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로 홀딱 젖은 남편의 소나기

세 가지에 부는 바람

후두두둑

소나기다.


비 맞아서 감기 걸리면 안 되는데...


다음 달이면 두 번째 가지에 둘째가 태어난다.

연년생 자매라 걱정이 되기도 하고 키울 때 한꺼번에 키우면 좋다는 분들의 이야기도 있었다

남편과 나는 임신 사실을 알고 서로 놀랐지만 고민하는 것 자체가 둘째에게 미안한 일이라며 '땡큐'하고 바로 축하 모드로 바꾸었다.


딸은 막 돌이 지났고 유모차에서 잠이 들었다.

갑갑해하던 나와 딸을 위해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나들이를 나왔는데 소나기를 만난 것이다.


임산부가 감기 걸리면 약도 못 먹고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른다.

거기다가 지금 만삭이라 모든 게 힘든데 감기까지 걸리면 안 돼~


기분 전환도 하고 딸도 아장 아장 걷기 시작한 터라 걸음마 연습도 하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 후 주차장으로 가던 길이었다. 코끼리 열차를 타고 주차장 근처까지 가면 좋으련만 탈 수 있는 곳을 지나쳐서 애매한 거리에 있었다.


유모차도 커버를 집에 두고 가서 없었지만 덮개만 씌워도 비를 맞는 것 같지는 않다. 방수가 된다. 비 오는 날 유모차로 외출을 시도한 적이 없기 때문에 모른 것뿐이다. 역시 차는 차다. 유모차.

여름이라 슬리퍼를 신었는데 비가 세게 오니 미끌미끌거린다.

임신으로 발이 부어서 운동화가 맞지 않은지도 몇 달이 되었다.


" 이러다가 감기보다 넘어져서 더 위험해지겠다"


남편은 자신의 신발과 바꿔신자고 한다. 남편의 운동화는 컸지만 그대로 신을만 했다. 이럴 때는 발이 부은 것도 좋은 일이군.

그 대신 남편은 내 신발이 맞지 않아 맨발로 아스팔트를 걷는다.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비를 피해 빠른 걸음으로 걷고 싶지만 내 맘처럼 빨리 걷지도 못한다. 느릿느릿 허리를 붙잡고 남편의 신발을 신고 터벅터벅 걷는 모습이라니 웃음이 나온다. 남의 눈치는 볼 겨를도 없다. 내 몸이 중요하고 뱃속에 둘째가 중요했으므로.


언제 도착하려나......


남편이 셔츠를 벗어준다. 우산으로 쓰라고 한다.

엥?


" 괜찮아. 그냥 비 맞고 갈게."

" 감기 걸리면 힘들어, 머리라도 가려."


셔츠를 벗어주고 본인은 메리야스만 입고 빗속을 가겠다고?

근육을 보여줄 것도 없는 양반이.

본인이 퀸의 프레디 머큐리인줄 아나?

다행이다. 흰색 메리야스가 아니어서.

한여름이어서.


갑자기 집을 나설 때 핀잔을 준 생각이 난다. 한여름에 긴팔 셔츠를 왜 입냐고 했더니 소매 걷으면 된다면서 무심하게 말했었다. 또 미안해지네.


셔츠로 머리를 가리고 걸으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남편의 모습은 뭉클했다.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가는 걸까? 이제 서른 한 살인데.

아빠가 되려면 이런 모습이어야 하나?

자신만 생각하던 사람에서 세 명을 챙기고 희생하는 사람으로 바뀌어야 하는 걸까?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주차장에 도착할 때까지 딸은 비가 오는 줄도 모르고 곤히 자고 있었다.

아이만의 특권을 충분히 누리고 있는 모습이다.

부모의 사랑과 보호를 받아야 마땅한 나이 2살.


딸은 하나도 젖지 않았고 나도 거의 젖지 않았다.

그 대신 남편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빗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홀딱 젖었다.


한 아이를 맞이한다는 것은 그의 우주를 만들어 주는 일이다.

아이의 우주를 만들어주기까지 부모와 주변의 역할은 우주보다 더 큰 세상이 되어야 함을 배우는 날이었다.

작은 나의 우주가 너무도 큰 남편의 우주에 홀딱 반해버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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