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비아 뉴튼 존 Let me be there

세기의 디바 추억과 함께 우리 곁에서 영원히 살다

by 하기

세기의 디바 추억과 함께 우리 곁에서 영원히 살다

명곡의 탄생, 올리비아 뉴튼 존 Let me be there


Wherever you go
wherever you may wander in your life
Surely you know
I'll always wanna be there
Holding your hand
and standing by to catch you
when you fall
Seeing you thru in everything you do

Let me be there in your morning
let me be there in your night
Let me change whatever's wrong and make it right
Let me take you thru that wonderland that only two can share
All I ask you is let me be there

Watching you grow
and goin thru the changes in my life
That's how I know
I'll always wanna be there

Whenever you feel
you need a friend to lean on
here I am
Whenever you call
you know I'll be there


올리비아 뉴튼 존은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외할아버지를 둔 영국의 케임브리지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가족의 이민으로 어린 나이에 호주의 멜버른에 정착하고 호주인으로 살게 된다. 아름다운 금발과 빼어난 미모에 가창 실력까지 겸비한 그녀는 일찍부터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는 가수로서의 삶을 가꾸어 나간다. 존 덴버의 'Take me home, country roads'를 커버하며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리지만 남의 노래를 따라 하는 모창가수로서 한계를 느낀다.


그녀를 대중들에게 커버 가수가 아닌 오리지날리티를 가진 싱어로 인식하게 만들어 준 노래가 'Let me be there'이다. 이 노래는 빌보드 차트 10위안에 진입하며 그녀의 이름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준다. 이 노래에 이어 'If you love me, let me know'가 처음으로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하며 그녀는 미국 가요계에서 컨트리 여성 가수로서 독자적인 자리를 차지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H-CE9OjMlX0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위하여 호주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그녀는 'Have you never been mellow'등을 발표하며 그래미와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를 석권하고 컨트리 가수로서 최정점에 서게 된다. 하지만 그 이후로 발표한 곡들이 예전만큼 인기를 끌지 못하고 30대에 접어들며 가수로서 슬럼프에 빠진다.


슬럼프에서 그녀를 구해준 것은 뮤지컬 영화 '그리스'였다. 6살 연하인 존 트라볼타와 환상의 궁합을 보여주며 30대에 10대 소녀를 완벽하게 구현한다. 그녀의 동안이 영화가 성공할 수 있는 결정적 매력을 만들어 주었다. 극의 후반부에서 'You are the one that I want'를 부르며 기존의 청순하고 귀여운 소녀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섹시하고 관능적인 매력을 어필한다. 타이트한 가죽바지를 입고 담배를 피우는 불량스러운 모습은 이후 그녀가 컨트리송을 부르는 스탠딩 가수에서 성숙하고 색감 있는 노래를 부르는 성인 여가수로 이미지를 변신하는 단초가 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0_hYBHyKk34


뮤지컬 영화 'Xanadu'에 삽입된 'Magic'이라는 싱글을 통하여 변신을 시도한 그녀는 'Physical'을 통하여 가수로서 최고의 성공을 거두게 된다. 원래 이 곡은 티나 터너의 재기곡으로 기획된 노래인데 티나 터너가 데모 버전을 듣고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거절한 사연이 있었다. 같은 기획사 소속이던 올리비아 뉴튼 존에게 기회가 왔지만 그녀도 이 곡의 성공을 반신반의했는데 그녀의 청순한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 퇴폐적인 가사 내용 때문이었다. 하지만 때마침 M-TV가 개국하면서 섹시하고 코믹한 콘셉트의 뮤직비디오가 공전의 화제를 몰고 온다. 무려 10주 동안이나 빌보드 1위를 기록하며 그녀에게 부와 명예를 동시에 가져다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노래는 그녀의 성공을 불가역적이고 독보적인 것으로 완성시킨다.


https://www.youtube.com/watch?v=vWz9VN40nCA


나의 어린 시절 그녀는 원더우먼 역의 린다 카터와 함께 밤마다 마음을 설레게 하는 섹시스타였다. 아마 그 당시 많은 남성들이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며 불면의 밤들을 보냈을 것이다. 만인의 연인으로서 영원히 인기와 동경을 받을 것만 같았던 그녀도 암이라는 질병을 벗어나지는 못하였다. 1992년 유방암 진단 후 그녀의 인생 후반전은 암과의 사투로 점철되었다.


몇 차례의 수술과 항암치료로 성공적인 회복을 한 듯 보였지만 인생은 또 한 번 그녀에게 시련을 준다. 한국계로 10년간 연인이었던 패트릭 맥더모트의 의문의 실종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건강 상의 위기에 이은 실연의 상처는 그녀에게 꽤나 충격을 준 것 같았다. 오랜 시간 우울증으로 시달리게 된다. 하나뿐인 딸과 인생 친구인 존 트라볼타의 위로로 위기를 극복한 그녀는 재혼을 하고 새로운 가족을 구성한다. 가정적 안정을 찾고 전 세계 공연을 다니며 아름다운 음악을 전파한다. 한국에도 두 번이나 방문하여 공연을 한다. 또한 유방암 연구재단을 설립하고 기금을 기부하며 암 연구를 통하여 자신과 같은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회공헌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30여 년에 걸친 암과의 악연은 끝내 그녀의 운명을 조기에 마감시키고 만다. 척수로 전이된 암 때문에 대마초로 통증을 견디던 그녀는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영면하여 하늘의 별이 되고 만다. 아직도 보여주고 들려줄 것이 무궁무진한 그녀에게 73세라는 나이는 너무 이른 나이이기에 팬들의 아쉬움과 슬픔이 배가되는 것 같다.


당신이 있는 그곳에는 암 따위는 없겠죠.
당신은 떠났지만 당신이 남긴 불멸의 명곡들은
영원히 우리들과 함께 살며 당신을 추억하게 할 거예요.
잘 가요 올리비아!!!


https://www.youtube.com/watch?v=fwNst9trP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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