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수학과 대학원 일기
유튜브를 보다 보면 가끔씩 묘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사람의 움직임을 조각조각 그린 그림이 노래에 따라 춤을 춘다.
이 많은 그림을 다 어떻게 그렸지? 대단하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제목에는 'AI generated'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소설 제목을 검색하면, 소설에서 글로만 쓰인 노래를 누군가 기막히게 작곡해 놓았다.
이 노래가 이런 느낌일 줄은 몰랐어! 라고 생각하는 순간 설명란에는 'AI를 사용하여 만들었습니다.'라는 문장이 적혀 있다.
그때마다 정의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 든다.
이 AI를 사용하여 노골적으로 돈을 버는 부류 또한 등장했는데,
AI 아티스트/동화작가가 되는 방법을 강의로 만들어 판다거나
인터넷에 떠도는 일화를 가공한 자극적인 내용의 쇼츠를 생산하거나
요리를 직접 하지 않고도 AI가 만들어준 레시피와 요리 사진으로 요리 블로그를 올리는 것이다.
불과 몇 달 전에는 GPT를 사용하여 작성한 논문이 유명 저널에 기재되어 화제를 모았다.
GPT를 비롯한 AI의 파도는 오직 인간만의 전유물이라 여겨졌던 창작, 예술을 넘어
수학과 공학을 비롯한 논리적 창출물의 영역마저 넘실거리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확실히 변곡점을 지났다.
주변이 급격하게 바뀌어가는 걸 보는 것은 정말 이상한 기분이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AI를 '올바르게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도서관에서 이리저리 걷다가 정말 낡은 표지의 두꺼운 책들을 보았는데, 그 서가의 모든 책들이 모두 같은 표지를 하고 있었다.
읽어보니, 1970년대 즈음의 유명 학술지였다.
그 학술지가 각 연도별로 책으로 묶여 서가 전체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논문을 읽고 싶으면 구글에 검색을 해서 해당 학술지 사이트로 들어간 후(보통 저명 학술지는 학교에서 접근이 가능하게 돈을 지불한다.) 파일을 다운로드하는 방식으로 살아온 나는 이 광경이 너무 신기했다.
예전에는 정말 불편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심 있는 논문을 찾기 위해 전체 학술지를 다 뒤적거려야 했을 것이고
ctrl+f로 원하는 키워드를 찾지도 못했을 것이다.
누군가 해당 학술지 책을 보고 있으면 다 읽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인터넷의 보급, 그리고 portable device의 보급이 이러한 편의성을 만든 것이다.
나는 1970년대 즈음의 대학원생보다 더 빨리, 더 정확하게, 그리고 더 많이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
AI가 보편화된 지금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구글에 관심 있는 키워드를 검색하고, 논문을 다운로드하고
만약 모르는 구절에 있으면 이게 뭔 소린가 하며 계속 고민한다.
예를 들어, 어떤 수식이 있는데 그 수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도통 모르겠는 경우다.
GPT 가 보편화되어 있지 않았을 때는 놓친 부분이 있는지 처음부터 다시 읽거나,
같은 분야를 공부하는 선배(혹은 교수님)에게 어렵게 어렵게 어렵게 물어봤었다.
그러나 AI(GPT)를 사용한다면 바로 GPT를 켜서 해당 페이지를 캡처하고 물어본다.
'이게 무슨 뜻이야?'
'나는 ~~ 하게 이해했는데 내가 이해한 게 맞아?'
처음부터 읽거나 선배의 답을 기다리는 긴 시간과 달리,
GPT는 바로 답을 타이핑한다.
누구나 원하는 지식을 공간적, 시간적 제약 없이 얻을 수 있는 세상이다.
밤 12시가 넘는 한밤중에도, 소란스러운 학생식당에서 줄을 기다리면서도
내가 궁금한 부분을 물어보고 답을 받을 수 있다.
그것은 내가 유명 xx교수님의 xx대학원생이어서가 아니라
누구나 그렇게 하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욱 다음의 질문이 중요해졌다고 생각한다.
: AI를 어떻게 사용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창작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과 가치관을 담는다고 생각한다.
창작물 안에 인생이 담겨있다는 뜻보다는,
사람이 창작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자신이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그 사람의 인생과 가치관에 기반한다.
글을 쓰는 것도, 그림을 그리는 것도, 작곡을 하는 것도, 요리 블로그를 하는 것도,
그리고 수학 연구를 해서 새로운 이론을 만들거나 여러 현상을 수학적으로 설명하고 예측하는 것도
큰 의미의 창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AI에게 그림을 그려달라거나, 동화를 만들어달라거나, xx주제에 대한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이론을 제시해 줘, 와 같은 요구는
내가 위에 언급한 질문에서 '무엇을'이 비었다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말'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브런치에 이 글을 쓰기 위해서
'현재 AI에 대한 문제점과 AI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사례들을 기반하여 글을 하나 써줘'
라고 요구했다면 GPT는 나보다 훨씬 빠르게(어쩌면 단 1초 만에) 그리고 어쩌면 나보다 더 멋들어진 글을 써 줄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 글을 복사+붙여 넣기 해서 내 브런치에 올리는 행위는
아무 의미도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이유는 내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싶어서 글을 쓰는 건데
방금 제시한 일련의 과정은 정말 아무 의미도 없다.
나, 혹은 가족을 위한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자신만의 방법을 공유하고 싶어 하는 블로거와
GPT가 작성해 준 요리 방법(그 사람들의 노하우를 짜깁기 한)을 복붙 하는 블로거가 같을 수 있을까?
아이들이 자라나는 과정에서 얻었으면 좋겠는(자신의 철학을 담은) 이야기를 하는 동화작가의 동화와
마우스 한번 클릭하면 생성되는 동화가 같을 수 있을까.
물론 당연히 후자가 더 빠르고, 시간 대비 돈도 많이 벌 수 있을 테고 어쩌면 더 효율적이라고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
그리고 그것은, 그 사람이 하는 일이 전적으로 AI로 대체되어도 놀라울 것이 없다는 뜻이다.
나는 이 가치관과 인생에서 비롯한 '하고 싶은 말'이 AI와 인간을 구별하는 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말이다.
그리고 그 '무엇'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AI를 적절히 활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초반에 이야기한 논문의 예시처럼 말이다.
나는 삶의 정수를 끝까지 느끼며 살아가고 싶다.
내가 느낄 수 있는 행복을 느끼면서
삶에서 만나는 여러 일들을 가치관에 쌓아가며
창작물에는 '하고 싶은 말'을 담아내면서
그렇게 살고 싶다.
그게 인간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