배를 탈 수 있었다. 여름이지만 유람선을 타니 호수의 바람이 불어와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머리띠를 풀은 정화의 머릿결이 바람에 흩날리고 나는 그 모습을 나의 FM2 수동 카메라에 담았다.

“정화 씨 서울 가면 필름 인화해서 뽑아 드릴게요. 제가 사진이 취미라 집에 암실을 만들어 놨거든요. 워낙 인물이 예뻐서 좋은 사진 나올 것 같아요.”

“그래요. 윤기 씨는 서핑 같은 운동도 잘하고 사진 같은 취미생활도 하고 부럽네요.”

“앞으로 저와 함께 같이 취미 생활해요. 정화 씨도.”

“그럴 수 있으면 저도 좋겠네요.” 호수를 바라보며 말하는 정화의 목소리에 왠지 모를 쓸쓸함이 묻어났다. 나는 그런 정화의 반응이 약간 의아했지만 배가 남이섬 선착장에 도착하여 하선하는 바람에 그런 기분은 잊혔다.

남이섬에서 메타세쿼이아 길을 산책하고 겨울연가 촬영지를 둘러보며 오후의 시간을 보낸 우리는 서울로 가는 경춘선 기차를 타기 위하여 춘천역으로 갔다. 그곳에서 청량리 행 경춘선 완행열차를 탑승하니 빈자리가 있어 우리는 자리에 앉아 손을 잡고 창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옆자리에 있는 남학생들이 부러운 듯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정화 씨가 아름다워서 쳐다보는 것 같아요. 남자들이.”

“설마요. 나보다 예쁜 여자들이 쌔고 쌨구먼.” 정화는 말했지만 얼굴에 홍조를 띠며 부끄러운 듯 나를 쳐다보아 나는 귀여운 생각에 그녀의 손등에 뽀뽀를 하고 웃어 주었다. 나는 행복한 기분에 지나가는 간식 카트에서 삶은 달걀과 사이다를 시켜 그녀에게 달걀을 까주고 사이다를 종이컵에 따라주었다. 남은 달걀을 먹고 사이다를 마시자 청량리역에 도착할 시간이 되었다.

나는 망우동에 있다는 그녀의 집까지 바래 주려고 했지만 그녀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하며 나에게 근처에 있는 집으로 먼저 가라고 하여 나는 그녀가 버스를 타는 모습을 보고 청량리 미주상가 뒤편에 있는 아파트로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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