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번 읽는 책이지만 읽을 때마다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는다. 처음에 읽을 때는 읽는 거룩함, 통쾌함은 격하게 공감했지만 '쓰기 위해 읽어라'라는 말은 와닿지 않았다. 끝까지 읽을수록 쓰기 위해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설득당하고 말았다.
그 이후로 '책은 쓰기 위해 읽는다'라고 머리에 콕 박혀 버려서 읽기만 하고 독서 후기라도 쓰지 않는 날이면 뭔가 찝찝하고 어딘가에 물건을 두고 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며칠이 지나거나 몇 달이 지난 후에 후기를 쓰기도 했다.
" 쓰기와 읽기는 둘이 아니다"
5p
"읽었으면 써라"
59
"쓰기 위해 읽어라"
63p
글쓰기가 배움의 쓰기와 읽기는 둘이 아닌데 왜 여태까지 읽기만 강조하고 쓰기는 저 멀리 두고 다녔을까?
쓰기는 잘 쓰는 사람이 하는 일, 글솜씨가 있어야 쓰는 거라고 생각했다. 어설픈 나의 글이 민낯이라 부끄럽기도 하고 누가 볼까 봐 일기장에만 간간이 쓰곤 했다. 고미숙 작가도 자신의 본래면목이 드러날까 두려운 것이라고 했다.(15p)
세상에 빛을 보는 글일수록 글 자체가 가다듬어지고 성장하고 변화하고 자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고미숙 작가는 천지 운행은 읽기요, 삶의 비전을 여는 것 쓰기라고 했다. 하늘을 보는 것과 땅을 살피는 것은 동시에 하는 거라며 읽기, 쓰기도 동시에 하라고 한다. 천지인 삼중주는 아는 것이며 앎의 구체적 행위는 읽기, 쓰기라는 것, 읽기가 생명의 활동이 되려면 써야 한다는 말에 홀라당 넘어가버렸다. (46~47p)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58세에 출판, 중국 루쉰은 40세에 데뷔, 스탕달의 '적과 흑'은 52세에,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은 44에서 썼다며 작가는 위로한다. 글쓰기야말로 나이가 뭔 소용이 있으랴. 삶의 경험이 글의 소재가 되고 이해의 소재가 되기 때문에 더 깊이 있는 글이 나오지 않을까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려면 더 많은 책을 읽고 사색하고 써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2020년 이 책을 만나고 나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책은 계속 읽었지만 글은 일기나 독서노트에 독서록을 쓰는 정도였으나 글쓰기로 태세 전환을 했다. 블로그에 독서 후기와 일상, 마라톤 후기, 논어 필사 후기, 강의 후기 등을 기록했으며 작가가 되고 싶은 꿈도 키웠다. 브런치 작가에 3번째 도전만에 통과했으며 12000조 회와 브런치 메인에 뜨는 영광도 얻었다. 브런치를 통해 강의 의뢰가 오고 잡지 글을 써달라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 멀리 미국에 있는 한인 사이트에서 브런치 글을 게시하고 싶다고 부탁하기도 했다.
MKYU 공동 저서 '오늘부터 다시 스무 살입니다' 30인 공저 작가로 참여하고 출간식에 작가로 앉아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시를 쓰기 시작하여 시인으로 2023년에 등단하였고 시집 필사 공동 시집 출간도 더 자신감 있게 운영하게 되었다.
개인 단독 책을 쓰기 위한 자신감을 충전했고 글을 쓰는 데에 두려움이 사라졌으며 쓰면서 행복감을 느낄 때가 많다.
책을 읽을 때 읽기 위해 읽는 게 아니라 나의 글쓰기 소재로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을 하고 각 책의 표지부터 뒤표지까지 어떻게 작가가 쓰려고 애썼는지 구성을 보게 되었다.
글은 쓰면 쓸수록 늘고 재산이 쌓이듯 차곡 차독 쌓인다는 느낌이 든다. 내 안에 하고 싶고 쓰고 싶은 말이 이리도 많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세상을 보는 눈이, 세상을 보는 관점이 넓고 깊고 멀리 보게 되었다. 읽기만 한다면 하나를 얻었을 텐데 쓰기 위해 읽는다면 10가지를 얻는 셈이다. 나의 잠재력은 어디까지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