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꺼내다가 책꽂이에 꽂혀있는 태교일기장을 보게 되었다. 세 아이 태교 일기장이다. 태교라고 하기엔 쑥스러운 그냥 임신했을 때의 기록이다.
아이를 기다리는 엄마의 마음과 앞으로의 고민, 아가를 기다리는 마음, 그 상태의 마음을 썼다. 임신했을 때 태교가 중요하다는 책을 읽고 좋은 말, 좋은 행동, 좋은 음식을 먹기 위해 애쓴 기억이 있다. 커피도 아이스크림도 먹지 않았다. 그 덕분인지 아이들은 건강하게 태어났고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연년생 두 아이는 친구처럼 서로 싸우기도 하고 서로 기대기도 하는 사이처럼 보인다.
두 아이가 초등 1, 2학년 때 셋째를 임신했다. 태교 일기장을 쓸까 말까 고민했더니 두 아이 모두 써야 한다며 말한 적이 있다. 아이들은 잊어버렸을 테지만 난 일기장에 기록해 뒀다.
가끔씩 읽으면 엄마가 많이 사랑하는구나를 느낀다고 했었다. 결국 셋째까지 쓰게 되었다. 그때는 정말 건강하게 태어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다가 자랄수록 뭔가 조금씩 더 잘하기를, 열심히 배우기를 바랐던 적도 있다.
아이들은 고등학생이 되면서 스스로 뭐든지 잘 해냈다.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열심히 했던 과정만큼은 인정한다. 지금까지도 그 습관은 여전하고 나름대로 하나씩 성장하고 있음을 옆에서 지켜보곤 한다.
특히 막내는 아직도 갓난아기 시절이 많이 생각난다. 고등학생이 되어도 여전히 아장아장 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막내는 어느새 엄마 키를 훌쩍 넘어 아빠 키를 넘보고 있다.
물건을 번쩍번쩍 들 때는 왠지 낯선 느낌까지 들기도 한다.
중간중간 태교 일기장에 글을 남긴다. 몇 년에 한 번씩 남기기도 하는데 어제도 글을 첨가했다. 쓰고 싶은 날이 어제였다.
결혼할 즈음, 독립할 즈음 주려고 계획 중이다. 자기들이 한 번씩 보기도 하고 같이 볼 때도 있다. 그 당시 글솜씨는 없었지만 마음만은 아가들을 향한 사랑이 그득하고 나 자신에 대한 불안도 있더라. 아이들을 키우는 일에 대한 두려움, 일하고 싶은 욕망과 갈등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돌아보니 모두 잘한 일이었고 잘 커줘서 감사할 뿐이다. 이렇게 나는 아이들이 자란 후에 글을 쓰고, 북클럽을 운영하고 시집 필사 출간 모임도 하고, 마라톤도 하다 보니 그동안의 고민이 헛되지는 않은 것 같다. 자양분이 되어 지금의 내가 되었다.
이제야말로 날개 돋친 듯 내가 펄럭일 때가 아닌가 한다. 태교 일기장이 내 삶의 한 기록이 되었던 것이 나를 독서와 글쓰기로 안내한 첫걸음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