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편의점과 남편의 꿈

"편의점에서 일하는 게 꿈이야."

 나는 가끔 남편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하곤 한다. 어떤 날은

 “여보, 당신은 다시 태어나면 어떨 것 같아?”라고 묻기도 하고, 어떤 날은

 “여보, 20대로 돌아가 다시 배울 수 있다면 뭘 배우고 싶어?”라고 묻기도 한다.      

 

 어느 날 나는 남편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여보, 당신은 꿈이 뭐야?”

 남편은 이렇게 대답했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게 꿈이야.”

 현실을 살기도 바쁘고 힘든데 ‘꿈’을 운운하는 내가 미워서 시위라도 하는 것일까.

 나는 남편의 건성건성 한 대답에 다시 물었다.

 “아니, 그런 거 말고 진짜 꿈 말이야. 진짜 꿈!”

 남편이 말했다.

 “진짜 편의점에서 일하는 게 꿈이야. 그게 꿈이면 안 돼?”


 남편이 막상 그렇게 되묻자 할 말은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꿈이라면 어떤 가치나 비전이 느껴지고, 누가 들어도 그럴싸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나 보다. 아프리카에 도서관을 백 개 짓는다거나, 혹은 평생 일 년에 한 권의 책을 쓰는 작가가 된다거나, 사람들에게 건강을 선물하는 운동지도사가 된다거나 그런 것들 말이다.

 나는 남편에게 편의점에서 일을 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그런 철없이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말했다. 편의점에서 며칠만 아르바이트를 해 보면 당장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그건 꿈이 아니라 그냥 도피 같은 거라고 덧붙였다.


 남편은 “그건 너의 편견이야. 편의점에서 일하는 것도 꿈이 될 수 있어.”라고 말하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남편에게 괜한 질문을 했다고 생각하며 나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았다. 편의점에서 일을 하는 게 왜 꿈이 될 수 없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그게 꿈이 되면 안 되는 이유는 전혀 없다. 마치 커피숍을 열어 접시를 닦으며 살고 싶다는 내 친한 지인의 꿈처럼.  


 나는 그 이후에 남편이 왜 그런 꿈을 갖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남편의 삶에는 즐거움이 별로 없었다. 남편은 어려서부터 공부만 하며 살았다. 아주 어릴 때부터 남편은 공부에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공부를 잘하다 보니 주변의 큰 기대를 받게 되어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더 공부를 해야 했다. 남편이 공부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에 대한 많은 일화가 있다. 한 번은 가족이 여행을 가는데 공부를 해야 해서 가족이 모두 여행을 간 사이 집에 남아 혼자 공부를 하기도 했고, 집이 이사를 가게 되었을 때에도 부모님이 이삿짐을 싸는 동안 아무 짐이 없는 새 집에 들어가 책상만 덩그러니 놓고 공부를 했다고 한다. 축구가 너무 하고 싶은데 마음껏 축구를 할 수 없어서 부모님의 눈치를 보지 않고 축구를 하기 위해 기숙 고등학교에 진학하려고 공부를 했다고도 했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죽어라 공부만 한 남편은 텔레비전을 못 본 게 얼마나 한이 되었으면 집에서 늘 텔레비전을 옆에 끼고 산다. 어떤 때에는 텔레비전을 켜 놓고, 휴대폰으로 다른 채널을 틀어 두 가지를 동시에 본다. 휴대폰으로는 축구 경기를 보며 텔레비전에서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것이다. 나는 그런 남편이 가끔은 이해가 되지 않고, 그런 모습이 보기 싫어서 방으로 들어가 버리기도 한다. 한 편으로 얼마나 텔레비전을 못 본 게 한이 되었으면 저렇게까지 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현재의 삶에도 남편에게 즐거움은 별로 없다. 회사에서 늘 찌든 듯이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녹초가 된다. 회사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공부도 해야 하고, 상사에게 인정받기 위해 때로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괴로워하기도 한다. 아마 텔레비전을 좋아하는 이유도 텔레비전이 좋다기보다 정신을 그냥 분산시키고 싶어서,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서 보는 것이란 생각도 든다.


 이런 남편은 돈을 쓰는 것도 힘들어하는 편이다. 나는 돈은 쓰기 위해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하고 싶은 건 대체로 하고 사는 편이지만 남편은 그렇지 않다. 얼마나 어렵게 돈을 벌었는데 돈은 아껴야 한다는 주의이다. 돈을 쓰는 재미도 없으니 남편에게는 즐거움이 한정적이다. 오직 남편에게 즐거움이 있다면 텔레비전을 보며 편의점에서 산 맥주와 새로 나온 신제품 과자나 안주들을 맛보는 것이다. 그래서 편의점에 어떤 맛있는 과자가 나왔는지, 어떤 도시락이 요즘 핫한지 남편은 모르는 게 없다. 편의점에 맛있는 도시락이나 간식이 나오면 당장 맛보고 싶어 한다.


 남편이 스트레스를 푸는 유일한 방법이 편의점의 다양한 음식들을 맛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남편의 꿈이 한편으로 이해가 갔다. 편의점에서 일을 한다면 매일 편의점의 맛있는 음식들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몸은 힘들더라도 마음은 편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편의점을 오고가는 사람들에게서 작은 행복들을 엿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남편처럼 새로나온 맛있는 간식을 먹으며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과 공감하며. 작은 행복을 선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상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작게나마 위로할 수 있는 기쁨을 파는 곳. 그런 눈으로 편의점을 다시 바라보니 남편의 꿈이 철 없는 꿈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편의점'에서 일을 한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편의점에서 '어떤' 느낌을 느끼며 일을 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그 느낌이 즐겁고 행복한 것이라면, 그것은 꿈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나는 편의점에서 일하고 싶다는 남편의 꿈이 꿈이 될 수 있다고 인정했다.


 남편은 우리 가족이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자기의 행복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남편이 먼저 행복해졌으면 한다. 남편이 행복해야 행복한 남편을 바라보는 우리도 행복하다. 그리고 그 행복을 나누며 행복이 배가 된다. 남편의 꿈을 현실 도피라고 말한 나 자신을 반성하며. 남편이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할 수 있는 사람, 바라는 것을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의 이마에 드리워진 세 개의 이마 주름이 조금은 옅어지길 바라면서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만약 만화가가 되었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