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5일 일요일 2023 JTBC 마라톤 대회가 있었다. 이 대회를 위해서 봄, 여름 훈련을 하고 몸을 만들었고 장거리 훈련도 단거리 기록도 좋아졌다.
운동은 국가 대표가 아닌 이상 과정에서 모든 건강과 기쁨을 누리지만 대회에서 기록을 내고 싶은 욕심도 사실이다.
서울 대회라 역시 다르다.
3만 5천 명 참가라니, 달릴 수나 있나 모르겠다.
아침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다. 비 맞을 각오로 뛰려고는 했지만 막상 비가 오니 좋지는 않았다.
대회로 가는 차 안에서는 초보 러너가 비 오니까 사람들 많이 안 오겠죠? 해서 모두 웃었다. 풀 러너들은 비가 오던, 눈이 오던 거의 다 온다고. 우리도 이렇게 가고 있지 않느냐고. ㅎ
가는 길부터 막히기 시작해서 서둘러 가방을 맡기러 가는데 인파에 으악 소리가 난다. 그나마 몇 번 대회 다녀본 경험으로 옷을 다 입고 갔기에 망정이니 화장실이나 탈의실을 찾았다간 시간이 엄청 걸릴 뻔했다.
신청 인원에 비해 짐을 맡기는 공간이 좁아서 지나가기가 상당히 불편했다.
화장실을 찾아서 가는 도중에 만나기로 한 이현옥 님을 우연히 만났다. 만나려고 해도 만나기 힘든데 이렇게 가다가 만나다니 만날 인연인가 보다. 단톡방에서 만났고 SNS에서 주고받는 사이에서 대회장에서까지 만나게 된 인연은 또 뭘까
8시 출발 7시 40분.
화장실에 갔다가 긴 줄을 보고 기겁하고 다른 화장실을 찾는다. 여기도 너무 길다. 20분 이상 걸리겠다. 지나가는 아저씨가 저쪽에 간이화장실 여자 칸이 텅텅 비었다는 말에 달리기 시작한다.
화장실 찾으러 달리느라 워밍업 제대로 했다. 겨우 8시 이전에 출발선에 섰다.
남편은 첫 풀이고 25~30km 목표를 두고 무릎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만 달리려고 한다. 나는 세 번째 풀코스 완주 목표다. 목표대로 완주할 수 있을까? 비가 그친 것만으로 다행이다.
와~ 풀코스 주자가 이렇게 많다고? 대단하다~ 15000명 풀코스 러너들~리스펙트
나무 단풍이 아니라 사람 단풍으로 보여서 사람을 배경으로 찍는다.
풀코스는 기록에 따라 ABCD 조로 나누어져 있는데 4시간 58분 기록인 나와 첫 풀인 남편은 D조로 배정받았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도로에 서 있을 수도 없어서 인도에서 출발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서울은 서울이구나.
지난달에 동아일보 서울 레이스 하프에 참가했을 때도 사람이 많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때는 풀코스가 없기도 했다. 사람 조심을 해야 하는 날인가 보다.
광명 마라톤 클럽에 00 님에게 페이스메이커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목표는 4시간 20분~30분이라고 하자 4시간 30분 목표로 달리자고 냉정하게 페이스를 보자고 한다. 6분 25초로 달리고 30km 이상 힘이 남으면 조금 당겨보자고 조율했고 페이스대로 달리기 시작한다.
다행히 출발 시간에는 비가 멈추고 하늘도 파랗게 변하고 해도 비쳐서 요 정도 날씨면 아주 좋은 날씨라고 생각했다.
10km까지 6분 25초 전후 페이스로 차분하게 달리기 시작했고 몸도 가벼웠다. 많은 사람들과 달리게 되면 에너지 공명이 있어서인지 힘이 나게 되어 있다. 페이스 오버만 하지 않으면 대회는 성장의 좋은 기회가 된다.
풀코스 안내도
여러 가지 중 이번 대회 실수 하나는 코스 고저도를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울 레이스 하프 정도의 고저도라 생각하고 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생각보다 코스가 쉽지 않았고 언덕이 길어서 고전을 했다. 누가 서울 레이스는 평지라고 했던가? 언덕도 쉽지는 않았다. 특히 25km 지점 군자역 근처 언덕은 길어서 보기만 해도 질렸다. 더군다나 비도 세게 왔고 신발도 젖었는데 언덕까지... 삼중고가 겹쳐서 올라가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20km까지도 그다지 나쁘지 않고 평온하게 잘 달리고 있었다. 간간이 비도 오지만 세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프를 넘어서면서 남편은 잘 달리고 있을까 잠깐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금방 잊혔다. 내 코가 석 자이므로.
어떤 분은 지인이 5시간 달리느라 지루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지루할 틈이 없다고 답했단다. 지루할 만큼 여유를 주지 않는다. 발을 계속 내딛는데 어찌 지루하겠는가, 몸은 바쁘고 머리는 딴 생각할 겨를이 없다. 집중해야만 완주할 수 있는 게 마라톤이다.
겨우 언덕을 넘어서 이제 30km 진짜 페이스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비도 세차고 신발도 다 젖어서 기분이 영 좋지 않지만 땡볕보다는 낫다는 생각으로 달린다.
페매 해주시는 00 님도 동영상을 찍고 클럽 단톡방에 아직까지 쌩쌩하다며 메시지를 남긴다.
그리고 1~2km 더 가려고 할 즈음 오른쪽 발에 느낌이 싸하다. 스트레칭을 하고 가야겠다고 말하고 가드레일을 붙잡고 양쪽 발 스트레칭을 했다. 미리 예방해서 나쁠 게 없다. 느낌이 올 때 미리미리 풀어주는 게 나으니까.
어쩌나!
34km에서 오른쪽 발가락 2개가 붙어버리는 것 같이 쥐가 난다. 풀어주지 않으면 달리기가 힘들 것 같다.
페메해 주시는 분은 수지침 도구를 항상 마라톤 대회에 들고 다니셔서 오른쪽 발가락 5개를 콕콕 찔러 주셨다.
쥐가 날 때는 천천히 달려야 풀린다면서 속도 내지 말고 천천히 조깅하듯이 달리자고 하신다.
달리면서도 느낌이 영 시원치가 않다.
한 번 쥐가 올라오면 계속 올라오는 법인데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완주할 수나 있으려나.
걸어야 하나?
뛰어야 하나?
어차피 남은 10km 걷거나 뛰어가야 할 텐데 이 고통을 빨리 끝내기 위해서는 천천히라도 뛰자는 생각으로 천천히 내딛는다.
무거워진 발걸음에 자꾸 목이 마르다. 급수대는 멀었는데 이렇게 자꾸 목이 말라서야 원.
지친 게다.
남아있는 에너지 젤로 목을 축인다.
살살 배도 편하지가 않다. 빈속에 물만 많이 마신 느낌이다. 영 컨디션이 좋지 않다.
쥐는 올라오고, 목은 마르고, 비는 계속 오고, 뱃속도 불편하고, 힘은 남아있지 않다.
마지막 4~5km 지점
어쩔 수 없다.
걷자.
힘을 낼 수가 없어서 걸었다. 조금 걷다가 다시 천천히 뛰었다. 뛰어도 불편하고 걸어도 불편하다.
옆에 계신 페매에게는 볼 낯이 없고. 여러 가지 복잡 미묘하다.
아 무엇이 문제였던가?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다시 천천히 달리자.
다시 쥐가 올라와서 스트레칭을 하고 천천히 달린다.
오늘의 나의 미션은 천천히 달려서 완주하는 거다.
기록 목표는 이미 물 건너갔다.
완주만이 나의 목표로 재설정한다.
삶은 항상 변수가 있는 법
오늘 너무 많은 변수가 달려들었어.
3~4km 남았을 때는 왜 이리 거리가 좁히지 않는 건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사막과 같다.
1km 겨우 내딛는다.
마지막 100m 전
마지막 200m 피니시 라인이 보인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있는 힘을 다해 내달린다. 이렇게라도 달려야 덜 아쉽지.
완주 후 모습
완주라도 해서 다행이다. 사진 찍고 싶은 마음도 없었지만 웃으라고 해서 억지웃음을 짓는다. 하나도 안 아픈 척 가능하네요. 쓰러져 눕고 싶었는데 참으며 사진을 찍는다. 이때 안 찍었으면 후회할 뻔했다.
이 사진을 찍고 10 발자국 가던 길에 물을 받고 메달을 받으러 가는 도중에 쥐가 찌르르 올라온다.
이번에는 느낌상 걸을 수 없을 것 같다. 못 걷겠다고 하니 페매 00님이 바닥에 누우라고 해서 다리를 풀어주셨다.
오른쪽 다리가 풀릴 것 같더니 왼쪽 종아리에서 쥐가 올라온다. 으악 소리가 저절로 난다. 왼쪽 오른쪽 쉴 새 없이 쥐가 계속 올라온다.
숨쉬기가 힘들어 들이마시고 내뱉기를 한다. 하늘이 노랗다. 이렇게 힘들게 마라톤을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후후 내뱉는다.
왼쪽 팔, 오른쪽 팔로 다시 쥐가 올라온다. 왼손으로 오른쪽 팔을 두드리고, 다시 오른손으로 왼쪽 팔을 두드린다.
페매님은 계속 다리를 풀어주고 수지침으로 발가락, 종아리를 딴다. 손가락 10개도 따 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힘들어 죽을 지경이나 그 따끔함이야 아무려면 어쩌리.
20분 정도 시간이 흘렀나 보다.
이제는 추워서 이가 부딪힌다. 비에 젖고 땀에 젖은 몸이 가만히 바닥에 누워 있으니 한기가 느껴진 것이다.
페매님은 주변에 버린 비옷을 찾아 두 겹으로 입혀주셨다. 비옷을 입으니 한결 따듯했고 빨리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고 이동하자고 하신다.
신발을 신을 수가 없다. 다시 발에 힘을 주면 쥐가 다시 올라온다.
겨우 신발 뒤축을 구부리고 어그적 걷는다.
클럽 회원들은 모두 식당으로 이동했고 훈련부장님과 몇 분만 기다리고 계셨다.
남편은 25km 지점에서 후송 버스를 탔고 탈의실 앞에서 만났다. 무슨 일이냐고?
지난번 울릉도 마라톤에서는 넘어져서 119를 타고 병원에 다녀왔고 얼굴에 밴드를 붙이고 나타나더니 이번에는 절뚝거리며 만났다.
볼 때마다 놀래킨다며 어이없는 웃음을 짓는다.
남편은 D조 맨 뒤에서 달렸기 때문에 25km가 지나서는 교통 통제 해제해야 하니 인도로 올라가라고 했다고 한다. 버스를 탈 사람은 타라고 하니 마음이 조급해서 뛸 수가 없었단다. 인도에서 뛰다가 사람들 피하고, 교통신호 대기했다가 뛰어야 하고 결국 버스를 탔는데 버스가 10호 차였고 사람들이 그나마 많이 타서 덜 부끄러웠단다.
정확한 숫자인지는 모르겠으나 풀코스 완주율이 보통 50% 정도라고 하는데 이번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완주만으로도 대단한 성과가 될 것 같다. 남편은 최장거리 27km 처음으로 달렸으니 잘한 거다.
jtbc 대회는 풀코스 5시간 완주 제한 시간이 있었다. 춘천마라톤은 6 시간인데 초보는 사실 5시간 안에 완주하기가 힘들다. 서울이라는 도심이기 때문에 5시간인 것 같다.
후송 버스는 타지 말자고 기를 쓰고 달렸는데 남편은 그 버스를 타고 와서 메달까지 받았다.
비도 오고 달리기 좋은 환경은 아니었고 풀코스는 정말 훈련하지 않고서는 완주하기 힘들다.
남녀 통틀어 풀코스 10,321위를 했고 여자로는 1449위를 했다. 남녀 비율이 8.6 : 1.4 정도가 되는구나.
이번 대회에 풀코스가 15,000명, 10km 20,000만 명 신청했다.
풀코스 도전만으로도 주로에서 멋진 분들을 아주 많이 만난 하루였다. 그 에너지를 받아 2024 3월 동아마라톤, 4월 보스턴 마라톤 풀코스까지 가보련다. 이번 대회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서 겨우내 또 열심히 달리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