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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기 Sep 16. 2022

작은 것들을 위한 시

레이먼드 카버,  별 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

작은 것들을 위한 시

레이먼드 카버, 별 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집 대성당을 읽으면서 나는 소설은 읽는 것이 왠지 꺼려졌다. 많은 리뷰들을 통해 이미 줄거리는 알고 있었지만 누구나 인생에서 겪고 싶지 않은, 아니 겪지 말아야 할 이야기가 소설 속에 담겨있기 때문이었다. 아들 스코티가 여덟 살 생일을 앞두고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중산층 부부의 평온한 일상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그의 삶은 순탄했고 그로서는 만족스러웠다. 대학, 결혼, 경영학 고급과정 학위를 받기 위해 다시 다닌 일 년의 대학생활, 투자회사의 하위 동업자, 아버지 되기, 그는 행복했고, 지금까지는 운이 좋았다. 그도 알고 있었다. 부모님은 여전히 살아 계시고, 형제자매들은 다들 자리를 잡았으며, 대학 친구들은 모두 사회에 나가 나름의 위치를 차지했다. 갑자기 모든 상황이 바뀌면 한 사람을 꺾어버리거나 내팽개쳐버리는 힘들이 있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지만, 지금까지는 그 힘들로부터도, 또 그 어떤 실제적인 위해로부터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는 집 앞 진입로로 차를 몰고 들어가 주차했다. 그의 왼쪽 다리가 떨리기 시작했다(본문 중에서).


빵집에서 아들의 생일 케이크를 예약하고 집으로 돌아온 앤은 아들로부터 교통사고 소식을 듣고 황망해하는 중에 아들은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 사고 당시 운전자가 아이를 방치하지 않고 빠른 대처를 하였다면 치료가 가능했던 골든타임을 놓쳐버리고 너무 늦게 응급실로 실려간 아들 스코티는 혼수상태에 빠져 깨어나지 않는다. 주치의는 좋아질 거라고 얘기하지만 호전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아들을 두고 집에 갈 수 없었던 앤에게 남편 하워드는 강아지 밥도 줄 겸 잠시 쉬고 오라고 앤을 집으로 보낸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파티에서 피격을 당하여 사경을 헤매는 아들을 간병하는 흑인 가족을 만난 앤. 아무런 이유도, 맥락도 없이 인생이 준 시련에 맞닥뜨린 자들의 동병상련.


그 순간 앤은 무슨 말이냐고 너무도 묻고 싶었다. 그녀는 자신도 같은 종류의 기다림이라는 상황에 처한 이 사람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녀도 두려웠고, 그들도 두려웠다. 다들 그런 공통점이 있었다. 그녀는 그 사고에 대해 더 많은 얘기를 하고 싶었다. 스코티가 어떤 아이였는지 그들에게 더 얘기하고, 또 사고가 월요일, 그러니까 그 애의 생일에 일어났다는 것을, 그런데 그 애는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더 말하지 못한 채 그들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본문 중에서).


반려견 슬러그의 밥을 주고 아들의 소식이 오지 않을까 안절부절못하는 앤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빵집 주인이었다. 그는 당연히 생일 케이크를 찾아가라는 암시를 주지만 아들 때문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앤에게 그의 암시는 오히려 역효과만 낳는다. 그를 뺑소니범으로 오인한 것이다. 차라리 사실대로 말했다면 피했을 오해였지만 사정을 알지 못하는 중년의 독거 노총각인 빵집 주인의 눈치 없음이 상황을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만다.


병원으로 황급히 돌아오는 앤. 하지만 그녀를 맞이한 것은 피격을 당했던 흑인 아이 프랭클린의 사망 소식이었다. 주치의 프랜시스의 위로에도 불구하고 신경과 의사까지 동원되는 아들의 상황이 걱정스럽기만 한 부부. 두개골 골절 때문에 수술이 필요하다는 말에 불안감이 가중되는 순간 아들이 눈을 뜬다. 회복을 기대하던 짧은 시간이 지나고 부부의 기대와는 반대로 아들의 마지막 숨이 멈추는 찰나 부부의 오열이 시작된다.


최종 진단은 히든 오클루젼( hidden occlusion, 눈에 보이지 않는 혈관폐색증상), 백만명당 한 명 정도의 희귀 증상이었다. 정확한 사인을 알기 위하여 부검까지 필요한 상황으로 부부는 정신적 충격을 받는다. 비통함을 안고 집으로 귀가하여 친척과 지인들에게 슬픈 소식을 전해야만 하는 운명을 맞닥뜨린 부부에게 눈치 없이 다시 전화를 하는 빵집 주인. 부부의 분노는 폭발하고 드디어 그의 존재를 인식하는 앤은 하워드를 재촉하여 그의 빵집으로 돌격한다.


이윽고 빵집에 도착한 부부, 서로의 오해를 인지하고 부부의 아들이 죽었다는 슬픈 소식을 알게 된 빵집 남자는 큰 혼란에 빠진다. 그는 눈치는 없지만 악의는 없었던 것이다. 누군들 이 황당한 일을 예측할 수 있었겠는가. 두 부부의 슬픔을 덜어주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그의 마음과 태도에 부부의 화는 점점 사그라든다. 그리고 빵집 주인이 내놓은 위로의 롤케이크를 먹으며 그의 외로운 삶에 동감하고 자신들의 슬픔을 위로받기 시작한다.


빵집 주인이 외로움에 대해서, 중년을 지나면서 자신에게 찾아온 의심과 한계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할 때부터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들에게 그런 시절을 아이 없이 보내는 일이 어떤 것인지 말했다. 매일 오븐을 가득 채웠다가 비워내는 일을 반복하면서 보내는 일이 어떤 것인지. 그가 만들고 또 만들었던 파티 음식, 축하 케이크들, 손가락이 푹 잠길 만큼의  당의(糖衣), 케이크에 세워두는 작은 신혼부부 인형들, 몇백, 아니 지금까지 몇천에 달할 것들. 생일들. 그 많은 촛불들이 타오르는 것을 상상해보라. 그는 반드시 필요한 일을 했다. 그는 빵집 주인이었다. 그는 자신이 꽃장수가 아니라 좋았다. 사람들이 먹을 것을 만드는 게 좋았다. 언제라도 빵 냄새가 꽃향기보다 더 좋았다(본문 중에서).


이 문장이 본문 중에서 가장 감동을 주는 이유는 이 소설을 번역한 사람이 김천의 오래된 뉴욕제과 빵집 아들 김연수 소설가이기 때문 일지도 모르겠다. 이동진 평론가가 팟캐스트 빨간 책방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이 소설을 낭독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타인들의 슬픔을 이토록 관통하는 소설을 써낸 소설가는 어떤 사람일까. 레이먼드 카버는 제재소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이른 나이에 자식을 낳고 가족을 먹여 살리는 가장으로서 운명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남자다. 스콧 피츠제랄드와 헤밍웨이가 귀족적인 직업을 가지고 상류사회에서 셀럽으로서 부와 명예를 차지하며 화려한 삶을 살았다면 카버는 서민으로서 노동자의 삶을 지속하고 돈을 벌기 위하여 장편소설이 아닌 단편소설만을 쓸 수밖에 없었던 슬픈 운명의 소설가였다.


슬픈 운명을 소설을 쓰는 것으로 풀지 못하고 알코올 중독이 되어 두 번이나 파산을 경험한다. 알코올 중독을 극복하지 못하고 끝내 첫 번째 부인인 매리엔 버크와 이혼을 하게 된다. 고든 리시라는 까탈스러운 편집자를 만나 자신의 원고가 반 이상 버려지는 모욕을 받지만 원고료를 받기 위하여 무명 소설가의 슬픈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두 번째 결혼 상대자인 시인 테스 갤러거를 만나면서 그의 운명은 극적으로 반전을 맞이한다. 각종 문학 기금을 받으며 문학에만 전념할 수 있었고 대성당이 퓰리처상에 노미네이트 되고 단편소설의 르네상스를 이끄는 제2의 오헨리로서 문단의 각광을 받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 폐암이 발병한 것이다. 문학적인 성공을 뒤로하고 50세가 되던 해 영혼의 동지이며 문학적 동반자였던 두 번째 부인 테스가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고 만다.


카버는 소설가들의 소설가로도 유명하다. 하루끼가 대표적이다. 그는 미국을 방문할 때마다 카버 소설의 무대가 되는 장소를 방문하고 그를 일본에 초대하여 키가 큰 그를 위하여 전용 침대를 준비할 정도로 그의 소설의 덕후였다. 카버의 병세가 악화되어 방문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대가에 대한 그의 존경심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가장으로서 삶의 무게를 술이라는 도피처로 피하고자 했지만 파산과 이혼이라는 아픔을 겪게 된다. 알코올 중독을 이겨내고 제2의 인생 후반전을 노렸지만 폐암이라는 복병으로 소설가로서 꿈을 피워보지 못하고 죽는 슬픈 운명의 소설가. 글만 쓰고 살 수 있게 되었을 때 이미 그의 인생은 마무리되고 있었던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그의 이름처럼 삶을 파서 새겨 넣은 단편소설들은 명작이 되어 여전히 슬픈 운명을 견디고 있는 대중들에게 위로를 건네주고 있다. 소설 속 빵집 주인이 부부에게 주었던 롤케이크처럼.





뱀다리 : 카버의 "별 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 소설리뷰를 쓰면서 제일 먼저 떠 오르는 제목이 방탄소년단의 노래 제목과 일치하여 링크를 걸어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sX3ATc3F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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