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에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려오다

세 가지에 부는 바람

" 00이 어머님, 지금 밤 10시인데 언제 아이들 데리러 오실 거예요?"

"네? 아이들이 아직도 어린이집에 있나요?"


이런이런 일 났다. 일 났어.

청주에서 신상품 발표회 마무리 후 직원 3명과 함께 귀가 중인 고속도로 차 안에서 전화를 받았다.

아직도 어린이집에 가려면 1시간이나 남았다.


남편에게 전화를 한다.


" 오늘 당신이 아이들 데리러 가기로 했잖아?"

" 내가? 나 지금 부산 출장 왔는데, 못 들었어."


어쩔 수 없다. 내가 데리고 가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시댁도 친정도 지방이라 데리러 와 줄 사람이 없다.

가슴은 두근두근거리고 마냥 기다리고 있을 아이 생각에 바늘로 가슴을 콕콕 찌르는 것 같다.

옆에 직원들이 있어서 담담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오만 가지 생각이 요동치고 있었다.


18개월 3살과 6개월 2살 자매가 얼마나 엄마,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출산 후 3년 동안 집에만 있어서 몸이 근질근질했다.

뭐라도 하고 싶었는데 예전 직장 상사 분이 소개해주신 출판사에 취직하게 되었다.

일을 하게 된 것도 좋았고 하는 일도 좋았는데 문제는 출장이 있다는 것이다.

신상품 출시될 때 1년에 1~2번 정도라 흔쾌히 수락했는데 아이 있는 엄마에게는 그리 쉽지는 않았다.

남편은 미리 날짜 조율만 하면 내가 출장을 가거나 야근이 있을 때 본인이 6시에 퇴근해서 아이들을 돌보겠다고 한 터라 시작한 일이다. 어린이집을 알아볼 때도 늦게 까지 아이를 맡아줄 수 있는 직장인들을 위한 어린이집을 선택했다. 늦어도 밤 8시 전에는 항상 데려오곤 했다.


남편도 이만저만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회사는 출근 거리가 1시간이 소요되는 곳이라서 내가 출장을 가기라도 하면 아이들은 아침 6시 30분에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해야 한다. 우유병을 각각 5개씩 10개를 씻어서 매일 아침 챙기고 어린이집을 보냈다.

3살 2살 아이들이 자고 있는데 옷을 입히는 게 시간이 꽤 소요되고 칭얼대기라도 하면 시간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엄마인 나는 아이들의 특징을 잘 알고 있고 얼르고 달래지만 남편은 서툴고 느려서 꽤 고생했을 텐데 한 마디 힘들다는 말도 없이 담담하게 서로 도왔기에 '맞벌이'라는 것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생겨버린 것이다.

내가 말을 안 한 것인지, 남편이 들어도 잊어버린 것인지 모른다.


운전 중인 직원은 내가 사는 곳과 정반대인 곳에서 살고 있었지만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전화에 늦은 밤 11시이었는데도 감사하게 어린이집 앞까지 태워다 주셨다.


어린이집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해야 한다.

내가 놀라거나 안쓰러운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아이들이 더 놀래고 불안해할 테니까.

나날이 아이들 덕분에 강해지고 약해지는 나를 발견한다.


어린이집 원장님하고 딸 둘이 같이 있었는데 3살 딸은 엄마를 보자마자 울어버렸다. 꼭 안아주었다.

원장님은 아이들이 많이 기다렸다고. 큰애는 누워 있으라고 해도 눕지도 않고 벽에 기대고 앉아서 엄마만 기다렸다고. 작은딸은 곤히 자고 있었다.


" 집에 가자, 00아"

평상시처럼 작은딸은 업고 큰딸은 손을 잡고 나왔다.


점심에 무엇을 먹었는지, 저녁에 무엇을 먹었는지 물어보면서 집에 돌아왔다.

잠자는 두 딸을 가만히 쳐다봤다.


내가 왜 일을 하고 있지? 이 아이들을 두고 계속 일을 해야 할까?

누구를 위한 일일까?


그리곤 아침에 다시 아이들을 깨우고 출근하는 일이 이어졌다.


5년 후 세 번째 가지에 싹이 움텄다. 셋째를 임신하면서 입덧으로 일을 그만두었다.

막내에게까지 어린이집에 홀로 그 오랜 시간을 보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큰딸은 9살 2학년, 작은딸은 8살 1학년, 더 이상 피해갈 곳이 없었다.

이제 세 아이에게 집중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5년 동안 애쓴 남편과 두 딸들과 나 자신에게 그때는 참 훌륭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 가족 모두 훌륭했어, 잘 해냈어"


(눈물 한 바가지 흘리며 쓰는 글이 되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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