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다음날 연수는 오전에 형식적인 시험을 보고 11시에 종료되었다.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하였지만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연수원 통근버스를 타고 제주공항에 도착한 나는 비행기 탑승수속을 마치고 수하물을 부친 다음에 그녀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기가 꺼진 상태였다.
비행기에 타기 전 그녀에게 문자가 왔다. “나의 키다리 아저씨, 저에 대한 부담은 갖지 마세요. 아저씨는 아저씨가 저를 유혹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아저씨 그렇게 행동하게 한 건 저였어요. 제가 요즘 나 자신에 대해 많이 자신감이 없어졌거든요. 그래서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싶었는 데 아저씨가 딱 걸린 거예요. 아저씨 스타일이 맘에 들었어요. 헤어진 남자 친구와 닮기도 했고요. 그래서 아저씨가 부인에 대해 거짓말을 한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거리끼지 않고 데이트를 몰고 간 거죠. 서울 가면 부인한테 잘하세요. 나도 여기서 내 생활에 충실할 테니... 지난 3주간 아저씨 때문에 잠시 여자로서 행복했어요. 그럼 안녕.”
나는 그녀의 문자를 받고 비행기를 타기 전 답문을 썼다.
“너의 마음을 잘 알겠어. 나도 처음에 너의 모습에서 나의 대학교 시절 첫사랑의 모습을 보았기에 너에게 끌렸어. 하지만 나는 홍상수처럼 너를 위해서 나의 모든 것을 포기할 만큼 무모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아. 너의 사랑을 받는 나를 너보다 더 사랑한 것 같아. 비겁한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내 입장에서 내가 너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싶어. 서울에 오면 언제라도 연락 줘. 제주도에서 정말 고마웠고 영원히 잊지 않을게.”
비행기에 타기 전 나는 답문을 보내려고 하다가 보내지 않았다. 답문을 삭제한 나는 핸드폰을 비행기 모드로 전환시키고 김포발 제주항공 비행기에 탑승했다.
김포공항에 내린 나는 공항버스를 타고 귀가했다. 집에 도착하니 아내가 나를 반겨주었다. “사무관 나리 오셨어요. 3주간 연수받느라 피곤하실 텐데... 샤워하고 쉬세요.”아내는 웃으면서 농담조로 나의 사무관 승진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었다. 샤워를 하고 안방에 들어가니 싱글 침대만 있던 안방에 트윈침대가 놓여 있고 나의 잠자리와 아내의 잠자리가 동시에 만들어져 있었다.
“자기가 연수 간 사이에 안방의 싱글 침대는 아버지가 필요하다고 해서 드리고 안방은 다시 트윈침대로 바꿨어요. 부부가 계속 각 방 쓰는 건 안 좋다고 아버지가 자꾸 말씀하셔서... 나도 잠잘 때 자기가 없으니까 외롭기도 하고...” 아내는 평소에 입지 않았던 망사로 만든 나이트가운을 입고 나에게 말하였다.
망사라 몸의 실루엣이 전부 드러나 내가 좋아하던 나이트가운이었다. 신혼 때처럼 아내는 나를 적극적으로 유도했고 나도 오랜만에 안아보는 아내의 몸에 반응하여 우리는 뜨거운 정사를 나누었다. 아내의 얼굴을 보는 순간 제주도에서의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고 나는 눈을 감고 그녀의 알몸을 떠올리며 사정을 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