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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슬픔은 고양이 자세 / 이미영

by 하기

내 슬픔은 고양이 자세 / 이미영




늑골을 말아 쥐고 숨을 뱉습니다 잔뜩 동글린 등이 안쪽의 급소를 감춥니다 비만은 빠르고 다이어트는 멉니다 사람들은 자꾸 내 인생이 휘었다고 말합니다



치사량의 기대감을 수혈하듯 슬픔을 폭식했습니다 나는 왜 쉽게 슬픔을 허락했을까요 하루에 세 알씩 두통약과 수면제와 우울증 치료제를 복용해야 견딜 수 있습니다 아직 갈라진 벽 틈에 숨어있는 몇 인분의 눈빛이 남아있으니까요



들숨보다 날숨이 더 중요한 거라고 모니터 속 날씬한 여자가 말을 하네요 나도 앙큼한 고양이가 될 수 있어 떠난 남자에게도 발톱을 세울 수 있어 릴랙스의 최면이 필요한 밤입니다



몇 번을 다시 봐도 거울 밖에서 본 고양이 자세는 서글픕니다 문득 눈동자에 블랙홀이 생길까 봐 두려워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엄마는 늘 전화기 밖에 있습니다 제발 그 누구도 주사위를 던지거나 거울 속을 엿보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어둠 속 이명은 걸핏하면 복식호흡을 하며 아가리를 벌려 나를 삼킵니다



거울은 뒷모습이 없어서 아무리 핥아도 그림자가 생기지 않습니다





이미영 시인 프로필



서울출생


숙명여대 졸업


2019년 웹진 '시인광장'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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