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솔로헤븐 - 7
레이와 제인을 집에 바래다주고 나는 신사동세우관으로 돌아왔다. 기숙사방에서 솔로헤븐에 접속하니 등산방의 번개공지가 떠 있었다, 태백산 산행 후 낙산으로 해맞이 여행을 간다는 공지였다. 지난 번 등산 후 등산을 한 지가 오래되어 좋은 기운도 얻을 겸 나는 참석을 약속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번 산행이 등산방 해체의 이별여행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우리는 태백산행을 마치고 낙산으로 향했다. 나는 져니형의 차를 타고 황아랑 동행을 했는 데 차 안에서 뜻밖의 얘기를 듣는다. “하기, 나 져니오빠와 결혼하기로 했어. 그래서 이번 여행이 솔로헤븐에서의 마지막 여행이 될 것 같아. 그리고 청산님이랑 오렌지 언니, 콩쥐언니와 시인도 사이트를 탈퇴해야 될 것 같아. 결혼을 전제로 진지하게 사귀는 중이거든...” 황아는 약간 미안해하는 표정으로 나에게 말하였다.
“그렇구나. 좋아하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결혼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어. 어쨌든 축하해.”하며 나는 말했지만 씁쓸한 기분을 숨길 수는 없었다.
직장동료와 친구들이 한 명 두 명 결혼을 하며 내 곁을 떠날 때의 상실감을 솔로헤븐에서도 느끼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기분을 느끼지 않기 위해 솔로헤븐에 가입한 것인데...하는 생각에 마음이 심란해졌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 낙산에서 일출을 바라볼 때 모든 커플들은 둘이서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는 파인형과 사일런스형 셋이서 일출을 바라보고 있는 데 오늘따라 파인형과 사일런스형의 표정에 고독이 짙게 배어있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졌다. 파인형은 오렌지누나를, 사일런스형은 콩쥐누나를 사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이런 일이 익숙한 듯 모두에게 축하를 건네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했지만 그들의 맘을 알아챈 나는 마냥 웃으며 행복해하는 커플들의 모습이 얄밉게도 느껴졌다.
이번 번개에는 타사이트회원들도 함께 했는데 이들은 솔로캠프라는 사이트를 운영 중이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자기들 사이트는 연애도 오케이, 결혼도 오케이라며 이번에 결혼하는 커플들이 자기들 사이트에 가입해서 활동하니 관심있으면 와달라고 명함을 돌리는 것이었다. 나는 솔로헤븐을 배신하는 것 같아 그 명함을 화장실 쓰레기통에 버렸다. 하지만 사이트를 배신한 건 회원들이 아니라 운영자인 헤븐님 자신이라는 것을 이때만 해도 나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영화번개에서 제안한 디렉터님의 사이트 유료화 제안은 헤븐님의 공지를 통하여 회원들에게 알려줬지만 일부 회원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회원들이 반대하였다. 이에 사이트운영이 난관에 부딪치자 헤븐님은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회원 수가 5만명에 육박하는 솔로헤븐은 성장하던 싱글산업업체들의 광고타겟이 된다. 이에 은근히 뒷돈을 주고 회원정보를 요구하던 업체의 요구에 헤븐님이 남몰래 동의하여 회원정보가 넘어간 것이다.
스팸광고를 접했던 회원들은 처음에는 그런가보다 했지만 자꾸 싱글이니 솔로니 하며 다가오는 메일과 문자를 이상하게 생각한 회원 몇 명이 의문을 제기하자 사건은 확대되었고 운영자가 경찰에 고소당하여 수사를 받는 상황에 이르게 되자 많은 회원들이 탈퇴를 하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 불에 기름을 붓는 사건이 하나 더 생기게 된다. 귀족솔로(일명 귀솔)라는 아이디의 남성회원이 있었는데 그는 배우같은 외모와 귀족적인 풍모, 폭스바겐을 몰고 다니며 부티를 내었다. 사업체를 운영하며 많은 돈으로 고급요리점에서 번개를 하며 인기를 끌던 그는 영춘이보다도 더 많은 여성회원들의 지지를 받게 된다.
강남역 프랑스요리전문점에서 열린 귀솔의 번개에 나도 한번 참석해보았는 데 역시 나를 제외하고는 여성회원이 대부분이었다. 귀솔은 나에게 “하기님, 부담없이 드세요. 저의 번개는 모든 경비를 n분의 1로 계산하는 다른 번개와는 달리 제가 무조건 쏩니다. 하하.”하며 자기의 부를 뽐냈다. 나는 묘한 거부감에 다음부터는 귀솔의 번개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그 후에도 귀솔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사고가 터지고 마는데 귀솔은 겉만 번지르한 사기꾼이었다. 번개에 참석한 여성회원들에게 몇 백만 원씩 돈을 빌리더니 그 액수가 몇 천만 원, 어떤 회원은 억대를 빌려준 여성도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잠적하여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니 사기액수가 십억 원 대에 이르렀다. 이 사건으로 사이트회원수는 급감하게 되고 솔로헤븐은 그야말로 폐장분위기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나에게 가장 큰 충격을 준 건 영춘이의 탈퇴였다.
귀솔의 등장으로 여성회원들이 귀솔의 번개로 몰리고 자신의 번개에 참석이 줄어들자 영춘이는 실망한다. 천성적으로 지기 싫어하는 영춘이는 솔로헤븐을 탈퇴하고 솔로이엔티라는 사이트를 만든다. 주식을 하며 나름 인터넷 활용에 익숙했던 영춘이는 어렵지 않게 사이트를 만들고 솔로헤븐에서 만난 회원들을 초대한다. 여기에 레이와 제인, 달령, 진아 등 내가 아는 여성회원들이 모두 참여하며 솔로헤븐을 탈퇴하게 된다.
“하기, 너도 솔로이엔티로 옮겨. 솔로헤븐은 이제 침몰 직전의 타이타닉 호야.”제인은 나에게 말했다.
“솔로이엔티는 나하고 맞지 않아. 영춘이도 내가 좋아하는 리더스타일은 아니고...난 솔로헤븐이 맞아. 끝까지 운명을 같이 하고 싶어. 난 어차피 루저인생인데 뭐.”하며 나는 쓸쓸하게 말했다.
“넌 루저가 아니야. 내가 만나본 어떤 남자보다도 강하고 힘이 있어. 여자들에게 너의 미래를 보여주면 넌 위너가 될 수 있어.”레이가 나의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결국 너희들도 효선이와 틀릴 게 없어. 강한 수컷의 능력을 따라 나를 버리는 거야. 너희들을 원망은 않지만 난 그렇게까지 하며 위너가 될 생각은 없어.”하며 나는 잭다니엘 위스키를 한잔 하였다.
제인에게 핸드폰이 왔다. 영춘이의 전화인 것 같았다. 제인은 나의 눈치를 보며 “영춘이와 마린이 요 근처에 와 있대. 새 사이트 문제로 레이와 나와 의견 나눌 게 있다고 오라는데...하기 같이 안 갈거지?”하며 둘이 물어보았다.
나는 “그럼 안녕”하며 선녀와 나무꾼 주점을 나왔다.
주점 안에는 “선녀를 찾아주세요. 나무꾼의 그 얘기가 사랑을 잃은 이 내 가슴에 아련이 젖어오네요.”라는 가사의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g5npTTq0C8 (선녀와 나무꾼 노래 듣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