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성은 May 09. 2018

친구 어머니와 카톡 한 날

뮤지컬 배우를 꿈꾸던 로렌을 생각하며

혼자 방에 있을 때, 카톡 친구 목록을 내리는 습관이 있다. 다들 어떻게 사나 프로필을 들여다보며 마음속으로 안부를 묻는다. 그러다 가끔 멈칫한다. 이젠 죽고 없는 사람들이 친구 목록에 남아 있을 때.

친구의 장례식에 처음 간 건 29살 때였다.


마지막 병문안이 생각난다. 수정이와 은별이의 권유로 가게 되었다. 자소서를 써야 한다는 ㅈ같은 핑계로 다음에 간다 할까 잠시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한남대교를 지나는 버스 안에서 한강을 바라보며 '와, 세상이 이렇게 아름답구나' 하고 감탄한, 아픈 친구를 만나러 가면서 생기가 넘쳤던 나의 눈치 없음도 기억한다.


우리는  <82년생 김지영> 책과 인형 뽑기로 뽑은 도라에몽 인형을 선물로 가져갔다. 병원에 갇혀 있으면서도 페미니스트가 된 친구를 보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크게 웃진 못했다. 친구가 너무 아파 보였기 때문이다. 머리는 빡빡 밀었고 얼굴은 퉁퉁 부어 있었다.


동아리에선 그렇게 밤을 잘 새우던 친구였는데, 20분 정도 이야기하니 지쳐했다. 눕고 싶다고 했다. 마음껏 이야기하라고 자리를 비켜주신 어머니께서 나타나 우리에게 고맙다고 웃어주었다. 친구의 어머니를 그다음으로 본 건 장례식장에서였다.


아직도 마음에 걸리는 건, 친구와의 마지막 카톡이 다 같이 보자는 단체 카톡이었는데, 그 카톡방 후배들이랑 많이 친하지 않아서 바쁘다고 핑계 댔던 거... 병원에 누워있는 친구가 그 카톡방을 만들었던 건 우리와의 짧은 만남이 좋아서였다. 우리가 신나게 추억팔이를 해서, 예전에 같이 노래했던 동아리 친구들이 보고파서 만들어진 거였다. 그게 마지막 대화였다.


그 후로, 누가 만나자 하면 빼지 않기로. 웬만하면 다 나가기로 다짐했는데, 쉽지가 않다.


이번 연휴는 내게 조금 특별했다. 처음으로 돈을 벌어 부모님께 밥을 샀기 때문이다. 행사를 미리 치르고, 남은 연휴를 즐기고 있을 때였다. 어김없이 카톡 친구 목록을 내리는데 친구의 이름이 있었다. 그 밑에는 친구의 어머니 번호가 나란히 저장되어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받은 번호였다. 어머니의 프로필 글귀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잠시 뿐이야
잠깐 비가 내려서 슬펐던 것뿐이고,
잠깐 눈이 내려서 시렸던 것뿐이고,
아무 일도 아니야



친구의 장례식은 작년 6월이었다.

친구는 1남 1녀 중 장녀였다.

지금 내 나이였던 젊은 남녀에게

처음으로 어버이라는 이름을 선물해준 

세상에 둘도 없는 생명


세월호 리본을 달고 다니면서도,

어버이날이면 세상에 슬픈 부모도 있다는 사실은 자각하지 못했다.


자식을 잃은 부모가 맞는 첫 번째 어버이의 날을 생각했다. 만약에 그 친구라면 부모님께 뭘 선물했을까. 화장품을 선물했을까? 걘 뷰티 블로거였으니까... 하지만 그럼 아버지가 서운해하시겠지. 외식 상품권으로 할까?  한식 뷔페가 좋겠지? 하지만 인천엔 서울만큼 많지가 않네... 그렇게 결국 고른 건 3만 6천 원짜리 정관장 홍삼이었다. <카카오톡 선물하기>를 통해 어버이날 축하드린다는 멘트와 함께 홍삼을 보냈다. 세상이 참 좋아졌구나. 이렇게 좋은 세상이구나, 승연아.


새벽 1시였는데 순식간에 1이 사라졌다. 40분 같은 4분이 흘렀다. 잊지 않아줘서 고맙다는 어머니의 말에 조금 대화를 나눈 뒤 마무리 멘트를 적었다. 6월에 있을 승연이 기일에 수정이랑, 은별이랑 또 다른 친구들이랑 같이 가겠다고. 어머님 나중에 같이 뵙자고. 보내고 바로 후회했다.


'어머님도 나중에 같이 뵈어요!'

이 말은 고마울까, 잔인할까.

이렇게 흔쾌히 잡을 수 있는 약속일까... 

마음이 무거웠다. 

순간 친구의 블로그가 생각났다.


'혹시... 승연이 블로그 아세요?'


‘승연이 블로그? 몰라요'


승연이 블로그 주소를 가르쳐 드렸다. 파워 블로그를 꿈꾸던 그녀의 블로그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와는 결이 달랐지만 간간히 엄마라는 단어가 나온다는 것을, ctrl + F 누르고 '엄마'를 검색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 걸 몰라도 곧 알게 될 것이다. 엄마는 밤새 딸의 블로그를 정주행 할 것이다.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세상엔 내 힘으론 어떻게 할 수 없는 슬픔들이 닥치고, 그걸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어 너무 억울하다고. 세상에 잃는 게 있으면 그만큼 얻는 것도 있어야 하는데, 도대체 이런 일로 얻는 게 뭐냐고.


아직 내가 아는 건 하나밖에 없다. 비슷한 슬픔을 겪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살면서 내가 보낸 어버이날은 대부분 행복했다.

어버이날 세상에 슬픈 사람도 많다는 것을, 친구가 죽고 나서야 안다.

내 엄마 아빠가 죽고 나면 난 무엇을 깨닫게 될까.  

아직 세상엔 내가 모르는 슬픔들이 많다.

매거진의 이전글 연뮤덕이 된 시네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