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곡의 탄생, 이은하의 밤차

기적소리로 출발한 가요계 디바의 슬픈 인생열차

by 하기

명곡의 탄생, 이은하의 밤차

기적소리로 출발한 가요계 디바의 슬픈 인생열차


멀리 기적이 우네

나를 두고 멀리 간다네

이젠 잊어야 하네

잊지 못할 사람이지만

언젠가는 또 만나겠지

헤어졌다 또 만난다네

기적 소리 멀어져 가네

내님 실은 마지막 밤차

멀리 기적이 우네

그렇지만 외롭지 않네


누군가에게 재능은 하늘의 축복이자 운명의 굴레이다. 가수 이은하에게 중성적이지만 감성이 짙게 베인 허스키 보이스는 그녀만이 가진 음색으로 신이 주신 선물이었다. 매력적인 음색으로 대중에게 어필하며 어린 시절부터 가수로서 러브콜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재능을 발견하고 키워 준 아버지는 멘토이자 스승이면서 그녀의 인생을 부채라는 어두운 운명으로 몰아넣는 인생의 굴레이기도 했다.


아코디언 연주자로 한때 가수 이미자의 반주를 담당하기도 했던 그녀의 아버지는 이은하를 제2의 이미자로 만들고 싶어 했다. 오아시스 레코드 소속 김진규 작곡가에게 그녀를 위한 곡을 의뢰하지만 작곡가는 이은하의 목소리가 이미자의 창법과는 결이 다르다는 것을 간파하고 '님은 먼 곳에'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김추자의 창법을 추천하고 '님 마중'이라는 곡을 만들어준다. 그녀의 나이, 13세. 17세 이하는 상업적인 가수 활동이 금지되었던 상황이라 언니의 주민등록등본을 방송국에 제출하는 방법으로 가수 활동을 시작한다.


그녀를 대중가수로 세상에 알려지게 한 곡은 태정 작사 원희명 작곡의 발라드곡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이었다. 큰 키와 글래머러스한 몸매, 감성적인 허스키 보이스는 이 곡에서 빛을 발하며 이은하 시대가 열렸음을 대중들에게 선포한다. 그 예감은 곧 기적소리와 함께 현실이 되는 데 그녀의 노래 인생, 제1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해 준 밤차였다. 유승엽이 만든 이 곡은 때마침 불어닥친 디스코 열풍과 함께 그녀를 디스코의 디바로 만들어 준다.


디스코는 '토요일 밤의 열기'라는 영화를 통하여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소개되었다. 영화 인트로에서 비지스의 'STAYING ALIVE'라는 곡이 흐르는 거리를 춤추듯 활보하는 남자 주인공의 모습은 대중들에게 디스코의 매력을 한껏 선사한다. 댄스 클럽에서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인 존 트라볼타와 춤을 추는 장면에서 손가락으로 여기저기 찔러대는 모습이 이은하가 밤차를 부르면서 V자로 손가락을 찌르는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그녀를 디스코의 전도자로 각인시켜준다. 세계를 강타한 도나섬머의 디스코곡 'HOT STUFF'와 함께 그녀는 한국의 도나섬머로 불리며 댄스가수로서의 입지를 다진다.


디스코의 열풍은 한국에 디스코텍이라는 클럽문화를 양산한다. 종로 일대에 국일관, 한국관이라는 이름으로 디스코클럽이 문전성시를 이루게 된다. 젊은이들은 군부정권의 압박 속에서 춤을 통해 영혼의 해방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인다. 나는 당시 초등학생으로 직접적으로 클럽에 가는 일은 없었지만 형들과 누나들의 클럽 경험담과 뒷얘기를 몰래 엿듣고 부러워하던 기억이 난다.


이후에도 이은하는 '겨울장미', '봄비', '아리송해'를 히트시키면서 9년 연속 MBC 10대 가수에 선정되고 79년과 84년에 '아리송해'와 '사랑도 못해본 사람은'이라는 곡으로 KBS 최고 여자가수상을 수상한다. 79년에 그녀의 최고의 히트곡은 봄비였지만 경쟁사인 MBC 드라마 주제곡이라는 이유로 KBS에서는 부를 수 없어서 그녀가 직접 작사한 '아리송해'라는 곡으로 최고가수상을 받게 된다. 지금이라면 간장종지 같은 방송국이라고 댓글 테러를 당할 일이지만 그땐 또 그게 당연한 일이었다. 80년대 신군부의 종용으로 TBC가 KBS와 통폐합되면서 고별 방송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이유로 출연정지를 당하는 정치적(?) 탄압을 받기도 한다.


출연정지도 그녀의 인기는 막지 못해 3개월 만에 방송을 재개하고 김창완의 곡 '사랑도 못해본 사람', 장덕의 곡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전영록이 준 '돌이키지 마' 등으로 70년대에 이어 80년대를 풍미하는 디바의 전설을 써 내려간다. 그녀가 직접 작사한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은 그녀의 실제 사랑이야기를 담은 곡으로 지금도 후배들이 리메이크를 계속하는 명곡으로 후배들의 존경과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아버지는 그녀의 결혼을 반대하여 여자로서의 행복을 가질 수 없게 만들더니 사업실패로 진 빛을 모두 그녀에게 떠넘겨 부채탕감을 위하여 끝없이 노래를 하며 전국을 떠돌게 한다. 무리한 공연은 건강에 이상을 가져와 척추 분리증, 스테로이드 과다복용으로 인한 쿠싱증후군을 유발했고 유방암, 관절염 등 끊임없이 그녀의 건강을 위협하는 불행의 씨앗을 낳게 하였다. 그녀는 최근 파산신청을 하고 사찰에서 기거하며 파괴된 영혼과 건강을 치료하고 있다. 그녀가 건강을 회복하고 그녀의 행복을 위해서만 노래하며 말년을 보내기를 그녀를 사랑하는 모든 팬들은 진정으로 기원하고 있다.


그녀가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여도 그녀가 대중들에게 들려준 슬픈 발라드와 아름다운 댄스곡들은 불멸의 명곡이 되어 영원히 대중들에게 회자되며 화려한 불꽃같았던 그녀의 전성기를 추억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멀리서 아스라이 울리는 기적소리와 세상을 향해 당차게 V의 손가락을 날리던 당돌한 모습도 함께...


https://www.youtube.com/watch?v=92LEvQi80wc


https://www.youtube.com/watch?v=vDy-_n5adqY

https://www.youtube.com/watch?v=jxSbcvqT25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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