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파견이 끝나고 복귀하는 날 애정전선에 먹구름이 끼다

(단편소설) 조사국24시 - 8

by 하기

검찰파견이 끝나고 복귀하는 날 애정전선에 먹구름이 끼다


우리가 찾아 낸 금융추적자료가 결정적 증거가 되어 조세피난처인 피지에 유령회사를 설립하여 법인세 및 관련제세를 탈루한 H법인은 수십억원의 추징세액을 납부해야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런 식으로 축적한 비자금의 사용처 조사였다. 검찰의 추적이 점점 진실에 다가가는 순간 뜻하지 않은 암초를 만나게 된다. H법인의 대표이사가 종로에 있는 그의 집무실인 13층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하고 말았다. 언론은 그의 자살이 검찰수사에서 당한 인간적 모욕때문이라고 대서특필을 했고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여론의 도마에 오르게 된다.


결국 H법인의 비자금수사는 총수의 자살이라는 비극으로 종결되고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경구처럼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항간에는 대표이사가 죽음으로 막으려고 했던 진실이 무엇인가가 가쉽거리로 회자되었지만 우리 4-4-4반은 검찰에서의 남의 집살이를 끝내고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본래 우리집으로 돌아왔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4-4-4반 전원에게 감사패를 수여하여 금융추적을 통하여 수사에 결정적 공로를 한 우리의 노고를 치하해주어 떠나는 자들의 허허로움을 달래 주었다.


우리가 복귀한 날, 나는 가볍게 1차 회식을 마치고 2차를 하자는 유혹을 뿌리치고 세영의 집으로 갔다. 검찰동원으로 바빠 최근에 세영과 자주 보지 못한 마음에 어쩔 수 없다고 팀장님과 반장님에게 얘기하였더니 “그럼. 장가가는 게 우선이지. 일도 중요하지만 연애도 중요하니까. 대신 빨리 국수 먹여줘야 해.”하며 유반장님은 쿨하게 말씀해주셔서 마음이 가벼워졌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희주의 표정이 못내 아쉬워하는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사실 세영이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희주의 나에 대한 감정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느끼면서 나도 희주에게 끌리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흔들리는 나의 마음을 세영이를 만남으로써 다시 바로 잡으려는 생각이 들었다. 2차를 가는 팀원들을 바라보며 나는 세영과의 약속장소로 향했다.


약속장소인 세영의 집 앞 놀이터에서 기다리는 데 세영의 웃음소리가 들리며 멀리서 세영이 보였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었다. 인라인 동호회 총무인 동호와 함께였다. 그러고 보니 내가 요즘 바빠 동호에게 인라인을 배우고 있다고 전화통화한 사실이 기억났다.


“안녕하세요. 규현이 형. 오래만이에요. 동호회에 요즘 잘 안나오시네요?” “응. 내가 사무실 일 때문에 요즘 바빠서...동호회에 별 일없지?” “네. 세영누나. 다음에 봐요. 전 그럼 이만 가볼게요." "그래. 오늘 고마웠어. 덕분에 인라인이 많이 늘었어. 후후.”하며 동호를 보내는 세영의 표정에 미소가 가득 담겨 있어 나는 왠지 동호가 미워졌다. 그런 거북한 감정은 광수생각 카페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동호가 뒤로 가는 거랑 브레이크 잡는 법 가르쳐 줘서 오늘 인라인이 확 는 것 같아.” 카페에 와서도 세영은 계속 동호 얘기를 했다. “그래. 내가 가르쳐 주는 것보다 동호한테 배우는 게 더 좋은 가 보지?”하며 나는 약간 비아냥거리는 투로 말하였다. “그런게 아니라 동호가 나이에 비해 여자를 배려하는 섬세한 마음이 있더라구. 들어 보니 어릴 때 부모를 여의어서 정신적으로 빨리 성숙한 것 같아. 나이는 어려도 마음은 어른 같은 느낌이야.”


“그래. 그럼. 동호랑 사귀지 그래. 내가 준 커플링 반지도 끼지 않은 것 보니 벌써 사귀고 있는 줄도 모르겠네.” 나는 생각지도 못하게 공격적으로 말을 하고 있었다. “규현씨. 어떻게 그런 말을 해. 동호는 나이 어린 동생이고...커플링은 인라인 스케이트 탈 때 넘어지면 다칠 위험이 있어 오늘 잠시 빼 놓은 건데...동호회에서 자기랑 나랑 커플인 거 다 아는 데...굳이 커플링으로 표시를 해야 돼?” 여기서 멈춰야해하고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 말았다.


“골키퍼 있다고 골 안 들어가는 것 아니야. 나랑 사귀면서 젊은 애들이랑 썸타는 것. 양다리 아니야!” 이 말에 세영은 “그만 해. 규현씨한테 실망했어. 우리 잠시 서로에 대하여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아.”하는 말에 나는 순간적으로 큰 실수를 했다고 생각하며 사과를 한다는 말이 “그래. 그럼 우리 오늘로 끝내. 나도 너한테 실망했거든.”하며 엉뚱한 말이 내 입에서 나오는 것을 끝내 막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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