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라는 타고 난 가수이다. 초등학교 5학년인 1974년에 한국일보가 주최한 제1회 한국가요제에 참가하여 함중아가 작곡한 '종소리'라는 곡으로 인기상을 받고 13세의 나이에 가수로 데뷔한다. '피리 부는 사나이'로 금상을 받은 가수가 당대 최고의 가객인 송창식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재능의 크기를 가늠해볼 수 있다.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하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의 데뷔라 그녀는 앨범 제작보다는 광고음악과 만화 주제가 등을 부르며 청소년기를 보내다 성인이 되어서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시작한다. 1982년 1집을 통하여 가수로서 출발한 그녀는 뜻밖의 곡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다. 군부정권 시절 의무적으로 가요 앨범에 실어야 했던 건전가요. 그 건전가요로 실은 '아! 대한민국'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정수라라는 가수의 이름이 대중들에게 각인되었다.
그녀의 카랑카랑하고 파워풀한 목소리가 건전가요의 의미를 더욱 도드라지게 하여 대중들에게 어필하였지만 이 곡이 5공정권의 각종 관제행사에 널리 쓰이면서 뜻하지 않게 그녀는 어용 가수, 관제 가수라는 이미지를 얻게 된다. 이 이미지는 그녀의 가수로서의 성공과 발전을 시샘하는 이들에게 그녀를 공격하고 비호감으로 만드는 좋은 공격수단이 되기도 한다.
1985년에 김명곤 작곡 박건호 작사 '도시의 거리'로 KBS 최고 여자가수상을 받으며 실력을 인정받는다. 그리고 1986년에 '공포의 외인구단' 영화 주제가인 '난 너에게'로 KBS 최고 여자가수상을 2 연패하며 가수로서 커리어의 정점에 서게 된다. 이 노래는 한때 폴 앵카의 'I don't like to sleep alone'을 표절한 것으로 방송 금지되기도 했지만 현재 법적 문제가 해결되어 공연이나 방송에 문제없이 불리어지고 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을 만났다. 대학교에 다니던 형이 보려고 만화 대본소에서 빌려왔는데 형은 학교일로 바빠서 못 보고 밤을 새워 내가 보게 되었다. 다음날이 중간고사 기간이라 공부 중에 한권만 보고 머리를 식히려고 했는데 아시다시피 만화가 너무 재밌어 중간에 멈출 수가 없었다. 만화를 다 보고 나니 먼동이 터오고 있었다. 덕분에 시험은 망치고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 들었던 아픈 기억이 있다.
만화가 이현세는 이 만화로 만화가로서 출세가도를 달렸고 이 만화는 최근 한국인이 뽑은 최고 인기 만화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공포의 외인구단 이후 나의 학창 시절은 이현세의 까치 오혜성, 허영만의 이강토, 이상무의 독고탁, 고행석의 구영탄 등을 주인공으로 하는 만화를 탐독하는 일로 도배되었다. 덕분에 학교 성적은 급전직하하였지만 지금 이 글을 쓰는데 그 추억이 도움이 되기도 하니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떠오른다.
정수라는 1988년에 '환희'를 대히트시키며 가수로서 그야말로 환희의 해를 보낸다. 때마침 열린 서울 올림픽과 함께 '아! 대한민국'과 '환희'는 경기장 내 응원가로 각광을 받아 끝없이 대중들에게 정수라의 이름을 어필한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끝이 없을 것 같던 그녀의 인기는 의외의 적으로 쉽게 사그라지고 만다. 여가수들에게 치명적인 악성루머가 그녀의 발목을 잡게 된다.
'환희'의 성공 이후 더 큰 무대를 꿈꾸었던 그녀. 하늘이 그 꿈을 시기한 것일까? 미국에서 마이클 잭슨의 형인 저메인 잭슨과의 협업을 통하여 미국 무대 진출을 노렸지만 가시적인 성과 없이 귀국하였다. 그 잠깐의 부재가 이상한 소문을 만들어낼 줄 그녀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녀가 미국에서 재벌 회장의 딸을 낳고 수백억 원의 재산과 병원을 물려받았다는 소문이 사실처럼 떠돌고 있었다. 루머가 그녀의 영혼과 인격을 갉아먹고 있었다. 세상을 향해 더 이상 가수로서 노래를 부르지 못할 만큼 괴로운 나날들. 그 순간 그녀에게 손을 내민 한 남자가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사랑으로 믿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받아들이고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다.
하지만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다고 하던가? 그 선택이 또 그녀를 불행의 구렁텅이로 빠뜨리고 있었다. 장애인인 언니,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남겨진 홀어머니와 가족의 생계를 위하여 초등학생 시절부터 불러야 했던 노래. 결혼을 통하여 그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를 바랐지만 남편의 사업이 부도나면서 그녀는 계속 그 빚을 갚기 위하여 노래를 불러야 했다. 본인이 가수 활동으로 모은 전재산과 부모님의 집까지 경매에 넘어가고 남편과 이혼을 하게 된다.
본인은 노래로 사랑을 위하여 모든 것을 해 줄 수 있는 남자의 로망을 노래했지만 현실은 그 반대였다. 수렁에 빠진 그녀를 살게 해 준 것은 역시 노래였다. 대중들은 슬픈 운명을 가슴에 안고 다시 무대에 선 그녀에게 박수를 쳐주며 환희를 보내주었다. 나이가 들어 더 중후해진 목소리였지만 음색의 파워는 살아 있었다. 신곡도 발표하고 예전 노래도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다. 방송과 공연에서의 러브콜도 끊이지 않고 있다.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그녀. 이제 그녀가 행복한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며 살길 그녀의 팬들은 기원하고 있다. 운명의 장난에 절망하지 않고 자신의 건강과 몸매 관리를 잘하여 대중들에게 노래뿐만 아니라 여자로서 매력도 새롭게 어필하고 있는 그녀. 그녀의 노래 '난 너에게'는 명곡이 되어 아직도 순수한 사랑을 꿈꾸는 모든 청춘들에게 각자의 연인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밀어로 영원히 불리어질 것이다.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고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