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그리고 내가 살아온 이야기
*본 글에는 비속어가 다소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드라마를 보면, 사랑은 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시작한다.
"흥, 저 사람 정말 이상해! 별꼴이야!"를 외치는 순간 사랑은 시작된다.
인생도 그렇다.
나 이거는 진짜 하지 말아야지, 라고 결심하는 순간, 인생의 방향은 뒤집힌다.
마치 그것이 가만히 있던 당구공의 관성을 깨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수학이 싫었다.
왜 싫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잘 못해서 싫어했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중학교 3학년 수학 중 삼각비(sin, cos, tan)를 처음 마주했을 때의 충격이 떠오른다.
우와, 너무 멋져! 의 충격이 아니라
와, 나는 이제 망했다. 의 충격이었다.
그 당시 얼마나 충격이었느냐면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중졸로 학력을 끝내고 싶을 정도였다.
고등학교에 가면 삼각비보다 더 어려운 수학을 다루어야 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난 영원히 수학을 쓰지 않겠다.
진로에서 수학을 빼고 나니 별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외국어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정말 웃긴 것은, 외고에서 외국어를 계속 공부하다 보니 이건 내 길이 아닌 것 같았다.
뜬금없이 토목공학에 관심이 생겼다. (사춘기 시절에는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기 힘들다.)
토목공학과에 가려면 이과 수능을 응시해야 했다.
(지금은 문이과 통합형 수능으로 과목을 선택하여 보지만 그 시절에는 수학 가형, 수학 나형이 따로 있을 때였다. 수학 가형은 현재 선택과목인 모든 과목이 범위였다.)
매일 매일 하루종일 혼자 수학을 공부했다.
미친놈 소리를 들었다.
왜 외고에 왔냐는 질타를 귀에 못이 박힐 만큼 들었다.
생각해 보면, 내가 그렇게 나쁜 말을 많이 들을 만큼 잘못했나 싶다.
나는 고작 17살이었는데 영어를 하고 싶다가 토목이 하고 싶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꼭 17살이라는 나이에 한정하지 않더라도 37살이던 57살이던 새로운 자극을 받으면 다른 분야에 관심이 생길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어쨌든 계속 수학을 공부했다.
꼭 수학을 잘해서 좋은 대학 토목공학과에 진학하고 싶었다.
공부가 너무 하기 싫을 때는 도서관에서 (얼마 없는) 수학 교양서적을 읽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수학을 계속 하고 싶더라.
수학을 할지 토목을 할지 고민 끝에 토목공학과에 진학했다.
수학을 복수전공했다.
또 미친놈 소리를 들었다.
그래도 고등학교 때만큼 많이 듣지는 않았다.
사실 1년 전까지만 해도 토목을 계속하려 했었다.
복잡한 심경을 정리해서 올린 글이 바로 밑에 있는 '미분기하학을 떠나보내며' 이다.
그런데 모르겠다, 어쩐지 앞서 말한 '흥 별꼴이야'법칙에 이끌려 나는 수학과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다.
내 몇 년 안 되는 인생의 절반을 미친놈으로 살아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계속 미친놈이고 싶다.
내가 살고 싶은 대로,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내가 가고 싶은 길로 가는 것을 사람들이 미친놈이라 부른다면 나는 여전히 미친놈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는가.
위대한 수학자나 교수가 되고 싶다는 꿈 따위 없다. (물론 되면 너무 좋다.)
멋진 상을 받고 싶다는 꿈 따위 없다. (물론 주면 너무 좋다.)
내 말은, 위대한 수학자나 상은 내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이 만약 내 궁극적인 목표가 된다면 나는 '내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위대한 수학자'의 삶과 '위대한 수학자가 되기 위한 삶'을 사는 것일 뿐이다.
그러니 수학과 대학원 신입생인 나의 꿈은,
살아있는 삶을 살고 싶다.
생동감이 넘치고 싶다.
남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추기보다는,
내가 내 장단을 만들며 내가 원하는 춤을 췄으면 좋겠다.
그러니 난 여전히, 이상한 사람이다.
(물론 이것은 전적으로 나의 환경과 경험에서 파생된 나만의 견해이므로 누군가의 꿈이 위대한 수학자나 교수, 혹은 상이라는 것을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는 점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