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서울에 올라온 나는 그 이후 제주도에 다시 연수를 갈 수는 없었다. 서울에서의 생활이 급박하게 나 자신의 모든 것을 몰입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무관이 된 나는 일선 세무서 조사과장으로 발령이 났고 그곳에서 3년의 의무복무기한을 근무하고 세무사 자격증이 나왔다. 세무사 자격증이 나오자 아내와 장인은 기다렸다는 듯 나에게 세무사 개업을 하도록 촉구하였고 나는 세무법인을 설립하여 대표 세무사로 취임하며 자연스럽게 국세청을 명예퇴직하게 되었다.
세무법인 설립에 3억 원을 투자한 장인은 법인의 대표주주가 되어 대부분의 수입을 배당받아갔고 나는 직원으로 채용한 처남과 처조카들의 월급을 주고 나면 국세청에 근무하던 시절의 월급만을 나의 수입으로 가져갈 수밖에 없었다.
하루하루 치열하게 세무사 업무를 해가며 사무실 임대료와 직원들 월급을 주기 위하여 고군분투하는 나의 모습은 국세청에 근무하던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월급쟁이의 생활이었다. 때때로 이런 나의 처지를 비관하며 아내에게 “이럴 줄 알았으면 사무관 승진하지 않고 국세청에 계속 다니는 것이 나을 뻔했어. 시간이 없어서 취미생활도 못하고 여행 한 번 마음껏 못 다니는 대표이사가 무슨 의미가 있어?”하고 푸념하면 아내는 “아니, 그 나이에 할 일이 있다는 게 어디예요. 남들은 다 명퇴하고 집에서 삼식이라고 구박받으면서 산다는 데 당신은 우리 아빠가 차려 준 번듯한 사무실에서 대표이사로 떵떵거리고 일하는 데 뭐가 불만이에요?”하며 나에게 핀잔을 준다.
아내의 이런 반응에 짜증이 나면서도 세무사 개업 시 장인어른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사무실 차릴 엄두도 낼 수 없었던 나로서는 딱히 반박할 말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갱년기에 접어든 아내는 점점 괄괄해져 목소리가 커지고 나를 훈육하듯이 타이르는 경우가 많아 집에 오면 학생이 되어 선생님에게 혼나는 듯한 느낌이 자주 들었다. 더욱이 아내는 계속 직원으로 근무하던 아동복지센터에서 센터장으로 승진하여 기관장이 된 이후에는 사무실이나 집에서 더 목소리가 커지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침대를 마련하여 각 방을 쓰게 된 우리는 다시 섹스리스 부부로 돌아가 있었다.
그녀의 모습을 뜻하지 않게 다시 보게 된 건 3월 31일 법인세 신고 마감일이었다. 여느 세무사 사무실처럼 법인세 신고기한 마감일은 도깨비시장을 방불케 할 만큼 바쁘고 정신없는 하루였다. 직원들은 마지막 서류 정정과 증빙 제출을 위하여 거래처 법인에 계속 전화와 팩스를 통하여 서류제출을 독려하였고, 나는 나대로 마지막까지 한 푼이라도 덜 내려는 법인업체 사장들의 절세 관련 상담을 전화와 인터넷 등으로 하루 종일 해주어야 해서 녹초가 된 퇴근 무렵이었다.
가까스로 업무를 마감한 직원들에게 고생했다고 위로를 하며 퇴근을 위해 사무실을 나오는 순간 아내에게 핸드폰이 왔다.
“아동복지센터에서 직원들과 아이들의 우쿨렐레 공연 연습이 지연되어 오늘 퇴근이 좀 늦을 거 같아요. 저녁식사는 미안하지만 당신이 알아서 챙겨 먹어요.”아내는 미안한 듯 말했다.
“알았어. 좀 일찍 얘기해주었으면 약속이라도 잡았을 텐데... 집에 가서 적당히 챙겨 먹을게.”라고 대답하며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니 집안이 설렁하고 냉장고에 특별하게 요리할 재료도 마땅하지 않아 나는 베란다에 있는 창고에서 컵라면과 묵은 김장김치를 가져와 저녁을 해결하였다. 찬밥을 라면 국물에 말아먹으며 텔레비전을 켜는 순간 그녀의 얼굴을 보고 리모컨을 바닥에 떨어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