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 좀 제발 데려가세요

외고, 내 10대의 끝에서

by 비자반

"얘 좀 제발 데려가세요, 못 가르치겠으니까."

중학교 시절 수학 학원 선생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사실 그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학원을 계속 다닌 기억이 있는 걸 보니,

부모님이 어떻게든 말해서 다니기로 했던 것 같다.


수학 학원 선생님은 꽤 연세가 있는 분이셨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수학을 전공하시고, 깊게 좋아하시는 분이었던 것 같다. (물론 그때는 몰랐다)

그런데 웬 천방지축인 중학생이 와서 공부하기 싫다고 징징거리고 숙제 내면 맨날 답지나 베껴오니 데려가라고 하실 만하다.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는데,

한창 수업을 하시다가 칠판 가장자리에 아주 조그만(거의 점 같은) 사분원을 그리셨다.

"이것이 너희가 알고 있는 수학이야"

그리고 그 위로 약간 더 큰 사분원을 그리셨다.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수학이야. 이 칠판 전체가 수학의 세계라면 말이지."


이 일화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아쉽게도 내가 수학의 엄청난 세계에 압도되어서가 아니었다.

'나는 지금도 어려워 죽겠는데 이 많은 걸 !!!#!!! 역시 난 수학이랑 너무 안 맞아!!!!!'

이런 느낌에 가까운 감정이었던 것 같다.


사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수학의 세계는 그 화이트보드 칠판보다 훨씬 넓은 것 같다.

그 화이트보드 칠판 3천 개는 필요할 것 같다.


만약 선생님을 다시 뵙게 된다면

굳이 학교나 연구나 전공이 아니라,

그냥 멋쩍게 말씀드리고 싶다.

몇 번 돌아보니 칠판이 꽤 넓더라, 하고 말이다.

더 돌아다녀 보고 싶더냐, 하시면

너무 넓어서 이젠 걷기보단 굴러보고 싶다, 고 말이다.


이 시리즈를 연재하며 나쁜 기억만 꺼낼 줄 알았는데

이렇게도 예전 일에 실풋 미소가 지어지는 걸 보면

어쩌면 이 시리즈는 그리 고난스러운 강행군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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