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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기 Nov 23. 2021

펜트하우스, 욕망이라는 이름의 바벨탑

펜트하우스, 욕망이라는 이름의 바벨탑(2021년 제11회 국세가족 문예전 수상)


  2021년 최고의 화제작, SBS의 최고 시청률 드라마 “펜트하우스”를 보면서 나는 바벨탑이 떠올랐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처럼 드라마의 서사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바벨탑 이야기와 유사하다. 끝없는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 낸 비극적 결말이라는 주제도 동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약성경 창세기 11장 1절에서 9절까지 바벨탑의 역사가 나온다. 대홍수에서 방주를 만들어 지정 생존자로 살아남은 노아의 후손들은 더 이상 대홍수는 없을 것이라는 신의 약속을 믿지 않고 대홍수에서도 쓸려가지 않을 바벨탑을 짓는다. 자신의 약속을 믿지 않고 하늘에 도전하는 인간들에게 신은 소통을 하지 못하게 그들을 분산시키고 건물의 붕괴를 유도한다. 사람들이 신을 믿지 못한 것은 그들의 욕망이 무한하기 때문이다. 욕망의 무한성을 깨달은 인간들이 권력을 가지게 되자 그것을 사유화한 후 권력을 가진 자신들을 신격화하며 곳곳에 우상을 짓는다. 이처럼 인간의 자유의지가 통제되지 못할 때 인간은 욕망이라는 이름으로 바벨탑을 짓게 되며 파멸하게 된다는 것이 바벨탑이 주는 교훈인 것이다.


  드라마의 종영 후 드라마에 대한 평가는 그렇게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자신의 부와 명예를 넘겨주기 위하여 자식들에게 최고의 스펙을 만들어 주어 최고의 대학에 보내려는 교육 1번지, 집값 1번지 강남엄마들의 마라 맛(얼얼하고 매운맛) 막장드라마. 자극적인 장면과 개연성 없는 서사로 가득 차있고 인기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아류작에 불과하다고 비난하는 평론가들의 글들이 인터넷에 도배되고 있다.


  그럼 이쯤에서 이들의 비난에 동의를 표하며 최고 시청률의 이 드라마를 폄하하는 것으로 이 글을 채우면 좋은 걸까? 그렇다고 말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에 몰입하게 만든 매력은 없는 건가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이 글에선 이 의문에 집중해보기로 하자. 단점과 허점에 대한 비판은 이미 많이 나와 있으니 애정을 가지고 이 드라마가 가진 장점을 서술하는 리뷰가 하나쯤 존재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지 않겠는가.


  이 드라마의 대본을 쓴 김순옥 작가는 악녀 캐릭터로 유명하다. 아내의 유혹(신애리), 왔다 장보리(연민정), 황후의 품격(태후강씨) 등 역대급 악녀 캐릭터들은 드라마의 흥행을 주도하였고 여주인공들은 연말 방송국의 연기대상을 휩쓸며 연기 경력의 정점을 이루기도 하였다. 


  질투의 화신인 헤라의 여신 상이 로비에 위치한 헤라 팰리스를 소재로 한 이 드라마도 천 서진이라는 역대급 악녀 캐릭터를 만들어 내었다. 자신의 성공과 딸의 미래를 위하여 아버지를 죽이고 친구를 죽인다. 하지만 그녀만이 악녀인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드라마 속 인물들이 모두 수상하다. 언뜻 선해 보이는 오윤희도 자기 딸의 예고 입학을 위하여 딸의 경쟁자인 민 설아를 죽인다. 심수련 또한 공격을 당하기 전에는 품격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습을 보이지만 자기의 성을 공격하는 천서진과 주단태에게 복수하는 모습은 여느 악녀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펜트하우스를 차지하기 위한 이들의 경쟁은 결국 승자독식주의, 스카이로 상징되는 일점 집중 주의에 매몰되어가는 한국사회 상류층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기에 그토록 많은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에 매료된 것이 아닌 가하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옥탑방에서 라면을 끓여먹으며 이 드라마를 보다가 나와서 바라보는 서울의 야경과 펜트하우스 테라스의 통유리를 통하여 바라보는 서울의 야경이 조망에서는 다르겠지만 본질에 있어서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서민들에게 묘한 위안을 건네게 되는 것이다.


  드라마에서 김순옥 작가가 만들어 낸 최고의 악역은 여자 주인공이 아닌 남자 주인공 주단태이다. 신곡을 쓴 단테의 이름에서 따온 이 이름의 주인공은 신곡의 내용을 시청자들에게 그대로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다. 천국의 모습인 줄 알았던 펜트하우스가 어떻게 연옥이 되고 지옥이 되어가는지. 그리고 하늘에 닿기 위하여 바벨탑을 지었던 사람들이 몰락하고 바벨탑이 붕괴되듯이 100층짜리 초고층빌딩인 헤라 펠리스에 사는 사람들이 몰락하고 건물이 붕괴되는 모습을 통해 현대판 바벨탑의 교훈을 사람들에게 전달해 준다.


  주연급은 아니지만 펜트하우스에서 열연하며 드라마의 인기를 받쳐 준 빛나는 조연들이 있다. 닥터에서 범죄자로, 딸과 부인 모두에게 배척받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하윤철, 딸바보 아빠의 캐릭터로 끝끝내 딸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우리 시대 딸을 가진 많은  아버지들의 마음을 적셔주었다.


  드라마 속 조연으로 주연들을 능가하는 연기력으로 드라마의 성공을 이끌었던 고상아(윤주희 분), 이규진(봉태규 분) 부부, 강마리(신은경 분)와 그녀의 딸 유제니(진지희 분), 주연들의 자녀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낸 배로나(김현수 분), 주석훈(김영대 분), 주석경(한지현 분), 하은별(최예빈 분) 등 모두 뛰어난 연기력으로 미래의 주연 스타로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오너들의 수족이 되어 그들의 궂은일을 도맡아 전담했던 드라마 속 비서들의 캐릭터도 활약했다. 특히 천서진의 비서, 도 비서(김도현 분)와 주단태의 비서 조비서(김동규 분)는 끝까지 충성을 다하고 오너들과 운명을 같이 하여 오너들보다 인성에 있어서는 낫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오너들의 비극적 운명을 되돌린 순 없었다. 조직과 상사에 의하여 볼트와 너트 같은 대접을 받지만 자신들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는 이 시대 조직인으로서 그들의 운명이 남의 일 같지 않아 보였다. 


  드라마의 인기는 캐릭터와 서사에만 있지는 않았다. 천서진과 오윤희의 성악 대결, 그녀들의 딸인 배로나와 하은별의 성악 대결 속에 나오는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들이 드라마 성공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다. 시즌1에서 나온 밤의 여왕 아리아 독창 장면과 모녀의 하모니로 시청자들의 귀를 즐겁게 해 준 헨델의 오페라 속“울게 하소서”등이 클래식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을 이끌었다.


  시즌2에서도 드라마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천서진과 오윤희 립싱크 장면에서 로시니의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중 “방금 들린 그대 음성”이 삽입되어 드라마에 대한 몰입을 최고조에 이르게 하였다.


  시즌3에서는 라 트라비아타의 축배의 노래를 합창하는 장면이 나와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클래식의 향연에 빠지도록 만들어 주어 단순하게 막장드라마로만 펜트하우스를 폄하할 수 없게 만들어 주었다. 물론 실제 이 성악곡들을 부른 서울대 성악과 학생들의 노력도 칭찬받아야 할 일일 것이다. 드라마를 통하여 클래식과 오페라 속 성악들을 지루하지 않게 표현하여 시청자들이 자연스럽게 클래식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연출하여준 것은 이 드라마가 이루어낸 또 하나의 성취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마지막 결론은 바벨탑의 전설이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와 동일하다. 신은 펜트하우스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를 질시하고 증오하게 만들어 헤라 팰리스를 붕괴시켰다. 드라마 속 인물들의 부와 명예에 대한 욕망은 끝이 없었고, 그들에게 조금만이라도 권력이 주어지면 그것을 사유화하여 권력이 없는 자에게 갑질을 했다. 또한 권력을 가진 자신들을 신격화하여 끝없는 횡포를 벌였다. 결국 분노한 신에 의하여 그들은 절멸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펜트하우스는 말하고 있다.


  자, 이제 우리는 신의 분노에 의한 인간의 절멸을 막기 위하여 펜트하우스라는 바벨탑의 꿈을 포기해야 하는가? 솔직해지자. 비극적 숙명에도 불구하고 그대들은 아직도 펜트하우스를 꿈꾸고 있지는 않는가? 100층 건물의 최상층에서 펼쳐지는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며 그대들의 성공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을 포기하기에 도시의 펜트하우스는 너무도 매혹적이다. 세속적인 그대들은 영원히 펜트하우스의 꿈을 포기하지 못하고 노아의 후손처럼 또 다른 바벨탑을 지을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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