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조사국24시 - 13
어머니의 상태는 다행히 생각보다 빨리 악화되지는 않았다. 이레사라는 폐암전문치료약이 개발되어 임상실험을 마치고 환자들에게 투약이 막 시작되었는데 어머니는 그 혜택을 보게 되었다. 이레사는 폐암세포에만 작용하여 암의 전이를 막아주는 신약이었다.
이규종 사무관은 “어머니의 상태가 좋아졌다니 다행이네. 김규현 조사관 그래도 어머니 생각해서 세영씨랑 빨리 결혼해야지. 요즘 세영씨랑 자주 만나지. 저번에 등산하고 나서 요즘엔 사무실에 자주 안 놀러오네.”하며 이사무관이 물어보셔서 나는 사랑을 지키지 못한 못난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하지만 그런 내색은 하지 않고 “요즘 서로 바쁘고 다행히 어머니도 좋아지셔서 결혼을 서두르지 않을려고요...어머니도 저 장가가기 전까지 안 돌아가실려고 투병에 힘쓰실거 같기도 하고...”하며 말끝을 얼버무렸다. 내색은 안했지만 조사반 직원들도 나와 세영이 사이가 예전같지 않음을 감으로 아는 것 같아 더 이상 그 얘기는 우리반에서 나오지 않았다.
때마침 용산전자상가에 대한 특별세무조사가 시작되어 나의 연애는 더 이상 관심대상이 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반은 바빠지기 시작하였다. 노트북과 관련 신종 사채업자에 대한 조사가 시작된 것이다. 일명 “노트북깡”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이 신종사채업은 온라인 쇼핑몰을 이용하여 대출자에게 노트북을 판매한 후 신용카드로 구매하게 하였다. 그리곤 실제 노트북을 주지 않고 신용카드구매금액에서 선이자를 제외하고 대출해 준 후 대출자들이 구입한 노트북을 용산전자상가에 구입가격의 90%정도로 현금매출하여 사채이자를 노트북판매수입으로 교묘하게 위장한 고리대금업이었다.
이렇게 유통된 노트북이 용산전자상가 등에서 최종소비자에게 재판매되어 시장질서를 교란하고 대출이자를 뗀 현금을 대출한 사람들이 고리대금업의 피해자가 되지만 노트북구입이라는 형식으로 물건을 구입하였기에 피해에 대한 하소연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리는 것이었다.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실제 전주들이 홍콩에 본사를 두고 자금을 빼돌리는 것을 금융추적을 통하여 확인하였다. 페이퍼컴패니를 홍콩에 두고 자금세탁을 거쳐 조세회피를 하는 역외탈세의 한 유형이었던 것이다.
“서희주 조사관 영어 잘하죠?”유반장은 물었다.
“네? 갑자기 그건 왜. 토익점수가 900점이 넘어 프리토킹이 가능하긴 합니다.” 약간 자랑스러운 듯 희주가 말했다.
“그래. 그럼 김규현조사관도 어느 정도 프리토킹이 가능하니까 이번에 홍콩 출장은 두 사람 믿고 우리 4-4-4반이 가는 걸로 알고 있어요.”
홍콩 본사가 페이퍼컴패니로 자금세탁을 위한 형식적 종이회사라는 것을 밝히기 위하여 조사국 직원이 직접 홍콩 출장을 가기로 위에서 결정이 되었는 데 우리반에게 그 일이 배정됐다. 난생 처음 가는 해외 출장이라 우리반 전원은 모두 흥분해서 업무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놀러 가는 것 아니니까 모두들 본인들이 해야 될 역할 숙지하고 준비를 철저히 하세요.” 유반장은 이런 직원들의 기분을 아는 지 분위기를 잡으려고 먼저 선수를 친다. “아마 이번 조사의 결과에 따라 우리 사무관님의 서기관 승진도 결정될 것 같아. 1반 이동기 사무관이 서기관 승진할려고 무리하는 것 같은데 우리도 사무관님을 위하여 이번에 우리반의 실력을 한번 보여줘야지.”하며 직원들에게 단도리를 한다.
이규종 사무관은 사무관경력만 10년으로 이번에 승진이 안되면 계급정년으로 서기관 승진이 힘든 상황이었다. 그리고 조사국에서도 더 이상 진급이 안되면 일선 세무서로 나가는 게 불문율처럼 되어 있어 사실상 올해가 서기관 승진을 위한 마지막 기회인 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에게 일체 자신을 위한 발언을 하지 않고 묵묵히 주어진 일에만 최선을 다하는 사무관님을 직원들은 존경해 마지않았다. 우리는 들떴던 마음을 가라 앉히며 이번 조사에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출장 준비에 박차를 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