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곡의 탄생, 이장희의 그건 너

쎄시봉의 풍운아, 한국 포크음악의 전설이 되다

by 하기

명곡의 탄생, 이장희의 그건 너

쎄시봉의 풍운아, 한국 포크음악의 전설이 되다


모두들 잠들은 고요한 이 밤에

어이해 나 홀로 잠 못 이루나

넘기는 책 속에 수많은 글들이

어이해 한 자도 뵈이질 않나

그건 너 그건 너 바로 너 때문이야

그건 너 그건 너 바로 너 때문이야


어제는 비가 오는 종로 거리를

우산도 안 받고 혼자 걸었네

우연히 마주친 동창생 녀석이

너 미쳤니 하면서 껄껄 웃더군

그건 너 그건 너 바로 너 때문이야

그건 너 그건 너 바로 너 때문이야


전화를 걸려고 동전 바꿨네

종일토록 번호 판과 씨름했었네

그러다가 당신이 받으면 끊었네

웬일인지 바보처럼 울고 말았네

그건 너 그건 너 바로 너 때문이야

그건 너 그건 너 바로 너 때문이야


이제 전설이 된 음악감상실 쎄시봉에 이장희가 나타났을 때 전문가들 반응은 떨떠름했다고 전해진다. 사회를 본 이상벽도, 오디션을 본 사장도 이장희가 성공할 가수라고 판단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장희를 음악으로 이끈 멘토이기도 한 조영남은 이장희에게 노래를 부르지 말라고 조언한다. 놀랍게도 음치라는 이유로. 하지만 대중들의 반응은 달랐다. 그의 음악에 매료되는 대중들의 반응은 한결같이 그의 음악이 기존의 것들과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건 너'가 유행하던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부모님이 좋아하시던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남진의 님과 함께, 나훈아의 고향역 같은 트로트만 듣다가 이장희의 음악을 라디오에서 듣고 하루 종일 따라 불렀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트로트 가요가 엄격한 규칙을 따지는 정형시인 시조와 같다면 이장희의 포크음악은 형식과 규율을 파괴하는 자유시 같은 느낌이었다. 문어체의 고풍스러운 가사를 사용하던 가요에 비하여 일상 속에 사용하는 구어체를 대중가요의 가사로 사용한 것도 신선했다.


이장희는 이후 최인호 원작 이장호 감독의 영화 '별들의 고향'에서 영화음악을 맡으면서 더욱 유명해진다. 영화 주제가인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가 히트하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그건 너'와 마찬가지로 당시 시귀던 여자 친구를 위하여 만든 노래들이 가사의 진정성 때문인지 입소문을 타면서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은 것이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는 후배인 김세환이 이장희로부터 곡을 받아 먼저 부른 것인데 이장희의 당시 여자 친구가 자기를 위하여 만든 곡이라면 본인이 부르라는 말을 해 김세환의 양해를 구해 이장희가 본인의 곡으로 다시 영화에 삽입하게 되었다.


아름다운 여자 친구와 대중가수로서의 인기. 쎄시봉에서 만난 당대 최고의 가객 친구들. 조영남, 윤형주, 송창식, 김세환 등. 인기 영화배우 찰스 브론슨과 같이 콧수염을 기르고 모터사이클을 타고 거리를 질주하던 그는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행복한 사나이였다. 하지만 유신정권과 시대는 그의 행복을 시기하여 망가뜨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포크음악에 담긴 자유정신과 반항정신이 군부정권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그들은 희생양이 필요했다. 오토바이 사고로 생긴 상처를 감추기 위하여 기른 콧수염이 건방져 보였고 가사의 내용도 불량스러워 보였다. 제1타깃이 되기에 이장희는 적격의 외양을 갖추고 있었다. 가요정화운동이라는 명목으로 대부분의 히트곡들이 금지곡이 된다. '그건 너'는 책임전가 풍조 조장, '한잔의 추억'은 음주조장, '불 꺼진 창'은 불륜조장 등의 금지 사유였다.


담배처럼 피우던 대마초를 마약류로 지정하여 가수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처음 구속되어 감금된 사람이 이장희였다. 1호 구금자. 명예롭지 않은 타이틀이었다. 독방에서 올려 본 창 밖 풍경은 회색 빛으로 어두운 미래를 암시하고 있었다. 다른 가수들이 활동제한이 풀려 방송을 재개했을 때도 그는 자기 이름으로 노래를 부르기는커녕 자기가 작곡한 곡도 남의 이름으로 내야만 하는 처지였다. 한국에서 가수활동이 힘들다는 판단으로 때마침 시작된 기성복 시장에 뛰어들어 반도패션 대리점을 하며 사업에서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그의 음악적 재능을 아꼈던 동료들의 부탁으로 작곡만은 계속하여 사랑과 평화에게'한동안 뜸했었지', '장미' 등의 노래를 주어 히트시키고 김태화, 정미조 등 인기가수들에게도 곡을 만들어 준다. 80년대 후반에는 댄스가수 김완선의 3집과 4집에도 참여하는 등 작곡가로서의 활동은 이어간다.


공연 관계로 우연히 미국에 간 이장희는 데스밸리를 보고 미국의 광활한 자연에 매료되어 이민을 결심한다. 그리고 그를 실행하여 L.A. 에 터를 잡는다. 한동안 정착에 고충을 겪다가 로즈가든이라는 레스토랑이 성공하면서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게 된다. 라디오코리아라는 방송국을 개설하여 한국인의 귀와 입이 되어 동포들의 기쁨과 어려움을 같이 한다. 미국 흑인 폭동 사태 시 종일 방송을 하면서 한국인의 어려움을 알린 것이 계기가 되어 조지 부시 대통령의 방문을 받는 등 유명세를 타게 된다.


미국에서의 성공으로 만족할 만 한데 그는 다시 변화를 시도한다. 한국에 왔을 때 가 본 울릉도의 자연에 반하여 울릉천국을 자신의 마지막 귀향지로 결정하고 돈 버는 데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친구들과 자연을 즐기면서 살기로 결심한 것이다. 두 번의 이혼으로 마음에 받은 상처가 결정을 앞당기는 이유가 되었다. 그는 '안녕이라는 두 글자는 너무 짧죠'와 '내 나이 육십하고 하나일 때'라는 곡에서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적이 있다.


그의 귀국이 천운을 만들어 낸 것일까? 그의 귀향과 함께 쎄시봉이 전국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더니 방송 출연 요청이 쇄도하여 그는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조영남이 진행하는 라디오에서 단발성으로 기획한 쎄시봉 친구들의 모임이 화제가 되어 영화까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의 노래들이 후배들에 의하여 리메이크되고 쎄시봉은 전국 공연에 이어 미주 공연 등 전 세계 동포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 정권과 시대에 의하여 중단되었던 가수로서의 꿈을 다시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이름을 숨기고 가요를 만들고 가수임에도 노래를 부를 수 없었던 그의 한이 그의 노래를 사랑하는 대중들에 의하여 치유되는 감격의 시간들이었다.


EDM으로 만들어진 디지털 전자음악이 대세가 된 세상. 통기타 반주와 일상적인 구어체 가사로 우리에게 말을 걸 듯 가슴을 적셔주던 그의 포크송들은 명곡이 되어 대중들의 마음에 진한 감동을 주고 있다. 인생과 사랑, 그리고 음악에 대하여 진정성을 가지고 접근했던 우리들의 아날로그한 이야기가 아직도 세상에는 있다고. 그리고 그 이야기의 주인공, 그건 너라고...


https://www.youtube.com/watch?v=9t8M26W8s4Y


https://www.youtube.com/watch?v=WxR2WH8qGh4


https://www.youtube.com/watch?v=qwZBwEm90uQ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명곡의 탄생, 정수라의 난 너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