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끓이려고 부엌으로 가려는데 바로 옆방에서 불이 갑자기 꺼지는 '톡'소리와 함께 문 틈으로 새어 나오던 빛이 사라졌다. 그것도 순식간에.
잔소리를 할까 그냥 지나갈까 2초 고민하다가 내 할 일이나 하자며 차를 들고 방으로 들어와서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싫은 소리를 하면 나의 상쾌한 아침이 깨어질 것이고, 그 소리를 귀담아들을 만큼 아들 또한 맑은 정신이 아닐 게다. 요즘 맑고 밝은 얼굴을 못 본 지가 3주가 지나고 있다.
딸 둘과 달리 세 번째 가지에 태어난 아들은 참 다르다. 딸 둘은 게임을 해도 10~20분쯤 하고 마는데 이 아들은 뇌구조와 신체구조가 달라서인지 게임을 좋아하고 밤을 새우기까지 한다. 이해하지 못하는 일을 하나씩 하는 바람에 계속 아들에 대한, 남자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다. 남편도 게임을 좋아하지 않아서 더 이해가 가지 않으나 공부하면서 머리로 이해하고 있다.
초6 아들 2학기에 드디어 스마트폰을 사줬다. 2G 폰을 1년 동안 주머니에 몰래 갖고 다니다가(창피하다고 친구들 앞에서 절대 꺼내지 않음) 스마트폰을 사니 게임 삼매경이다. 스마트폰이 없다고 해서 게임을 안 한 건 아니다. 아빠 핸드폰이나 내 핸드폰을 빌려서 게임하곤 했다. 그러나 빌려서 하는 건 다시 돌려줘야 한다는 의미다. 아빠, 엄마가 외출했을 때는 하지 못하고 저녁에 잠깐 하려고 하면 전화가 오거나 전화를 걸어야 할 상황이면 게임이 이어질 수가 없다.
그런데 스마트폰이 생겼으니 아들 세상이었겠지.
3개월을 즐기라고 놓아뒀다. 얼마나 갖고 싶고, 하고 싶었을지 짐작이 간다.
혼자서 잘 조율하면서 사용하라고 약속을 했고 별 다른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제재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아침에 잘 일어났고, 학교도 잘 다녔고, 학원 숙제도 빠지지 않고 스스로 해갔기 때문에 스마트폰에 대해서는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문제는 방학이 시작되면서 문제도 시작되었다.
낮밤이 바뀌었다. 학교에 가지 않다 보니 늦게 일어나도 되고, 늦게 일어나니 다시 늦게 자게 되고, 다들 자는 밤 시간에 친구들과 늦게까지 게임을 하는 패턴으로 바뀌고 말았다. 낮 1~2시에 일어나다 보니 슬슬 한두 번씩 학원도 빠진다.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기 시작하면 어른이 나서야 할 때다.
1차 경고를 줬다.
" 일찍 자거라"
1주일 후 2차 경고를 줬다.
"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거라"
1주일 후 3차 경고를 줬다.
" 이번 일주일 잘 지켜보고 엄마가 시간을 조율할지, 네가 조율할지 정할 거야."
3주 간에 3차 경고가 끝났다.
어떻게 해야 할지 남편과 의논하고 핸드폰을 좋아하는 아이들에 관한 심리학자의 강의를 듣고 나서 결정을 했다. 저녁에 아들을 불러서 남편과 셋이 있는 자리에서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가 아니라 일방적인 통보였다.
" 아들아, 이제부터는 엄마가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조율할 거야, 이제 네가 스스로 하기 힘든 것 같아.
먼저, 자신의 방 청소는 자신이 매일 할 것,
둘째, 숙제를 다 하고 스마트폰 게임을 할 것,
셋째, 청소기 돌리기, 바닥 닦기, 설거지, 빨래 널기, 빨래 개기 다섯 가지 중 하루 1가지 한 후에 스마트폰 사용할 수 있어. 그 전엔 엄마가 스마트폰 주지 않을 거야. 아빠하고 의논한 내용이야. "
당연히 반발이 심했다. 자신이 조율할 수 있다면서 한 번만 믿어달라고 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 먼저 어질러진 네 방 청소부터 해라"
아들은 단호한 엄마의 말에 투덜투덜 대면서 널브러진 옷과 책으로 뒤덮인 자기 방을 정리했다.
그리고는 스마트폰을 달라고 한다.
" 두 번째, 숙제를 다 했니?"
" 숙제 2시간 걸린단 말이야."
" 2시간 걸리니까 지금부터 해야지."
" 아이~ 진짜..."
토라져서 가더니만 대성통곡을 한다.
들으라고 더 '꺼이꺼이' 우는 것 같다.
결코 약해지지 않는다. 이번 만은.
30분 후 가보니 방에 불이 꺼지고 조용해졌다. 문을 열어보니 잠자고 있었다.
다행이다. 지금 9시도 되기 전에 자면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날 테니까.
밤 2시가 되었다.
" 엄마, 핸드폰 주세요?"
" 왜?"
" 잠 일찍 잤더니 깬 김에 숙제하려고요. 핸드폰에 숙제 내용 있으니까 볼게요."
" 아니, 지금 주지 않을 거야, 숙제는 새벽에 하지 않아도 돼. 밤에 자고 아침부터 시작해도 돼."
" 잠 안 온단 말이에요. "
" 그래도 그냥 누워 있어. "
" 에이, 엄마는 정말... "
원망스럽겠지. 엄마가 처음부터 조금씩 사용하도록 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내 잘못이다.
귀찮다는 이유로 그냥 방만하게 사용하도록 한 것은 아닌지 후회가 되기도 했다.
어른도 조절하기 힘든 스마트폰 사용을 초6 아들이 하는 건 무리였을까.
아침이 되자 아들에게 핸드폰을 건네주자 오전에 숙제를 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1시에 가는 학원도 쌩쌩한 얼굴로, 푹 잔 얼굴을 개운하게 다녀왔다.
스마트폰 특단조치 이틀째 되는 날이다.
" 엄마, 잠을 푹 자니까 개운해요. 억지로 일어나는 게 아니라 그냥 눈이 떠져서 일어나니까 기분도 좋아요.
저녁에 숙제하고 자니까 숙제 걱정하면서 자지 않아도 돼요."
" 그래? 와~ 대단한 경험 했네, 엄마는 아들이 잘 해낼 줄 알았어. 게임하고 싶은 마음을 잘 조율하는 것은 엄청난 인내심이 필요한 거야. 너 대단하다. "
옆에서 남편도 칭찬을 거든다. 잘 해낼 줄 알았다면서.
" 오늘은 책상 정리, 엄마하고 같이 해보자. 안 쓰는 책과 종이들은 모두 버리고 깔끔하게 책상 정리할까?
엄마가 뭘 버려야 할지 모르니까 네가 이 상자에 넣어줘. 재활용 버리는 날 버리자."
" 알았어요."
" 정리를 한다는 건 자기를 돌보는 일이래. 네 방이 깨끗해지니까 기분도 좋고 뭐든지 바로 시작할 수 있어서 더 집중도 잘 될 거야"
6학년 때 썼던 종이들, 연습장, 다 쓴 문제집을 모두 버린다. 책꽂이가 가볍고 산뜻해졌다.
2차 미니멀 프로젝트 책 정리한 후 책꽂이
'똑똑한 정리법'을 쓴 정희숙 작가는 '정리는 자기를 돌보는 일'이라고 의미 있게 정리했다. 내가 공간에 사는 건지, 짐들이 공간에 사는 건지 모를 때가 있다. 우리 집도 3번의 미니멀 라이프 프로젝트를 통해서 집이 한결 가벼워졌다. 집이 정리되면 뭔가 할 의욕도 생긴다. 자기 방은 자기 스스로 정리한다는 의미에서 자부심도 느끼고 개운한 마음에서 집중력이 잘 될 거라고 믿는다. 앞으로 프로젝트 3번은 더 해야 우리 집도 내가 원하는 그림이 나올 것 같다.
'청소력'을 쓴 마쓰다 미쓰히로는 '당신의 방이 당신의 마음 상태'라고 했다. 어질러질 때 이런 문장을 보면 창피해진다. 그만큼 정리를 할 마음이 있다는 것은 다른 모든 일을 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뜻이다. 부자가 되려면 청소를 하라는 문장은 경제도서에 수없이 봤던 내용이다. 청소할 마음이 없다는 건 다른 곳에 마음이 다 가 있다는 뜻이 아닐까. 주변을 살펴볼 마음의 여유가 요만큼도 없다는 뜻이다.
아들은 라면을 먹었던 그릇도 설거지를 스스로 한다. 빨래도 개고, 빨래를 널기도 한다. 청소기를 돌리면 아들이 닦기도 한다. 집안일은 가족이 모두 해야 하는 일이며 같이 도우면서 했을 때 나도 우리 집의 일원으로서 도움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그 심리학자가 집안일을 해야 한다고 했나 보다. 설거지나 청소도 가끔씩 시키긴 했지만 이번 기회에 새로이 습관을 같이 만들어보려고 한다.
예전에는 안 해도 그냥 넘어갔는데 이제는 넘어가는 법이 없다. 스마트폰도, 숙제도, 집안일도...
내가 너무 해야 할 일의 경계를 안 세워준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아주 큰 울타리를 세워주는 게 더 안정감이 들고 자유롭다고 한다. 경계가 없는 자유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더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