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서귀포와 제주 간 내륙고속도로를 타고 나는 차를 몰았다. 가을에 들어선 제주의 주말 풍경은 단풍 빛깔로 물들어있었다. 그녀가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해서 성판악 정류소에서 잠시 주차를 했다. 정류소에는 주말 한라산 관광을 위하여 관광객을 실어 온 관광버스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는 아침을 먹지 못하고 출발해 배가 고팠다. 정류소 식당에서 한치회와 매운탕으로 허기를 채운 우리는 다시 제주시 방향으로 출발했다. 제주항에 도착하니 한치잡이 배로 가득 찬 항구에서 탐라문화축제가 한창이었다. 바다로 이어지는 개천가에 송어 손으로 잡기 물놀이장이 만들어지고 임시 천막으로 지어진 포장마차 식당이 즐비하게 늘어서 축제 구경 온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우리는 축제를 구경하고 동문재래시장으로 가서 쇼핑을 했다. 난 그녀에게 줄 은갈치와 타르트 세트를 구입했다. “오늘도 좋은 곳 많이 알려준 나의 가이드에게 선물을 주는 거야.”라고 말하자 그녀는 “그렇죠. 난 아저씨의 대리기사이고 가이드였죠.”하며 대답했다. 말속에 약간의 뼈가 있는 것 같아 거슬렀지만 새로운 곳에서 보는 풍물에 눈이 팔린 나는 그녀의 말은 잊어버리고 동문시장을 빠져나왔다.
동문시장을 빠져나온 나는 제주 자연사박물관에 차를 주차하고 박물관 입장을 하였다. 제주의 토속적인 문화와 한라산의 생성과정에 대해 자세하게 전시된 박물관은 제주의 자연과 문화에 대해서 이해가 용이하도록 전시물이 잘 전시되어 있었다. 그녀가 중간중간 내가 모르는 용어에 대하여 설명을 잘해주어 훨씬 더 이해가 잘 되었다.
박물관 투어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우리는 제주시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고기 국숫집에서 고기국수를 먹으며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근처에 있는 칼호텔에 숙박을 정한 우리는 바로 호텔로 들어가기가 시간이 애매해 제주시청 근처에 있는 멀티방에서 그녀가 좋아하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며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제주시청 근처에 있는 멀티방은 제주시청 맞은편에 위치한 5층 건물 3층에 위치해있었다. 한 시간에 만원 정도 하는 사용료로 영화와 인터넷, 텔레비전을 볼 수 있는 시설과 소파와 침구 등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는 방을 대여해 주었다. 방문에 창이 있어 밖에서 안을 볼 수 있지만 대부분 손님들이 손수건이나 타월로 가리면 보이지 않는 크기로 되어 있어 어느 정도 프라이버시는 보장되는 공간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녀 말로는 근처에 있는 제주 대학생들이 연인과 자주 이용하는 장소로 유명하다고 하였다. 우리는 홍상수 감독의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와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시청하였다. 유부남과 젊은 여배우의 불륜이 작품의 줄거리였기에 현재 우리의 상황과 유사하다는 느낌 때문에 자연스럽게 영화의 내용에 몰입한 우리는 손을 잡고 영화에 몰두하였다.
“두 사람은 세상의 편견 속에서 끝까지 잘 살 수 있을까요?”라고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홍상수 감독 정도면 세상의 편견에 좌우되지는 않을 것 같아. 자기만의 세계가 확실한 사람이라 자기의 사랑에 자기의 방식으로 책임을 지지 않을까라고 생각은 드는데... 김민희는 시간이 좀 지나면 마음이 바뀌지 않을까? 늙고 병든 영화감독은 젊은 여배우에게 매력이 없지 않을까?”라고 나는 그녀에게 반문했다.
“김민희는 오히려 진실한 맘으로 홍상수 감독을 사랑하지만 홍상수 감독이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김민희를 지루해하지 않을까요? 이미 여러 번 바람피운 전력도 있고 한 여자에게 머무는 스타일이 아닌 것 같아요 홍 감독은.”그녀가 말했다. 같은 영화에 대하여 이렇게 남녀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멀티방을 빠져나와 오늘 밤 그녀와 사랑을 나눌 생각을 하며 칼호텔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