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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기 Nov 16. 2021

아싸라도 괜찮아

아싸라도 괜찮아


  나는 아싸다. 초등중학교를 거치며 성적도 상위권이고 운동도 좋아하였던 나는 친구들과의 사이도 좋았다. 그러던 내가 고등학교 시절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건강문제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며 성적도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우울한 시기를 겪는 과정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아싸로 변모하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이런 아싸로의 변화는 재수를 하여 대학에 입학한 후 일 년 휴학을 하고 동년배가 아닌 선후배와 학창 시절을 보내며 더욱 심해졌고 회사에 입사하고 결혼을 한 후에도 아싸의 삶은 그냥저냥 유지되고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아싸는 「사회의 기성 틀에서 벗어나서 독자적인 사상을 지니고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정의되고 있다. 그러나 일상에서 아싸는 「왕따, 찐따 같이 친구가 없는 사람,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하여 인싸는 「섞이지 못하고 겉도는 아웃사이더와는 다르게 무리 속에서 아주 잘 지내는 사람」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한 걸음 나아가 「인싸처럼 무리와 잘 지내는 사람과 핵처럼 위력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핵인싸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질 정도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아싸에 대하여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핵인싸라고 할 수 있는 그룹들이 그들만의 리그를 만드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추태와 범죄행위가 만천하에 드러날수록 폐쇄적인 카르텔을 만들지 않으면서도 제 역할을 하고 있는 자발적 아싸들의 개인주의적인 장점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 자발적 아웃사이더의 대표적인 예로 언급되는 니체, 톨스토이, 헤세, 고흐 등의 학자, 미술가, 소설가 등은 세상을 일반인의 시각과는 다르게 보는 시각을 우리에게 제시하며 아싸에 대한 평가를 업그레이드시킨 역사적 인물들이다.


  그중 개인적으로 최고의 아싸는 네덜란드의 빈센트 반 고흐라고 생각한다. 동료였던 고갱과 피카소가 특유의 친화력과 천재적 재능으로 언론과 사교계에서 스타로 부각되며 생전에 이미 많은 부와 명예를 달성한 것과는 달리 고흐는 동생 태오의 도움 없이는 물감 하나도 사지 못할 정도의 경제적 곤궁과 대중들의 무관심 속에 외롭게 그림을 그려나갔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자신의 작품을 홍보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고흐는 생전에 몇 개의 작품만을 헐값에 팔고 변변한 개인전 한 번 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였다.


  극도의 궁핍과 고독 속에서 그의 작품은 자연스럽게 절망적인 그의 상황과 심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 ‘자화상’과 ‘우는 노인’ 시리즈에서 볼 수 있듯이 그림 속의 주인공들은 고흐의 황폐한 내면을 투사하고 있어 현대의 비평가들에게 인간 내면의 깊이를 표현하는 최고의 작품으로 상찬을 받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그가 아싸였기에 만들 수 있었던 작품들이었다.


  문학과 영화 장르에서도 아웃사이더는 좋은 소재가 되어왔다.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은 문학 속에 아웃사이더를 묘사한 최고의 작품이다. 주인공 뫼르소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한 상황 속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세상 사람들의 인간에 대한 몰이해 속에서 사형을 구형받는 전형적인 아웃사이더의 모습이다.


  더스틴 호프만과 탐 쿠루즈가 열연한 영화 ‘레인맨’ 속의 더스틴 호프만도 자신 만의 세계 속에 갇혀 살아가는 자폐증 환자지만 천재적인 기억력을 가진 것으로 묘사된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으로 전설적인 무대를 남겼던 천재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을 모델로 한 영화 샤인 속에서도 주인공의 아웃사이더적 면모가 드러난다. 그런가 하면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서는 균형이론으로 노벨상을 받은 수학자 존 내쉬의 아웃사이더적 특성을 잘 그려내어 그해 오스카를 거머쥐었다.


  한국에서도 요즘 아싸들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특히 그동안 세종대왕, 김유신 같은 핵인싸들만이 위인전의 대상이 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는데 최근에는 허균, 김옥균, 묘청, 윤이상, 장준하, 전태일 등 승자의 역사 속에서 도외시되었던 인물들이 아웃사이더이지만 뛰어난 재능으로 세상의 변화를 가져온 인물로 조명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 속 최고의 아웃사이더를 뽑으라고 하면 돌올하게 솟아나 세상을 관조하며 영원한 아웃사이더를 자처하였던 도스타인 베블렌을 톺아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작가 유시민이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이라는 책에서 유한계급론을 설파한 지식인으로 소개하며 한국에서 유명해진 베블렌은 유럽의 마르크스에 비견되는 미국의 좌파 경제학자이다.


  베블렌의 부모는 노르웨이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이주민이었다. 타지에서 고생한 독실한 프로테스탄트였던 그들은 자신들을 등쳐먹을 생각만 하는 미국인들을 경멸하고 그들만의 폐쇄적인 공동체를 꿈꾼다. 베블렌은 이런 폐쇄성을 답답해했지만 미국인 불로소득자들에 대한 분노로 미국 사회와도 완전히 융화되지 못하는 전형적인 아싸였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유한계급이 벌어가는 사회에 신물이 난 베블렌은 유한계급의 특기를 깽판 놓기(sabotage)라고 비아냥거리며 “유한계급은 산업공동체 내부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용하여 살아가고 있다.”라고 그의 저서“유한계급”에서 설파하고 있다.


  그의 저서는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켜 여러 대학에서 그를 초빙하였지만 그는 어느 한 대학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기저기를 떠돈다. 방탕한 자유연애로 부인과도 이혼하고 학교 수업에도 집중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학생들의 학점도 랜덤으로 주는 등 자기 수업을 듣는 학생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다.


  두 번째 부인과 재혼한 후 행복한 일상을 지내는 듯했지만 부인이 정신병으로 심약해지고 사망한 후 오랜 독거생활 끝에 고독사하였다. 그는 어떤 종류의 장례절차도 거부하고 화장을 해 유골을 바다에 뿌려주기를 유언했다. 또한 어떤 유작도 공개하지 말고 세상에서 완전히 잊히기를 꿈꾸었다. 영원한 이방인, 완전한 아웃사이더다운 죽음이었다.


  아웃사이더들과 세상과의 부조화를 전면에 내세우며 록음악으로 표현한 록커들이 한국에도 있었다. ‘봄여름가을겨울’의 ‘아웃사이더’라는 곡이 1990년대 중반에 꽤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다. 한 번 그 가사를 감상해보자.     


“더부룩한 머리에 낡은 청바지 며칠씩 굶기도 하고  검은색 가죽점퍼 입고 다녀도 손엔 하이데거의 책을 읽지

  다들 같은 모양의 헤어스타일 유행 따라 옷을 입고  다른 이의 시선을 신경 쓰는 것은 개성 없어 보여 싫지

  그것은 세상 어느 곳엘 가도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잖아

  누구의 이해도 바라질 않고 지난 일에 집착하지 않아

  아무도 이해 못 할 말을 하고 돌아서서 웃는 나는 아웃사이더

  명예도 없고 금전도 없어 자존심이 있을 뿐이야

  괭하니 검게 반짝이는 눈은 로트렉의 그림을 보네”     


  록커들은 아웃사이더의 모습 속에 세상과 타협하지 않지만 자기들만의 멋을 추구하는 이상적인 음악가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싸인 나도 이 음악을 들으며 “아싸라도 괜찮아”라고 나를 위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노잼이지만 확실한 나만의 세계가 있고 조직과 적절한 거리를  두지만 나에게 주어진 직분에 충실하여 조직에 피해를 주지 않는 건전한 개인주의자. 이제 아웃사이더의 시대가 온 것이다. 유튜브와 SNS를 통하여 1인 미디어 시대가 도래하였고 더 이상 인맥과 조직에 의존하지 않고도 나의 존재를 세상에 알릴 수 있게 되었다.  경제학자와 철학자로서 아싸였던 마르크스가 썼던 공산당 선언을 아웃사이더 선언으로 바꾸어 게재하며 이 글을 마치려 한다.    


(아웃사이더 선언)     

하나의 유령이 세상을 떠돌고 있다. 아웃사이더라는 유령이.

아웃사이더들은 아웃사이더 혁명에서 자신들을 묶고 있는 족쇄 외에는 잃을 것이 없다.

그들에게는 얻어야 할 세계가 있다.

만국의 아웃사이더들이여, 흩어져서 각자도생 하라!


https://www.youtube.com/watch?v=p28BHR_KYKA (봄여름가을겨울의 아웃사이더 감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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