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분명히 뭔가 길이 있을 거야, 넌 대체 어떻게 하지?"
"너 스스로 생각해 내려고 애써야 해. 그리고는 정말로 네 본질로 나오는 것, 그걸 하면 돼. 다른 길은 존재하지 않아. 네가 너 자신을 찾아낼 수 없으면 다른 영(靈)들도 찾아낼 수 없을 거야"
-155p 민음사 -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헤매던 크나우어가 싱클레어에게 묻습니다. 싱클레어가 뭔가 길이 있을 거라고 하면서요, 하지만 싱클레어는 본인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고 말해요.
우리는 길을 헤맬 때 누군가가 말해주길 바랍니다. 조언도, 충고도, 제안도 받지만 결국 선택하는 건 자신이고, 책임져야 하는 것도 자신이라서 스스로 찾아내야 하죠. 타인에게 묻는다고 뾰족한 답이 나오기도 어려워요. 자신의 상황을 전부 다 타인이 이해할 수도 없으니까요.
모든 사람에게 진실한 직분이란, 단 한 가지였다. 즉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것, 누구나 관심 가져야 할 일은
아무래도 좋은 운명 하나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찾아내는 것이며, 운명을 자신 속에서 완전히 그리고 굴절 없이 다 살아 내는 일이었다. 다른 모든 것은 반쪽의 얼치기였다. 169p
진실한 직분이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운명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것, 자신 속에서 완전히 살아내는 일이라고 하는데요. 이런 삶이란 과연 어떤 삶일까 다시 고민하게 되네요. 자기 자신에게 간다는 뜻은 무엇일까요? 타인이 보기에 좋은 삶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해야 하는 일, 내가 선택하고 책임지는 삶이 자신에게 간다는 뜻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려면 꾸준히 자기 자신에 묻고, 도전하고, 경험하고 실행하는 삶이 자신에게 가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자신의 운명이 될 테니까요.
각성된 인간에게는 한 가지 의무 외에는 아무런, 아무런, 아무런 의무도 없었다. 자기 자신을 찾고, 자신 속에서 확고해지는 것, 자신의 길을 앞으로 더듬어 나가는 것. 어디론 가든 마찬가지였다. 169p
자기 자신을 찾고, 자신이 확고해지고, 자신의 길을 더듬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군요. 어디로 가든지요. 완벽한 길이란 없어요. 각자에게 가는 길이 다르니까요. 자신을 찾으며 더듬어 나가는 자체가 자신에게 이르는 길이고 우린 자신에게 이르는 길을 찾다가 죽겠죠. 그게 삶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요. 찾을 수 없지만 찾다가 죽는 삶, 마무리되진 않지만 찾다가 떠나는 삶이 죽음으로 정의되겠죠.
3월 북클럽 도서인 '건너가는 자'에서는 건너가는 자체가 깨달음이고 해탈이라고 했거든요. 매번 건너가기, 다 함께 건너가면서 성장하는 삶이 각자에게 의미 있는 삶, 각자에게 이르는 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