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프로그램 제목은 “문화가 산책”이었고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소설가와 대담을 하는 내용이었다.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사람이 그녀였고 남자 아나운서와 여자 아나운서는 연신 그녀를 치켜올리며 대담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작품 제목이 나의 키다리 아저씨라고 하는 데 제가 읽어본 바로는 결혼한 중년 남성과 미혼의 젊은 여성의 러브스토리로 파악되는 데 맞습니까?”라고 여자 아나운서가 그녀에게 물었다.
“네, 표면상의 스토리는 그렇죠.”그녀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제가 알기로는 작가님은 유명한 토속 화가이며 제주대 미대 교수인 남편과 동갑이신 걸로 알고 있는데 남편과의 러브스토리는 아니신가 봐요?”남자 아나운서는 약간 짓궂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소설은 소설일 뿐 현실과 혼동하시면 안 되지요. 남편과의 러브스토리도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상상력과 약간의 경험이 결부된 게 소설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죠.”그녀는 재치 있게 거북한 상황을 빠져나갔다.
여자 아나운서가 계속 물었다. “이 소설을 보면 중년의 남성이 자신의 결혼생활과 젊은 연인을 둘 다 잃지 않으려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는 데... 여자로서 참 한심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사랑은 상대방에 대한 희생과 배려가 있어야 하는 데 남자 주인공 너무 이기적인 것 아닌가요?”
“두 분 다 소설에 몰입해서 읽어 주셔서 감사드리고 다시 한번 현실이 아닌 소설이라고 말씀드리고 싶고... 남자 주인공도 무슨 사정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해요. 100퍼센트 다 소설 속에 드러낼 수 없었지만...”그녀가 대답했다.
“그에 비하여 남자가 자기를 이용하는 것을 알면서도 남자에게 모든 것을 내주는 여자 주인공의 모습에서 모성애가 느껴져요. 오늘같이 맑은 봄날 제주도의 바람처럼 모든 이의 상처를 핥아주며 곪은 부분에 딱지가 말라 떨어지게 만들어 주는 연고 같은 사랑이...”여자 아나운서가 감정에 복받쳐 우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주도의 바람은 두 가지 유형이 있어요. 한여름 태풍처럼 주변과 자신을 파괴시키고 상대방을 밀치는 바람과 밖으로 돌면서 모두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바람. 오늘 서귀포에는 다행히 포근한 바람이 불고 있네요.”라고 말하며 그녀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불어 터진 컵라면 국물에 말아 놓은 밥을 수저로 떠먹으며 자신감이 넘치는 그녀의 미소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z5bayJX4MTg (수현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 감상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