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교수님! 제 성적을 A+로 올려주세요

수학) 학부 이야기

by 비자반

학부 시절 총 네 번의 점수정정을 요청드린 기억이 있다.

4번 중 2번은 성적이 실제로 올랐으며, 2번은 거절이었다.

사실 성적이 올랐을 때 느끼는 것들도 있었지만,

오히려 거절 의사를 받았을 때 느끼는 것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오늘은 그 거절당한 기억 중 한 가지를 꺼내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때는 2학년 2학기 공업수학 2 수업이었다.

어찌어찌 대학원까지 왔지만 사실 나는 그다지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다.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던 것은 맞지만, 공부 자체의 성과에 있어서 특출나진 않았다.

그를 증명이라도 하듯, 내가 받은 공업수학 1의 성적은 c+ 였고

절치부심하여 재수강한 공업수학 1은 b+ 였다.

F가 아닌 이상 삼수강은 불가능하기에 쓴 약을 삼키는 심정으로 b+를 받아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시작된 공업수학 2 수업.

기필코 a+를 사수하겠다는 의지가 불타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공업수학 2의 교수님은 매 주차 수업을 나간 내용을 인터넷 파일로 정리하는 과제를 내셨다.

첫 주차, 나는 5장의 파일을 제출했고

교수님이 이례적으로 나에게만 코멘트를 달았다 : 아주 잘했어요.




수업이 진행되는 16주 동안 열과 성을 다해서 과제를 했느냐, 그건 아니었다.

매주 내야 하는 과제는 '열심히'의 기준을 완화시켰고

문제를 푸는 과제가 아니라 그저 핵심 내용을 정리하는 과제였기에 소홀한 주차 또한 있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그 과제의 제출 마감일이 금요일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금요일에는 그 당시 내가 좋아하던 예능 프로그램 '신서유기'가 방송하는 날이었다.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방송을 했는데 당시 유일하게 보는 프로그램이었다.)

금요일 밤에 야식을 시켜놓고 맥주와 함께 신서유기를 보는 것이 삶의 낙이었다.

다른 일에 밀려서 공업수학 과제를 금요일 신서유기 방송 시간에 맞춰 쫓겨 할 수밖에 없었다.

방송 시간이 9시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1-2 시간 안에 과제를 후딱 하는 주차들이 있었고,

느긋하게 했던 주차들보다 퀄리티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두 번의 시험이 끝났고, 내가 받은 성적은 A0였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도 괜찮게 본 것 같은데 A0라는 성적을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교수님께 성적에 대한 문의를 보냈고

잠시 후에 전화가 왔다.


교수님이 말씀하시기를, A0의 이유는 과제 때문이라고 하셨다.

첫 주차는 너무 잘했는데 그다음 주차들 몇몇은 퀄리티가 현저히 떨어지는 걸 보면서

이만큼 할 수 있는 사람이 단지 귀찮다는 이유만으로 대충 내서 한 것이 보기 좋지 않았다고 말이다.


사실 내가 정말 모든 주차를 열심히 했으면 떳떳하게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었겠지만,

교수님이 말씀하신 내용이 사실이라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속상한 마음이 당연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어떤 사소한 일이더라도 최선을 다하리라 다짐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어떤 기준을 넘기면 만점을 주자고 생각을 하더라도

이만큼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대강 한 결과물을 보면 안 좋아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소한 일이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태도.

그것이 사람을 빛나게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떤 일이 귀찮고 싫더라도,

그것이 나에게 주어졌으면 성실히 수행하는 것이

결국 나를 빛나게 해 줄 것이라 생각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대학원생과 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