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의 본명은 김명옥이다. 나미라는 예명은 성인이 되어 정식으로 가요계에 데뷔하면서 사용하였다. 동두천 미군부대 앞에서 레코드점을 하던 아버지를 둔 나미에게 음악은 공기처럼 다가왔다. 미 8 군부대 공연을 하던 밴드마스터들이 아버지의 레코드점을 드나들며 귀여운 외모의 어린아이가 팝송을 흥얼거리는 모습을 보고 아버지에게 가수의 길을 추천하여 나미는 자연스럽게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나미의 연예계 데뷔는 가수로서가 아닌 영화배우로서 먼저 이루어졌다. '엘레지의 여왕'이라는 영화에서 이미자의 아역으로 노래를 잘 부르는 여자아이가 필요하였다. 나미가 이미자의 아역으로 맞춤이었다. 이듬해 가수 윤복희의 일생을 그린 영화에서 다시 캐스팅되며 아역배우로 대중에게 첫인사를 하게 되었다.
어린 나이에 연예계에 데뷔한 나미는 자연스럽게 학교 공부와는 멀어지고 해피 돌즈라는 여가수 밴드를 만들어 공연을 하면서 남과는 다른 학창 시절을 보낸다. 미국에서 주로 노래하며 월남으로 위문공연을 가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지만 어린 여자아이들이 장기적으로 하기엔 어려움이 많았다. 남동생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향수병으로 고국에서의 활동이 그리웠던 그녀는 해피 돌즈를 떠나고 국내로 돌아와 가수 활동을 도모한다.
이탈리아 출신의 뮤지션 프랑코 로마노의 눈에 들어 1979년 '영원한 친구'로 정식으로 가요계에 데뷔한다. 비음이 섞인 특유의 허스키한 음색으로 대중들에게 어필하지만 후원자인 프랑코 로마노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인기에 큰 힘을 받지는 못하고 대부분의 무명가수들처럼 대중들에게 잊혀가는 운명인 듯했다.
그녀의 이름을 대중들에게 잊을 수 없는 이름으로 남긴 곡은 1984년에 발표한 '빙글빙글'이었다. 재미있는 가사와 함께 독특한 안무와 패션으로 곡의 완성도를 높인 결과 1985년에 빅히트를 기록하고 나미는 80년대 후반을 지배하는 최고의 여성 댄스가수로 발돋움하게 된다. 이어서 '보이네'와 '인디언 인형처럼'까지 계속 히트곡을 내며 여성 댄스가수로서의 전설을 완성하는 나미.
'슬픈 인연'은 댄스가요를 주로 부르던 그녀가 일본인 작곡가 우자키 류도의 선물을 받아 소품처럼 부른 발라드 곡이었다. 하지만 나미는 이 곡을 자기 포트폴리오의 최고 작품으로 만들어 낸다. 아련하게 지나간 사랑을 그리워하는 내용의 가사는 나미의 허스키한 비음과 만나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슬픈 발라드를 완성시켰다. 이 곡에 반한 후배들인 공일오비, 아이유 등이 리메이크 하지만 어떤 것도 나미의 곡 해석력 및 장악력을 넘어 서지는 못 할 정도로 이 곡의 완성도는 음악적으로 최고였다.
나미는 90년대 이후 자연스럽게 김완선, 손담비 등 신인 여가수들의 등장으로 최고의 여성 댄스가수로서의 위치를 물려주고 가요계에서 내려오지만 그녀가 이루어 낸 음악적 성취를 후배들이 따라가기에 벅차 보일 정도로 대중들에게 완성도 높은 음악을 선사해왔다. 매니저였던 사업가와의 늦은 결혼 등 개인적인 사생활이 그녀의 음악적 성취를 가리지 못할 정도로 그녀가 음악에 바친 정열과 노력은 진정성 있는 것이었다.
지금은 아들이 어머니의 길을 이어받아 가수의 길을 가고 있고 나미는 선배로서 조력자 역할을 하며 가수 활동 때문에 하지 못한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아들은 어머니의 명성에 이를 정도로 인기를 얻지는 못하고 있지만 '슬픈 인연'을 부르며 가수로서 어머니에 대한 존경을 나타내는 모습이다. 그녀가 부른 많은 댄스가요들과 슬픈 인연은 명곡이 되어 그 길을 가려는 후배들에게 어두운 밤바다의 등대 같은 역할을 해주고 있다. 그녀가 음악과 만난 인연이 슬픈 인연만은 아니라고 증명이라도 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