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가객, 남자의 고독과 낭만을 노래하다
궂은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새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이 던지는 농담 사이로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 곳이
비어 있는 내 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밤늦은 항구에서
그야말로 연락선 선창가에서
돌아올 사람은 없을지라도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가 버린 세월이 서글퍼지는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 곳이
비어 있는 내 가슴에
다시 못 올 곳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가수 최백호는 낭만을 노래하는 음유시인이다. 그의 데뷔곡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라는 곡의 가사를 보면 그의 시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드러난다. 랩처럼 읊조리듯 말하는 노랫말에 멜로디는 낭독의 편의를 위하여 입혀진 듯한 느낌이 든다. 언뜻 레너드 코헨의 음악이 연상되기도 한다. 당시에 이런 창법은 상당히 독창적이면서 이색적이었기에 대중들은 선뜻 이 가수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지만 이 노래는 꾸준히 인기를 얻어가면서 1977년에는 그에게 MBC 10대 가수 가요제 신인상을 받게 하며 스포트라이트의 주인공으로 도약을 가능하게 해 준다.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태어난 유복자. 조부는 애비 잡아먹고 태어난 손자라는 이유로 그를 미워했고 그런 시댁을 견딜 수 없었던 그의 어머니는 그를 데리고 초등학교 교사였던 직업을 밑천 삼아 학교의 사택에서 그를 키운다. 남들과 다르게 집이 아닌 사택에서 어머니와 함께 사는 삶은 아버지의 부재와 함께 고독이라는 정서를 그에게 너무 빨리 가르쳐준다. 고독을 벗어나기 위해 기타를 튕기고 그림을 그렸던 소년은 잠시 화가의 꿈을 꾸기도 한다.
그러나 꿈이 익어가기도 전에 폐암으로 어머니마저 여의고 입대를 하는 운명. 군대에서 1년이 되기도 전에 폐결핵 진단으로 의가사제대를 하게 된다. 세상에 혼자 던져진 그는 화가의 꿈을 포기하고 야간업소를 전전하며 노래를 하고 생계를 이어나가게 된다. 춥고 어두운 골방에서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써 내려간 가사에 최종혁의 곡을 입혀 나온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로 세상에 가수로서 출사표를 던지는 그. 어머니의 추억은 자식에게 살아갈 방편을 마련해 준다.
2집에서 그만의 개성으로 '그쟈', '입영전야' 등을 히트시키며 가수로서 입지를 다져가던 중 김자옥이라는 스타 여배우와 결혼을 하게 된다. 세상의 모든 것을 얻는 듯한 행운아의 모습. 하지만 그 행운은 오래가지 못한다. 짧은 결혼생활 후 이혼을 하게 되는 부부. 오래지 않아 다시 둘 다 재혼을 하고 대중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가수로서의 인기도 예전 같지 않게 된다. 생계를 위해 업소를 전전하던 어려운 생활 중 득녀로 인하여 안정된 수입을 원했던 그에게 미국에서 라디오 DJ 제의가 들어온다.
가족을 위하여 도미했지만 미국에서의 생활도 만만치 않기는 한국과 다르지 않았다. 노래를 하고 싶은 마음에 귀국을 하고 영일만 친구 등을 발표하며 다시 인기를 얻기도 하지만 하루하루 생계를 위하여 5군데 이상의 업소를 전전하는 생활은 고달프기만 했다. 하지만 가족과 딸을 위하여 최선을 다했다. 그런 마음을 '애비'라는 곡에 담아 대중들에게 전달하기도 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점점 나이는 들어가고 흰머리가 늘어나는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에 초조해하며 술을 마시던 어느 날 첫사랑 소녀가 생각이 났다. 그 소녀도 어디에서 나처럼 이렇게 늙어갈까? 이런 의문이 명곡의 가사를 탄생하게 했다. 일필휘지로 가사를 쓰고 곡을 붙이고 노래를 발표했지만 반응이 좋지는 않았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그는 이런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묵묵히 가수의 길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노래방 등에서 이 곡의 인기는 서서히 올라가고 있었다. 1995년 이곡의 발표 당시 사회 초년병이었던 나의 직장 회식에서도 나이 지긋한 선배분들이 이 노래를 열창하였던 추억이 생생하다.
그의 데뷔곡처럼 '낭만에 대하여'도 서서히 인기를 끌더니 어느 순간 임계점에 오른 물처럼 끓기 시작한다. 그 방아쇠 역할을 한 것이 김수현 작가가 쓴 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이었다. 드라마 속에서 배우 장용이 평생 가장의 역할에 신물을 내며 힘들어하던 아버지의 회한을 담아 이 노래를 부른 것이다. 대중들은 이 장면에 감동했고 이 노래를 부른 가수에 대하여 궁금해했다. 점점 그에 대한 각종 매체에서의 콜이 늘어나더니 그는 어느새 남자의 고독과 낭만을 노래하는 낭만가객으로 불리며 낭만의 아이콘이 되어갔다.
SBS 라디오 '낭만시대'라는 프로그램 DJ를 하며 미국에서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고 10년 이상 꾸준한 진행으로 인기를 모았다. 젊은 가수들과 다양한 컬래버레이션을 통하여 새로운 시도를 하여 후배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개인전을 열 정도로 미술에 대한 열정도 불태우고 있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접었던 꿈을 70이 넘은 지금 어머니와의 추억이 있는 학교 사택의 나무 그림을 그리며 다시 펼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삶 속에 녹아든 슬픔과 외로움에 지지 않고 끝없이 이를 극복하여 예술로 승화시킨 낭만가객 최백호. 그의 노래는 명곡이 되어 직장과 사회에서 경쟁에 내몰리고 지친 남자들이 위스키 한잔에 첫사랑을 그리워하며 한 방울의 눈물을 흘리는 순간 떠오르는 노래로 영원히 사랑받을 것이다. 한때 우리를 설레게 했던 우리들의 청춘과 낭만에 대하여.
https://www.youtube.com/watch?v=znHnfR0wdXU
최의 낭만
https://www.youtube.com/watch?v=b1f4gsqvGDw
을 노
https://www.youtube.com/watch?v=1-IMW8IljMY
래하는 음유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