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전체 필사하고 있어요.
2회 독서 후 필사하면서 더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1년을 계획하고 필사하는데 여전히 어렵지만 전체적인 니체가 말하려고 하는 맥락은 일관적이게 통하는구나를 알게 되었어요.
니체만의 간접적인 표현, 비유, 상징, 강렬한 어휘 선정, 기존의 통념을 뒤집는 표현 등이 수학 문제를 푸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니체는 과연 읽기와 쓰기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요?
매일 노트 한 페이지 분량 정도만 필사하려고 계획하고 있어요. 더 많으면 이해하기도 어렵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이죠. 15분 필사하고 1시간 내에 이해하고 마무리하려고 하는데 오늘은 시간이 더 많이 걸렸어요.
생각할 게 더 많았다는 이야기가 되겠죠. 이럴 때는 많은 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이해하고 넘어가자, 읽고 실천하고 깨닫는 게 중요하다고 다독이며 시간을 할애하죠.
나는 모든 글 가운데서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피로 쓰라. 그러면 그대는 피가 곧 정신임을 알게 되리라.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63p, 민음사
이 내용은 지난번 독서 후기에도 썼던 문장인데도 다시 읽어도 각인이 됩니다. 자신의 찐 경험, 고통을 통한 배움, 시련, 진정한 사유를 통한 글을 쓰라는 말로 해석하고 있어요. 그런 마인드가 곧 나의 정신이고 내가 되는 게 아닐까 해요.
글이나 책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라는 생각으로 글 쓰는 게 두려웠던 적이 있었어요. 5년 전부터는 무조건 연습이다 생각하고 쓰자는 생각으로 바뀌었어요. 쓰면서 더 생각이 넓어지고 창의성이 생기거든요.
읽는 것보다 더 많이 깨닫고 성장할 기회가 많기 때문에 서툴고 부족하지만 자주, 많이 쓰려고 합니다. 쓰는 자체가 읽는 것보다 훨씬 고통스럽습니다. 생각대로 잘 안 써지기도 하고 뭘 써야 할지 모를 때도 많으니까요. 이런 초보자적인 단계가 없다면 성숙한 단계는 아예 생기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매일이 도전이라는 생각으로 씁니다.
나의 직간접 경험이 모두 저의 피로 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모든 사람이 읽기를 배운다면 결국에는 쓰는 것뿐만 아니라 생각 자체도 썩고 말리라.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63p
니체는 독서를 그다지 좋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냥 책을 수용한다면 자신의 생각이 없고 다른 사람의 생각만 주입한다는 뜻에서 이 문장을 쓰지 않았을까 싶어요.
소크라테스도 읽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오히려 문자가 사람들의 기억력을 약화시키고 진정한 지혜를 방해한다고 했어요. 문자에 질문을 해봐도 답이 없다고 하면서요.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질문과 답변을 통한 상호작용으로 능동적 대화가 중요하다고 했죠.
대화를 통해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진정한 지식은 영혼에 쓰인 글이라고 했어요. 독서든, 글쓰기든, 대화든 깊이 있는 대화, 진정성 있는 대화,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도구로 쓸 때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고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고 읽기만 하는 것을 니체도, 소크라테스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니체야말로 순종적이고 수동적인 자세를 책 전체를 통해서 비판합니다. 주체적으로 자신을 이겨내고 항상 건너가고 도전하라는 초인, 위버멘쉬를 강조해요. 기존의 전통적 질서에 순종하지 말고 자신의 개인 의지로 극복하고 도전하라고요. 지금 현시대에도 통하는 메시지라고 생각해요.
거대하고 높이 자란 인간들만이 잠언을 들을 수 있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64p
피와 잠언으로 쓰는 자는 읽히는 것이 아니라 암송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는데요. 작가는 책을 읽고 독자가 변화, 성장하기를 바라지 않을까요?
저도 전자책 '풀코스 마라톤 나는 이렇게 52세에 완주했다', '나는 오감으로 읽는 여자'를 통해서 독자가 그냥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매일 5km라도 도전하는 삶, 거기다가 훈련해서 풀코스를 완주하고 자신감, 자존감, 도전정신, 다른 일에도 마라톤이 영향력을 끼치기를 바라거든요. 후자 책으로는 책을 읽을 때 시각적인 것 외에 오감으로 읽으면서 더 넓은 경험을 하기를 바랐습니다.
니체는 잠언은 산봉우리라고 했는데 거대하고 높이 자란 인간만이 잠언을 들을 수 있다고 했어요. 그 정도의 인식이 가능한 사람만이 실천하고 깨달을 수 있다는 말이 아닐까 해요. 여기서 산봉우리는 어느 정도의 위치에 도달한 사람이 느끼는 통찰, 전체를 아우르는 시각, 시련과 고통을 이겨낸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통해서 읽을 사람만 읽어라, 깨달을 사람만 깨달아라, 변화, 성장할 사람만 읽어라 하는 거친 느낌을 받아요.
내 주위에 요마들이 있기를 바란다고 하는데요. 여기에서 요마는 본능과 욕망으로 가득한 마귀라는 뜻인데요. 수동적으로 살지 말고 능동적으로 자신의 본능과 욕망을 위해 도전하라는 뜻이겠죠. 용기는 무언가 하려고 하는 의지이고 그 의지는 자신의 욕망이나 내면에서 발현되죠. 몇 시간 동안이나 끙끙대며 생각해 보고 찾아봤고 기존의 독서 내용과도 연결시켜 봤어요.
내 발아래에 깔린 구름, 내가 비웃는 저 검고 무거운 구름, 바로 이것이 그대들의 번개 구름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64p
검고 무거운 구름이 장애물이 아닐까 합니다. 저 장애물을 이겨내고 산봉우리에서 잠언을 들으러 오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 잠언을 듣고 주체적으로 능동적으로 자신의 의지를 통해서 자기 극복을 하라고 니체가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듯합니다.
이렇게 치열하게 산봉우리에서 잠언을 듣고 피로 쓴 글을 통해서 비판적 사유를 하며 매번 도전하고 자기극복하라는 니체의 말이 들리는 듯합니다.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책을 반복해서 읽고 나누고, 후기를 쓰고, 필사를 하면서 나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지를 찾고 실천하는 게 제대로 읽는 거라고 생각해요.
수동적인 독서가 아닌 비판적 독서, 깊이 사유하는 독서, 실천하는 독서를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필사, 북클럽, 후기 쓰기, 하나라도 실천하기를 하고 있어요.
어떻게 써야 할까요?
산봉우리처럼 높은 곳에 다다른 경험을, 시련과 고통을 통해 이겨낸 직간접 경험을 피처럼 소중하게 쓰라는 뜻으로 좀 더 진지하고 진중하게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진중하기 쓰기 위해서는 책 내용에서 많이 배우려고 합니다. 많이 읽고 많이 사유하려고 해요. 글을 쓰기 위해서 작가를 빙의해서 시도 쓰고, 필사도 꾸준하게 하고 있어요. 삶이 글이 되고 글이 삶이 되는 작가가 되려고 합니다.
너무 가볍게도, 너무 무겁게도 아닌 나답게의 글을 읽고 쓰려고 독서와 필사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