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어오는 곳(8) - 단편소설

by 하기

8.


칼호텔 20층에 자리 잡은 스위트룸은 창문 쪽으로 제주항의 풍경이 보이도록 배치되었다. 한치잡이 배들이 집어등을 밝히고 도열된 제주항의 불빛이 침실 창문에 달빛처럼 반사되고 있었다.


우리는 카드키로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멀티방에서 영화를 보며 느꼈던 성욕이 호텔방에 들어오자 서로 분출한 듯 우리는 샤워도 하지 않고 침대로 직행하여 사랑을 나누었다. 한차례 정사 후 이불을 덮고 그녀가 말하였다.


“이제 다음 주면 서울로 가시겠네요. 며칠 후면 저만 이곳에 남겠네요.”


“너무 쓸쓸해하지 마. 내가 자주 연락할게. 그리고 기회가 되면 자주 제주도에 내려올게.”


“그러실 필요 없어요. 이제 올라가면 부인하고 잘 화해하세요. 전 제주도에서 스친 인연이라고 생각하시고... 전 아저씨와의 추억을 가지고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여기서 더 나가면 서로에게 상처만 될 것 같아.”


나는 그녀의 말에 “이제 서울 간다고 날 밀어내는 거야. 섭섭한 마음이 드는 걸.”이라고 대답했지만 한편 마음의 짐을 더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가 계속 만나자고 하면 여러 가지로 서울생활이 곤란해질 것 같은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던 나는 그녀의 말에 한결 홀가분한 기분으로 그녀를 다시 안았다. 다시 알몸이 된 우리는 서로의 육체를 탐닉하며 제주항에서의 마지막 밤을 불태우고 있었다.


다음날 우리는 용두암과 근처 해변을 산책하고 제주시내로 돌아와 신비의 도로를 관광하였다. 전날 저녁 마신 와인의 숙취가 있어 아침을 거른 우리는 고속버스터미널 근처의 한식집에서 전주비빔밥과 순두부찌개로 늦은 아침을 해결하였다. 동문시장에서 한라봉 주스와 문어빵을 디저트로 사 먹은 우리는 시장 근처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고 렌터카 대여기간이 마감되어 렌터카 회사로 가서 스포티지를 반환하였다.


렌터카 회사의 버스를 타고 제주공항으로 온 우리는 택시를 타고 서귀포로 향했다. 차 뒷좌석에서 우리는 손을 잡고 있었지만 그녀가 창 밖을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빠진 듯한 표정을 하고 있어 나는 말을 걸지 못하고 눈을 감고 있다가 피곤함에 살짝 잠이 들었다.


“아저씨, 일어나요. 다 왔어요.”하는 그녀의 말에 나는 잠을 깼다.


“어, 미안해. 내가 피곤했나 봐.”하고 나는 택시비를 계산하고 차에서 내렸다.


그녀는 나의 팔짱을 끼고,“아저씨, 이제 체력이 방전됐나 봐. 침까지 흘리고 곤히 자던데. 변강쇠인 줄 알았는데... 실망인걸. 크크크.”하며 그녀는 나를 놀리면서 즐거워하였다.


나를 놀리는 그녀가 밉기는커녕 귀엽기만 하였지만 이제 다음 주면 그녀를 다시 볼 수 있을 가하는 생각에 나는 “오늘 맛있는 거 사줄게. 근사한 데로 가자.”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자기도 조금 피곤하다며 이마트 롯데리아에서 가볍게 먹고 집으로 가자고 하였다.


롯데리아에 간 우리는 모차렐라 버거와 치즈스틱 콜라 세트를 시켜서 둘이서 나눠 먹었다. 그녀를 고금산 밑에 있는 그녀의 원룸에 데려다주고 나는 그동안 고마웠다며 대리비와 가이드 비용을 지불하기 위하여 봉투를 내밀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돈을 받지 않았다. “이 돈을 받으면 아저씨와 나와의 관계가 정말 비즈니스적인 것으로 추억될 것 같아. 난 아저씨와 삼 주간 뜨꺼운 연애를 한 거야. 아저씨도 나를 연인으로 기억해주길 바라.”하는 그녀에게 난 미안한 마음에 “아내가 초기 위암으로 판명 났어. 당분간 자주 연락 못할 것 같아. 너 말대로 아내 병간호하는데 집중해야 될 것 같아.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연락할게.”하며 그녀를 원룸으로 들여보내고 연수원 근처의 라마다호텔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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