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솔로헤븐 - 6
셰프님이 초대한 가평의 별장은 셰프님의 사촌동생 올리브 아버지 소유였다. 올리브님은 예전에 번개에서 만난 적이 있어 얼굴만 알고 지내던 사이였는데 만화 뽀빠이의 연인처럼 많이 마른 체형에 조그만 얼굴을 가진 가냘픈 여자였다. 셰프님은 대화방에서 평소에 나를 눈여겨보다가 자기의 친척인 올리브와 나를 연결시켜주고 싶어 가평 번개를 계획한 것 같았다.
우리는 가평 별장에 모여 셰프님의 요청으로 빨간 옷을 입고 월드컵 경기를 관람하였다. 월드컵에서 포르투갈에 이겨 16강에 진출하던 날이었다. 우리는 모두 붉은 악마로 하나가 되어 대표팀을 응원하였다. 올리브님과 나도 빨간 옷을 입고 응원을 같이 하였다. 그날은 셰프님과 유리님, 나와 올리브님이 자연스럽게 짝이 되어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하기님은 국세청 공무원이라 신분도 보장되고 성실하신 분이라 올리브님과 사귀면 좋은 커플이 될 것 같은데 하기님 생각은 어떠세요.”여자들이 산책을 위하여 잠깐 나간 사이 셰프가 은근히 내 생각을 물어보았다. “솔로헤븐에서 여자를 사귀려는 생각은 없어요. 물론 자연스러운 연애감정이 생겨 만나는 건 상관없지만 결혼을 목적으로 회원들과 만나는 건 아닌 것 같아요.”라고 나는 말하였다. 연애는 오케이 결혼은 노라고 말하는 헤븐님의 운영철학에 나도 기본적으로 동조하고 있었다.
셰프님은 약간 실망한 목소리로 “그러시구나. 그럼 어쩔 수 없죠. 그런데 전 사실 유리님이랑 사이트에서 만나 미래를 약속했어요. 그래서 다음 달 결혼할 생각입니다.”
뜻밖의 폭탄선언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유리님은 등산방에서 같이 등산을 몇 번하여 잘 아는 사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연애를 하고 있던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약간의 배신감 같은 것이 스멀스멀 생겼다.
“결국 솔로헤븐에 모인 남녀들이 모두 커플이 되고 싶어 활동하는 것인가.”하는 생각에 나는 마음이 혼란스러워졌다. 그러다 모두 커플이 되어 지인들이 떠나면 나만 혼자 남겨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생겼다.
“남자들끼리 뭐해. 우리 나가서 산책하자.”하며 올리브와 유리가 들어오면서 말하였다.
“유리님 축하해요. 셰프님이랑 다음 달에 결혼한다면서요.” 나는 유리님에게 말하였다.
“등산방에 먼저 알렸어야 하는 데 미안해요. 저는 오늘부로 솔로헤븐에서 셰프님이랑 같이 탈퇴할 거예요. 하기님 그동안 즐거웠어요. 올리브님이랑 잘됐으면 좋겠어요.”하는 말에 나와 올리브는 괜스레 얼굴이 붉어졌다.
“난 뽀빠이가 아니라서... 하하.”하며 상황을 얼버무리려 내가 말을 하자 “사람 인연이라는 게 억지로 되는 건가. 하기님 신경 쓰지 마요. 난 결혼에 뜻이 없으니까... 솔로 헤븐에 영구 회원으로 남을 생각이에요. 흐흐.”올리브의 말에 나의 맘은 조금 가벼워졌다.
다음날 솔로헤븐 채팅방에 입장하니 디렉터님이 영화번개를 제안하였다. 올드무비 필름을 몇 개 소장하고 있는데 자기가 운영 중인 와인바가 내일 휴무이니 솔로헤븐 회원들이랑 슬라이드로 영화를 보고 싶다고 제안을 했다. 채팅방에 접속한 우리는 모두 고마워하며 참석을 약속하였다. 레이도 올 것이라고 말하는 제인의 말에 나는 설레는 맘으로 신천역에 위치한 디렉터님의 와인바로 향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이미 회원들이 많이 와 있었고 영춘이와 레저방장 마린님 옆에 레이와 제인이 앉아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영춘이의 BMW를 타고 같이 왔다는 제인의 말에 기름값 아끼려고 전철을 타고 온 나와 대비되는 것 같아 기분이 언짢아졌다. 마린님은 스킨스쿠버 전문가로 솔로헤븐에서 레저방장으로 활약 중이었다. 오늘도 잠실 롯데월드에서 솔로헤븐회원들에게 스킨스쿠버 강습을 하고 강습 중인 레이와 제인, 영춘이와 같이 온 듯하였다.
오늘 같이 한 스킨스쿠버에 대하여 서로 대화를 나누니 거기에 참석하지 않은 나는 묘한 소외감을 느끼며 영화를 보았다. 영화는 많이 알려진 “시네마천국”과 “길”이었다. 시네마천국의 마지막 키스 장면을 보며 나는 남들 모르게 옆에 앉아 있던 레이의 손을 살짝 쥐었다. 그 장면을 제인이 보고 나를 보며 은근히 웃는다. 나는 비밀을 들킨 듯 놀라 잡은 손을 살며시 놓았다.
영화가 끝나고 우리는 와인과 차를 한잔씩 하며 영화에 대한 감상도 이야기하고 솔로헤븐 활동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이 자리에서 디렉터님은 앞으로 사이트가 유료화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사이트의 규모가 커지며 서버 비용과 각종 유지비가 많이 들어 사이트 운영이 힘들다는 고충을 헤븐님이 자주 한다는 말이었다. 우리는 수익자가 회원들이니 고통은 분담하는 것이 맞다는 취지에 동감을 표시하며 그날의 모임이 끝나고 나는 레이와 제인과 함께 귀가를 했다.
“하기 레이와 연애한다며... 흐흐.”
집으로 오는 길에 제인이 나에게 말했다. 레이는 그런 제인을 노려 보았지만 적극 제지하지는 않았다.
“응, 나 레이가 좋아. 그러면 안돼?”
나는 제인도 알고 있는 것 같아 쿨하게 연애사실을 인정했다. 그리고 레이의 손을 잡고 사랑스러운 눈길로 레이를 바라보았다.
“좋겠다. 나만 애인도 없고 독수공방이네. 이제 가을인데 너무 외로워.”하는 제인의 말에 레이가 뜻밖의 제안을 한다.
“그럼. 하기가 직장에서 제인의 짝을 찾아주면 어떨까. 그래서 우리 넷이 같이 만나면 좋을 것 같아.”라고 레이는 말하였다.
나는 갑작스러운 제안에 당황스러운 맘이 들었지만 레이와 반대로 아담하고 귀여운 스타일의 제인에 대하여도 호감이 있었기에 그러 마하고 말하였다.
“그럼 오늘부터 제인 남자 친구 찾아주기 프로젝트 시작이다.”제인은 진짜로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레이와 제인도 결국 결혼상대를 찾으려고 솔로헤븐에서 활동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상대를 찾고 나면 사이트를 떠날 것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우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