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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기 Sep 21. 2022

소설, 이토록  가볍게 죽음을 이야기하다

요시모토 바나나, 키친

소설, 이토록 가볍게 죽음을 이야기하다

요시모토 바나나, 키친


요시모토 바나나의 아버지는 일본의 저명한 문학평론가이다. 언니는 만화가로 유명하다. 이런 예술적 분위기는 그녀를 문학과 예술 방면으로 이끌었고 그녀도 유전적으로 이 방면에 소질이 있었던 것 같다. 아버지의 서재에서 마음껏 소설을 읽으며 자란 여학생은 노벨문학상을 꿈꾸며 니혼대학 문예학부에 입학한다. 졸업작품으로 제출한 '달빛 그림자'라는 중편이 우수작품에 선정되며 소설가로서 가능성을 인정받는다. 붉은 바나나 꽃을 좋아하여 필명을 바나나로 정하고 발표한 소설 '키친'이 카이엔 신인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단에 성공한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부엌이다.
그것이 어디에 있든, 어떤 모양이든, 부엌이기만 하면,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장소이기만 하면 나는 고통스럽지 않다. 기능을 잘 살려 오랜 세월 손때가 묻도록 사용한 부엌이라면 더욱 좋다. 뽀송뽀송하게 마른 깨끗한 행주가 몇 장 걸려 있고 하얀 타일이 반짝반짝 빛난다...(중략).

정말 기진맥진 지쳤을 때, 나는 문득 생각에 잠긴다. 언젠가 죽을 때가 오면, 부엌에서 숨을 거두고 싶다고. 홀로 있어 추운 곳이든, 누군가 있어 따스한 곳이든, 나는 떨지 않고 똑바로 쳐다보고 싶다. 부엌이면 좋겠는데,라고 생각한다(본문 중에서).


하지만 그녀의 성공은 그녀도 놀랄 정도였다. 키친과 키친의 후속작 만월, 그리고 졸업작품인 달빛 그림자로 구성된 그녀의 첫 소설집은 전 세계적으로 250만 부 이상이 판매되는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된다. 이후에도 그녀는 일본에서 야마고토 슈고로상, 되 마고상, 무라사키 시키부상, 이탈리아에서 스칸노상, 펜디시에 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무라카미 하루키와 더불어 일본 문단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성장한다.


이쯤에서 우리는 궁금해진다. 이 소설의 어떤 매력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소설은 주인공의 유일한 혈육이었던 할머니의 죽음에서 출발한다. 부엌에서 할머니의 죽음을 곱씹던 주인공 미카게에게 뜻밖의 제안이 들어온다. 할머니의 단골 꽃가게 주인인 청년 유이치의 초대였다. 성전환 수술을 하여 여자가 된 아빠, 아니 엄마 에리코와 사는 모자는 그녀의 외로움과 상처를 이해하고 당분간 그들의 집에서 같이 지낼 것을 권유한다.


뜻밖의 제안에 당황하지만 그들의 집을 방문한 후 부엌을 보고 미카게는 동거를 결심한다. 그만큼 키친은 그녀에게 소중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조그만 형광등 불빛을 받으며 얌전하게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식기류, 빛나는 유리잔, 언뜻 보면 하나도 일관성이 없는데, 묘하게도 품위 있는 것들뿐이었다. 특별한 요리를 만들기 위한...... 예를 들어 사발, 그래탱 접시, 큰 접시, 뚜껑 달린 맥주 조끼, 그런 것들도 보기 좋았다. 조그만 냉장고도, 유이치가 괜찮다고 하여 열어 보니,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넣어놓은 채 방치된 식품은 없었다.
음음, 고개를 끄덕거리며 둘러보았다. 멋진 부엌이었다. 나는, 그 부엌을 한눈에 사랑하게 되었다(본문 중에서).


가족을 위하여 주부가 요리를 하는 공간, 요리에 담기 위한 그릇을 청결하게 설거지하고 닦는 장소,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녀는 부엌의 냉장고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한다. 그만큼 부엌은 그녀에게 치유와 구원의 공간이었으며 이런 멋진 부엌을 가진 유이치 모녀에게 호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가족도 아니면서 미카게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고양이처럼 핥아주는 유이치와 에리코, 남들이 볼 때 성전환 수술을 하고 술집에 다니는 에리코는 비정상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미카게에게 그들은 가족보다 소중한 천사들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유이치가 자기 때문에 여자 친구에게 오해를 받고 뺨까지 맞은 사실을 알고 미카게는 서서히 독립을 준비한다.


소설은 바나나처럼 가벼운 문체로 죽음과 인생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점이 젊은이, 특히 여성들에게 어필하여 그녀를 서브컬처 문학의 대가로 대중들에게 각광받게 한 것 같다. 그러나 그녀의 소설을 읽고 난 후 독자들이 느끼는 치유와 구원의 감동은 바나나를 먹은 것처럼 배부르다.


소설을 통하여 그녀는 말하고 있다. 개인의 슬픔에 무자비한 세상과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저열한 양아치들 속에서 자신의 영혼과 인격을 지키기 위하여 우리는 마음의 자유만은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그리고 이 마음의 자유가 있는 한 인간은 패배하지 않는다고. 그녀에게 키친은 마음의 자유를 얻는 곳이었고 독자들은 그녀의 소설이 또 하나의 키친임을 받아들이고 젊은 소설가의 젊은 소설에 열광적 지지를 보낸 것이다.


오만과 편견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자신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틀림으로 규정하고, 타인을 혐오하여 차별하고  배제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 이 세상을 견디기 위하여 영혼을 치유하고 구원해 줄 키친을 당신은 가졌나요? 소설가는 우리들에게 질문한다. 문학이 그 대답이 될 수 있을지 이제 당신이 답해야 할 시간이다.


꿈의 키친.
나는 몇 군데나 그것을 지니리라. 마음속으로, 혹은 실제로, 혹은 여행지에서. 혼자서, 여럿이서, 단둘이서, 내가 사는 모든 장소에서, 분명 여러 군데 지니리라(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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