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에서의 뫼르소와 ‘인간실격'에서의 요조는 왜 이렇게 닮았을까?
- 김민들레 -
프랑스 작가인 까뮈의 ‘이방인‘ 소설을 먼저 읽고 일본 작가인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소설을 이어서 읽게 되었다. 일부러 읽게 된 것도 아니고 고전이라는 작품을 하나씩 읽으려고 하는데 우연히 사게 되었고 또 우연히 잇달아 읽었다.
이방인의 읽고 나서도 뭔가 찜찜한 이해되지 않는 주인공 뫼르소의 감정, 상황, 태도였다. 주인공은 왜 그랬을까? 이해하려고 주인공의 집안 환경과 사회적 분위기 직업 등을 생각해 보기도 했다. 어머니의 죽음에 감정 동요도 없고 모르는 타인이 죽은 것처럼 대한다. 왜 이렇게 감정이 메말랐을까? 뫼르소는 왜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살았을까? 생동감을 느낀 장면은 아랍인을 죽이고 난 후 냉담한 뫼르소가 감옥에서 느끼는 장면이다.
조용하게 가라앉은 공기 속에서 들려오는 신문팔이들의 외침, 작은 공원에서 지저귀는 새소리, 손님을 부르는 샌드위치 장수 목소리, 급커브 길을 올라가는 전차의 끽끽거리는 소리, 그리고 항구 위로 밤이 내리기 전에 들려오는 어렴풋한 속삭임. 이 모든 것들이 지금은 보이지 않는 길을 기억 속에서 다시 맞춰갈 수 있게 해 주었다. 형무소에 오기 전에 잘 알고 있던 그 길이었다. 그렇다. 이미 오래전 일이지만, 내가 아주 좋아하던 그런 시각이었다. 그럴 때면 가볍고 꿈도 없는 잠이 매일 나를 기다렸다. 그러나 지금은 뭔가 달라졌다. 내일에 대한 기대를 품고 다시 만나게 된 것은 내 감방이기 때문이다.
- 이방인 -
감방에서도 아주 일기를 쓰듯, 사형선고를 받은 후에도 자신의 마음을 담담하게 1인칭으로 표현한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 해석하든 굳이 변명하려고 하지 않는 것은 사회에 대한 저항일까, 삶에 대한 의욕이 없기 때문일까, 말해도 소용없기 때문일까. 어차피 사람들은 자신의 상황을 알고 이해하기보다는 또 해석하려고 달려들기 때문이 아닐까
바로 뒷날부터 읽은 일본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읽으면서는 '왜 이렇게 뫼르소 같은 사람이 또 나타났어?' 하면서 읽었다. 다른 점이라면 이방인의 뫼르소는 냉담하고 조용한 반면에 인간 실격의 요조는 다른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리려고 방탕한 생활을 하지만 항상 겉돌고 스스로 괴로워하는 인물이다.
둘 다 기본적으로 자신을 이해받지 못하는 가정환경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 배경은 무엇일까?
세상. 저도 이제 그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알기 시작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것은 개인과 개인 간의 싸움이고, 즉각적인 싸움이며, 그 자리에서 곧장 이겨야 하는 싸움이다. 인간은 결코 인간에게 복종하지 않는다. 노예도 노예 나름의 비열한 보복을 한다. 그러니 인간으로서는 그 자리에서 벌어지는 한판 승부에 기대는 것밖에 살아남을 방법이 없다. 나라를 위한다는 식의 대의명분을 부르짖기는 하지만 목표는 언제나 개인이고, 그 목표가 충족된다 하더라도 결국 또 다른 개인이 등장할 뿐이다. 세상의 난해함은 개인의 난해 함이다.
대양은 세상이 아니라 개인이다…… 그러자 저는 세상이 거대한 바다라는 환영에 겁먹고 벌벌 떨던 데서 조금은 해방되어, 예전만큼 끝없이 눈치 보는 일 없이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적당히 뻔뻔하게 처신하는 기술을 몸에 익혔습니다.
- 인간 실격 116p -
세상의 난해함은 개인의 난해 함이라는 말에서 한참 머물렀다. 세상이 난해한 것 또한 인간이 난해하게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게 전쟁이든, 독재든, 기술 파괴든 사람들은 혼란스럽게 했을 테니까. 이방인은 42년, 인간실격은 1948년 출간되었는데 둘 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주인공을 다루고 있다.
1942년과 1948년 즈음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 주인공들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 가지 자료를 찾아본다.
프랑스 카뮈의 이방인은 1차 대전 후 유럽의 허무주의와 기존 가치관이 붕괴되었다고 하며 인간실격은 2차 대전 후 일본 사회의 혼란과 전통적 가치관이 동요되었던 사회적 배경이 있었다. 까뮈는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에서의 개인적 소외감을 느꼈고 다자이 오사무는 일본에서 강한 집단주의 문화에서 개인의 고립감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사회적 배경 외에 가정환경은 어땠을까?
이방인에서 뫼르소는 하층 사무직 직장인으로 어머니와 살다가 어머니가 양로원에서 사망했으며 아주 평범하게 사는 주인공으론 나오며 사회적 기대도 없으며 본인도 큰 희망을 걸고 있지 않는 인물이다.
인간 실격에서 요조는 상류층 집안의 차남으로 매우 부유하며 가족들의 기대가 아주 커서 부담을 느끼며 항상 도망가는 존재로 나온다. 뫼르소는 기대도 없이 살아가며 요조는 너무 큰 기대에 부담을 느끼는 부분이 대조적이다. 둘 다 가족에게서 인정과 사랑을 받지 못하는 인물로 뫼르소는 어머니에 대해서는 감정 표현이 없는 인물로, 요조는 가족의 억압으로 아버지에 대하 두려움과 반항이 느껴진다.
동서양의 차이일까? 너무나 서양은 개인주의라서, 너무나 동양은 집단주의라서 외로워하는 주인공이라니?
이방인의 마지막 문장은 행복했다고 하면서도 외롭다고 표현을 하는 부분이 안타깝다.
나와 세계가 무척 닮아 마치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것이 완성되려면 내게 남은 소원은 오직 하나, 내가 덜 외로워하도록 내가 사형 집행을 받는 그날 많은 구경꾼들이 몰려와 증오에 가득 찬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 이방인 157p 미르북컴퍼니 -
인간 실력의 마지막 문장이다. 순수하고 재치 있던 요조도 삶을 마감하는 스토리다.
우리가 아는 요조는 정말이지 순수하고 재치 있고, 술만 안 마셨더라면, 아니, 술을 마셨어도...... 천사처럼 착한 친구였지
- 인간실격 163p 미르북컴퍼니 -
죽음 앞에서 삶을 다시 생각하는 뫼로소, 항상 살고 싶어서 발버둥 치고 저항했던 요조를 통해 무엇을 배웠을까? 그 방법밖에는 없었을까? 좀 더 지혜로울 수는 없었을까? 가정, 사회, 국가는 어떻게 해야할까?를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