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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만화가가 되었다면

오빠의 꿈은 만화가였다.

오빠의 어릴 적 꿈은 만화가였다.

오빠는 어릴 때부터 만화책을 참 좋아했다. 늘 만화책을 잔뜩 빌려 쌓아 놓고 만화책을 읽었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서도 가족 여행에서도 만화책을 읽었다. 얼마나 만화를 많이 읽었으면 일상생활에서도 만화책의 어투를 썼다. 오빠가 무슨 부탁을 했는데 들어주지 않으면 '쳇'하고 말했고, 내가 무슨 실수를 하면 혀를 차는 게 아니라 '쯧쯧쯧'이라고 말했다. 무슨 당황스러운 일이 있으면 '허걱'이라고 말했다. 뛰어갈 때에도 '우다다다다'라고 말하며 뛰었다. 유유상종일까? 만화책을 좋아하는 오빠의 친구들도 모두 그랬다. 그래서 오빠와 오빠의 친구들이 대화하는 것을 들어보면 참 재미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오빠는 어느 날 만화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적지 않게 놀랐다. 오빠는 그림에 정말 소질이 없었고 글을 쓰는 데에는 더더욱 소질이 없었다. 그러니 그 둘이 조합된 만화가를 꿈꾸는 게 얼토당토 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오빠가 그 일을 할 수 있는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나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반대를 했다. 남자는 안정적인 직장을 가져야 가정을 꾸릴 수 있는데 만화가를 해서는 돈을 거나 안정적인 직장을 갖기가 어렵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면서 엄마는 이 말을 강조했다.

"보배가 만화를 한다고 하면 모를까, 너는 절대 안 돼."

 이 말은 좋게 생각하면 '보배는 그림도 잘 그리고 글도 잘 쓰니까 만화가를 해도 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보배는 여자이고, 돈을 못 벌어도 가정을 책임져야 할 사람은 아니니까 만화가를 해도 돼'라는 의미이다. 오빠를 설득하려는 엄마의 의중을 파악해 본다면 후자의 의미가 더욱 정확하다. 오빠를 설득하기 위해 소환된 나 역시 별로 기분이 좋은 뉘앙스의 말은 아니었다.

 오빠는 만화가가 되기 위해 자신의 진로에 대한 계획을 마친 상태였다. 어느 대학의 어느 과에 진학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그것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모두 알아두었다. 아마 엄마를 설득하기 위해 단단히 준비를 한 것 같았다. 하지만 엄마는 완강하게 반대했고 결국 오빠는 크게 좌절하고 말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반전은 지금부터이다.


 오빠는 부모님에게 반항하기 위해 그때부터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나로서는 반항하기 위해 공부를 다는 게 이해가 잘 되지 않았는데 오빠의 입장에서는 달랐나 보다. 오빠는 집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합리적이고 타당한 이유를 찾기 위해 서울에 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는데 그 방법이 다름 아닌 공부였다. 서울의 대학에 합격을 하면 부모님을 벗어나 서울에서 혼자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오빠의 반항에는 효심이 깔려 있었다. 첫째들의 특징일까? 그냥 가방과 돈을 챙기고 집을 나갈 수도 있는데 굳이 공부를 해서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부모님을 벗어나는 게 반항이라니 말이다.

 오빠는 공부를 시작했지만 그 당시(고등학교 3학년) 만화와 게임에 빠져 있던 오빠의 성적은 바닥 그 자체였고, 전교에서 하위 10%에 속하는 오빠의 성적으로는 서울권의 좋은 대학을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오빠는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자신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엄마가 기뻐할까봐 이불속에 숨어서 공부를  했다. 엄마가 오면 자는 척을 하고 엄마가 가면 공부를 했다. 이때 오빠의 마음을 나는 백 프로 이해할 수는 없지만 얼마나 속이 상하고 반항을 하고 싶었으면 저렇게까지 할까?라는 생각을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오빠의 성적은 나날이 고공행진을 했고, 오빠는 결국 전교 3등이 되는 기적을 만들었다. 수능이 있던 그 날까지 오빠의 성적 그래프는 상당히 드라마틱했다. 오빠는 400점 만점에 350점이라는 좋은 성적을 얻게 되었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특차로 합격을 했다. 정시로 넣으면 최상위권 대학에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내신도 별로 좋지 않고 '귀찮다'는 이유로 그냥 그 대학에 특차로 진학을 했다. 오빠는 이미 서울행이라는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에 굳이 더 이상의 노력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오빠의 공부 끗발과 쿨함을 구경할 수 있었던 진귀한 순간이었다. 나는 오빠가 똑똑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주야장천 만화책을 읽는 것이 공부의 기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엄마는 누구보다 행복해하셨다. 수능 당일, 수능시험 내내 추운 곳에서 묵주를 돌리며 기도를 한 엄마였다. 엄마는 정말 기뻐하셨다. 그리고 수능이 끝난 뒤 오빠가 밤새도록 게임을 할 때도 아무 말씀 안 하셨고,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홀아비 냄새를 풍겨댈 때에도 간식을 가져다주며 친절한 모습이었다.

 

 그 후 오랜 시간이 지나고 오빠가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업을 했을 때 엄마는 오빠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너 만약 그때 만화가 된다고 한 걸 그냥 뒀으면 어쩔 뻔했어? 얼마나 다행이야."

 오빠는 이 말을 들으면 폭발을 하곤 했다.

 "그 부분은 건들지 마."

 결국 오빠는 엄마의 바람대로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업을 하여 높은 연봉을 받는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가정을 보기도 한다. 만약 오빠가 그때 만화가가 되었다면 오빠의 현재는 어떨까? 물론 그 길을 가본 것은 아니기에 확신할 수는 없지만 만화가가 되었다면 좀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성공. 나에게 성공의 기준은 '가장 나다운 삶에 이르는 길'이다. 우리는 모두가 다른 얼굴의 다른 모습으로 태어났고 평균적으로 누구에게나 좋은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누가 봐도 좋은 스펙, 좋은 조건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길이 나의 길이 아니면 내 옷이 아닌 것같은 느낌이 든다. 빈 허울 속에서 행복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가장 나다운 삶은 나밖에 살지 못하기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나다운 삶을 사는 것. 그것이 행복한 삶이 아닐까? 비록 그 과정에서 수많은 장애와 힘듦이 있더라도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꿈을 만나기 위해 노력할 내적 에너지를 잃지 않는다면 그 삶은 행복으로 이르는 길임에 틀림없다고 믿는다.

 는 고등학교 때 나의 진로를 완전히 결정해야 한다고 믿고, 한번 결정된 진로는 쉽게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만약 내가 쫓는 그 꿈이 나다운 삶이 아니라면 그 꿈을 수정하거나 조정할 수 있다. 때로는 아예 다른 방향으로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 오빠가 단기간에 성적을 올려서 좋은 대학에 입학을 했던 저력처럼 만약 필요한 순간이 되어 독하게 마음을 먹는다면 좋은 대학에 입학하여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다른 여러 꿈들을 좇다가 30대에 아이를 낳고 약대에 진학한 나의 지인도 이런 한계를 반증한다. 우리가 바른 길, '정도'라고 믿는 그 루트만이 우리 인생의 '정답'은 아니다. 만약 내가 나 자신의 한계만 긋지 않는다면 우리의 인생에서 내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다.


 많은 아이들이 부모님들에게 정답의 삶, 정도의 삶을 강요받는다. 부모님 세대에서는 대학 졸업 여부가 성공의 결정적 열쇠였기 때문에 그럴법도 하다. 하지만 부모로서 자신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아 아이에게 어떤 길을 강요하고 있다면 부모부터 그 한계를 버리고 자신이 원하는 학습의 길에 뛰어드는 것이 맞다. 아이에게 자신의 학습 욕구를 대신 투영하지 말고 자신이 스스로 해내는 것이다.   


 오빠는 대학에 가서 데생을 스스로 독학으로 배웠고, 그림을 정말 잘 그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림은 철저히 재능 기반이라 생각했는데 오빠를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그림은 재능도 필요하지만 노력과 연습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오빠는 시간이 날 때마다 책상에 앉아 그림을 그렸다. 오빠가 그린 그림들은 표정이 살아있고 생동감이 넘쳤다. 오빠의 꿈. 꿈이 느껴지는 그런 그림들이다.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만약 오빠가 만화가가 되었다면 오빠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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