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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자반 Dec 09. 2021

미분기하학을 떠나보내며

수학) 개인적인 이야기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던 그날의 밤이 생각난다.

'복소해석학2' 시험이 있던 전날 밤. 지금으로부터 딱 1년 전 되시겠다.


이전 학기에 수강했던 '복소해석학1' 과목과는 달리 복소해석학2의 전날 밤은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유는 바로, 그날이 복소해석학을 공부하게 되는 마지막 날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마치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애인을 떠나보내는 것 마냥, 잠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나는 또 하나의 과목을 떠나보냈다. 내가 수학을 전공하게 된 가장 큰 이유를.

어차피 오늘도 잠이 오지 않을 듯 하니, 개인적인 이야기를 몇 자 적어보려 한다.





-너는 버텨내지 못할 거야


고등학교 2학년, 당시 학교 수학 선생님에게 들은 말이었다.

고민 고민을 거듭하다 수학 전공을 하고 싶소이다,라고 말하는 나에게 내리꽂은 비수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너는 끈기가 없으니 수학 전공에서 버틸 수 없다.'라고.


그 당시는 그 말에 아파할 겨를도 없었다. 아 나는 수학을 잘 못하니까, 내가 끈기가 없어서 수학을 잘 못하나 보다, 고등학교 수학도 잘 못하는데 수학과를 선택할 수 없지. 그렇게 나 자신을 더욱 깊게 찔렀다.


선생님은 나를 꽤 자주 괴롭히셨다. 내가 써온 수학 관련 소논문의 주제, 그것의 세부 내용, 에세이, 그것들을 비난하고 또 비난하셨다. 당시 나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쉽게 말하자면 곡면에서의 기하학이다. 평면에서는 삼각형이 180도이나 구면 위에서는 180도보다 크다.)에 관심을 가졌는데, 그것은 수학과 대학원 과정에서나 배울 수 있는 내용이고 나는 절대 그 세계에 범접할 수도 없을 것이라 말씀하셨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설명하는 이미지, 위키피디아


아직도 기억나는 일화는, 내 소논문의 내용 중 '곡률'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소논문 중간 점검을 받던 중 그것에 대해 나에게 물어보셨다. 곡률을 이해하고 쓴 것이냐, 곡률에 대해 어디 한번 읊어 보아라.

안타깝게도 그때는 기하학에 대한 열정이 활활 불타던 시기라 정의는 알고 있었다. 시키지도 않은 예시까지 들어 떠듬떠듬 설명을 했다. 그것이 그리도 못마땅하셨는지 자신의 책상에 있는 '미분기하학'책을 펼쳐 나를 따박 따박 다그치셨다. 네가 알고 있는 곡률은 '진정한' 곡률이 아니고 '진정한' 곡률이라는 것은 이런 책에 나오는 거라고.

그것이 나와 미분기하학의 첫 만남이었다. 여러 의미로.





-모두가 기피하는 과목


어찌어찌 4학년이 되었다.

공과대학에 입학했지만 수학과를 복수전공으로 선택했고 나의 모든 과정은 미분기하학을 가리키고 있었다.

대학원에나 가서야 배울 수 있는 그 '대단하신'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첫걸음이 미분기하학이기 때문이었다.

미분기하학을 수강 신청하는 것은 고등학교 생활 동안 내가 들은 모든 말의 반증이었다.

그렇게 열몇 명 남짓한 수강생 속에 내가 들어있었다.


더럽게 어려운 데다가 학점을 후하게 주는 것도 아니고, 2주마다 과제가 주어지는(발표는 덤) 기피 1순위의 수업에.


문제의 '곡률' 중 한 부분을 정리한 노트,  두 페이지를 합치려는 바람에 약간 잘렸다.

미분기하학 1, 미분기하학 2(수강생 5명..), 1년 동안 미분기하학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는 오늘, 많은 생각이 든다. 사실 막 즐겁고 재미있었다기보다는 (공부가 재미있을 리 없다)  힘들고 답답했던 날이 더 많았던 것 같다. 풀리지 않는 연습문제,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정리, 학기 말이 다가올수록 따라주지 않는 내 몸뚱이까지,, 


그래도 마음 놓고 '끝났다'라는 환호성을 지르지 못하는 이유는, 정말 마지막이라는 미련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미분기하학을 공부하는 것이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미련, 힘들었던 어려웠던 어쨌든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생각 말이다. 


또한 6-7년간 가졌던 목표를 성취했다는 것이기도 하다. 미분기하학을 한번 공부해보겠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을 끝까지 성실하게 마친 것.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다.

그때 그 선생님이 지금의 나를 보면 뭐라고 말씀하실지.

아마 좋게 봐줘야 '음 잘했네' 정도일 것이다. 그러고 너무 간단하게도 끝일 것이다.

반대로 내가 만약 그때 수학을 포기했다면, 이라고 생각해보자.

아마 꽤 많은 시간을 '끈기가 부족하다'라고 생각한 채로 많은 시간을 허비할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요지는 이것이다.

-아무도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할 권리는 없다.

내가 성공했을 때, 실패했을 때, 그 방향에 대한 선택의 책임은 모두 내가 지는 것이다.

수학과 학사 학위 취득을 위한 요건을 실상 모두 채운 오늘, 학사 학위만큼 중요한 것을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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