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으니 '수도원'이 눈에 띕니다. 싱클레어집이 수도원의 일부라고 나옵니다.
<수도원의 일부였던 싱클레어의 집>
작가인 헤르만 헤세는 실제로 시인이 되고 싶어서 수도원을 도망쳐 나온 일이 있다고 합니다. 자신의 경험을 비유와 상장을 통해서 데미안 책 곳곳에 넣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이 없는 글은 나오지 않으니까요.
거기다가 매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문장이 있다고 나옵니다. 암컷 매는 에바부인이라고도 하고 초월적 존재, 여기에서 나오는 아브락사스 신인 선과 악의 통합적인 신을 뜻하기도 한대요. 그 수도원이었던 집에서 싱클레어는 기존의 관습과 자유롭고 싶은 초월적 존재 사이에서 성장해 나갔다는 뜻이라고 생각하지 대단한 의미가 있는 표식을 데미안이 찾은 거죠.
<틀린 게 틀린 게 아니고, 맞는 게 항상 맞는 게 아니다>
데미안의 등장에 따라 가장 큰 인식의 변화는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였죠. 악이라고 생각하는 카인이 꼭 나쁘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비판의 시작이었어요.
예전에 고교시절에도 역사 선생님이 교과서가 전부가 아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교과서를 기본으로 모든 것에 의심을 가지고 사실을 더 자세히 알아보라고 했죠. 뭔가 숨겨진 역사가 있는데 감추고 있나 했던 기억도 있어요.
모든 공부가 처음에는 기본만 가르치고 거기에다가 자신만의 생각과 비판적인 시각을 갖추면서 자아가 되고 정체성이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기본이 전부인 줄 알고 있으면 사고의 폭이 좁아집니다.
사실, 어떤 사건 하나도 단순한 한 가지 일로 일어나지만은 않기에 다양한 원인과 결과를 알아봐야 하고, 그 원인 속에서도 또 다양한 원인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정치적, 경제적 일도 다 마찬가지고요. 삶이 그렇게 복잡 다변한 일인 것 같습니다.
<비판적 시각의 출발점>
그래서 데미안이 동생 아벨을 죽인 형, 카인이지만 꼭 나쁘다고만 할 수 없고, 오히려 반대의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라고 힌트를 준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아는 많은 사실이 알고 보면 반대로 좋은 일이 나쁜 일인 경우도 많고, 나쁜 일이 좋은 경우일 때도 있어요. 그래서 누군가를 판단하는 일이 더 조심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질문하기>
나에게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는 일은 어떤 일이었을까?
반대로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일은 어떤 일이었을까?
왜 시기에 따라 달라졌을까? 그러면 나는 현실에서 어떤 판단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어떤 의문을 가지고 사물, 사건, 상황, 사람을 바라봐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