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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기 Nov 01. 2022

바람과 함께 사라진 대면사회의 논리

2022.03.02.~ 03.08

우리 가족 오미크론 투병기

2022.03.02.~03.08


증상을 자각한 것은 월요일 퇴근 후였다. 목기침이 나오고 침을 삼키기가 힘들었다. 혓바닥이 까끌까끌해지며 미각이 둔화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환절기마다 감기에 걸리는 편이었는데 콧물이 나오고 가래가 목에 걸리는 게 주요한 증상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증상이 평소와 달랐다. 마른 기침과 미각 상실은 처음 경험해보는 느낌이었다.


저녁을 먹고 체온을 재자 37.5도가 넘게 나왔다. 아내가 직장에서 받아 온 자가진단키트로 코 안의 검체를 채취하여 매뉴얼대로 액체와 혼합시킨 후 검사기에 세 방울을 떨어뜨렸다. 예상과는 달리 두 줄이 아닌 한 줄이 표시되어 음성으로 확인되었다. 아내와 딸아이 연서와 저녁을 먹고 혹시 몰라 외출은 하지 않고 TV를 보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3.1절 공휴일에 체온이 정상을 유지하여 나는 코로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안심을 하고 마스크를 쓰고 집 근처 천변을 산책하였다. 그래도 될 수 있으면 사람들과 가까운 거리에서 접촉하는 것을 피하고 사람이 없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시 증상이 발현된 것은 그날 저녁이었다. 식사를 하고 두통과 미열을 느낀 나는 체온계로 체온을 재었다. 38도가 넘었다. 자가진단 검사기로 다시 검사를 하니 흐릿하지만 빨간 두 줄이 나타났다.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아내와 연서는 음성이었다. 나는 안방에 들어가서 따로 자고 두 사람은 딸아이방에서 잤다.


수요일 아침 회사에 상황을 알리고 집 근처에 코로나검사지정내과병원으로 가서 신속항원검사를 받았다. 나는 양성으로 나왔고 아내와 연서는 음성이었다. 나는 일단 PCR 검사를 받았고 아내와 딸아이는 내가 확진되면 확진자 동거가족으로 PCR 검사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 최종 결과는 보건소에서 통보해줄 것이라고 하였다. 일단 귀가한 우리는 당분간 내가 안방을 쓰고 아내와 연서는 거실과 다른 방을 쓰기로 하였다.


하지만 이런 각방 생활은 하루도 가지 못해 깨지고 만다. 내가 다음날 보건소에서 확진 판정을 받고 그리고 그다음 날 아내와 연서도 PCR 검사에서 최종 확진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무증상 감염이었다. 전날 아내가 약국에서 패키지로 넉넉하게 약을 구입하여 외출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이렇게 하여 우리 가족 세 명은 오미크론과의 일주일간의 전쟁에 돌입한다. 국가로부터 일주일간 일가족  전체의 자가격리를 명 받은 것이다.


힘들 것이라고 판단한 일가족 자가격리는 단독 격리보다는 수월했다. 나 혼자 안방에서 생활하기가 불편했는데 온 가족이 걸리고 나니 일단 집안에서는 생활의 불편함이 없어졌다. 우리 가족은 그동안 배달앱을 사용하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배달원과 접촉이 불편하여 배달의 민족, 요기요 등의 배달앱을 처음 사용하게 되었다. 매일 무엇을 먹을까 배달앱을 검색하고 후기를 검색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밥을 먹고 나서는 체력관리를 위해서 운동을 하였다. 나는 아령을 위주로 하고 아내는 스쿼트를 했다. 딸아이는 고등학생이라 주로 인터넷으로 동영상 강의를 들었다. 처음에는 증상이 없다가 하루가 지나자 딸아이는 미열이 조금 있다가 해열제를 먹으니까 정상체온으로 돌아왔다. 나도 하루 이틀 증상이 있다가 3 일째부터는 무증상이었다. 다만 아내만이 두통을 호소하고 심한 어지럼을 호소하였다. 가끔 나타나는 이석증이 재발한 것이 아닌가 하였지만 코로나로 인한 후유증으로 보였다.


회사에는 진단서를 카카오톡으로 발송하여 병가를 신청하였다. 일주일 간 옆자리 직원에게 업무대행을 부탁하고 관리자에게 양해를 구했다. 아내도 다니는 직장에 병가를 내고 딸아이는 학교에 결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집에 있는 음식을 해 먹기도 했지만 준비한 게 많지 않아 주로 배달음식을 시켜 먹었다. 삼시 세 끼를 배달시키려 하니 메뉴 고르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뜻 밖에 맛있는 음식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도 있었다. 코로나 이후 배달사업의 번성은 새로운 블루오션을 만들고 있다는 느낌이다. 매장의 크기는 최소화하고 배달 부분에 인원과 경비를 늘려가는 게 요식업계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굉장히 지루한 시간이 이어질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딸아이는 컴퓨터로 넷플릭스 영화를 보고 아내는 거실에서 IPTV에서 못 본 드라마 다시 보기를 정주행 하였다. 나는 새롭게 재미를 붙인 유튜브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주로 소파에서 봤는데 “독거 노총각”이라는 콘텐츠를 재미있게 시청했다.


경남 밀양에 사는 40대 독신남의 일상 브이로그 형식의 방송인데 묘하게 중독성이 있었다. 물건을 구입하고 영수증을 보여주며 “얼마를 소비하였다.”하는 대사와 방송 말미에 있지도 않은 애인이나 여자 친구를 가상으로 등장시켜 전화 통화하는 모습은 우습기도 하고 짠하기도 해서 구독자와 댓글이 많았다. 처음 방송 시에는 찌질한 일상에 대하여 무슨 재미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에 소극적이었던 주인공도 점점 구독자가 늘고 광고 및 협찬이 증가하자 고무되어 방송을 열심히 하는 것 같았다.


구독자수가 15만이 되자 미인 유튜버들이 구독자 증가를 노리고 독거 노총각과 콜라보 방송을 많이 기획하였다. 본인의 집에 찾아온 미인들에게 처음에는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방송을 하더니 많은 경험을 하고 나서 이제는 방송에서 여유 있게 여성 유튜버들과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대견하면서도 방송의 힘이 사람을 많이도 변화시키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최근에는 본인의 저녁식사 과정을 많이 노출하였는데 나도 집에서 독거는 아니더라도 배달음식을 시켜 먹으면서 많은 참고가 되었다. 음식을 먹을 때 쩝쩝대는 소리가 처음에는 듣기 거북했는데 익숙해지자 그 소리를 들으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미각이 자극되며 침이 고였다. 역시 먹방이 대세다.


대통령 선거 전날 격리기간이 끝났다. 투표를 하고 집에 오는 길 다음 날 출근을 해야 하는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일상이 시작되는 것이다. 되찾은 일상이 소중하면서도 한편으론 격리가 계속되어 직장에 가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생겨났다. 하지만 방에만 있지 않고 야외로 나와서 거닐 수 있는 이런 자유가 일주일간이나 속박되었다고 느끼니 격리기간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풍선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코로나로 인해 갑자기 모두에게 닥친 비대면 사회의 현실. 이런 현실이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인간관계가 어떻게 변할지 아직 우리는 모른다. 다만 코로나 이전의 세계는 더 이상 없다는 사실은 확실한 것 같다. 남북전쟁으로 노예제를 근간으로 풍요로운 부를 누리던 미국 남부의 농장주 백인들의 사회가 바람과 함께 사라졌듯이 코로나 이전, 대면 위주의 세계는 펜데믹으로 인하여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코로나 이후의 세계를 대비하는 것이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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