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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성은 May 11. 2018

택시기사 같은 사람

누구에게나 이야기가 있다

새해 첫날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혹시 신문에 글 한번 써 볼래요?” 나의 SNS에 자주 ‘좋아요’를 눌러 주던 기자님이었다. “아직 확정은 아니고요, 2030의 이야기를 들려줄 필진을 찾고 있어요. 그런데 성은 씨 직업이 뭐죠?” “저… 백수요….”

당시 나는 미취업 졸업생. 전문적인 용어로 실망노동자(노동할 의사와 능력이 있음에도 취업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비경제활동인구가 되는 존재)였다. 기자님은 약간 곤란해했다. “필진을 백수라고 소개할 순 없는데…. 그런데 성은 씨 맨날 뭐 하지 않아요?” 

그랬다. 나는 늘 뭔가를 했다. 언론고시 준비생으로서 상식을 외우거나(평창 겨울올림픽의 마스코트 이름은 무엇인가?), 글쓰기 연습을 했고(‘내로남불’을 주제로 작문하시오), 30군데 정도 자기소개서도 냈다. 나름의 경제활동을 하기도 했는데, 주로 재밌는 영상을 만들어 주고 돈을 받는 식이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직업을 만들어 주기로 했다. 

‘기획부터 촬영, 편집까지 혼자 다 하는 사람을 뭐라고 하나요?’ 인터넷에 찾아보니 그런 사람을 ‘VJ(비디오 저널리스트)’라고 했다. 그걸로 정했다. “기자님, 저 직업이 생겼습니다. VJ라고 해주세요.” 

나는 신문에 글을 연재할 수 있게 되었고 나의 일상은 글이 되었다. 하지만 취업이 힘들다는 이야기도 한두 번이어야지. 새로운 소재가 필요했다. 그것을 찾으러 다니다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바로 낯선 사람의 번호를 따는 습관이다. 처음 번호를 딴 건 택시 안에서였다. 우연히 기사님과 얘기를 나누게 됐는데 어찌나 말을 잘하시던지, 도착할 때 즈음엔 조바심이 날 정도였다. “그래서 결론이 어떻게 됐는데요? 저 1분 뒤에 도착하는데 빨리요∼.” 술에 취한 젊은 남성에게 맞은 이야기부터, 손님이 흘리고 간 100만 원에 갈등한 이야기까지. 평생 손님이었던 나는 그날 처음으로 택시 기사의 고충을 알게 되었다. “학생, 들어줘서 고마워. 내가 글재주만 있었어도, 책 한 권은 썼을 거야.” “기사님, 저 글재주 있어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응…?”


그런데 막상 나를 소개하려니 말문이 막혔다. 언론사 기자나 PD라면 설명하기가 참 쉬울 텐데, 소속이 없으니 애매하잖아? 하지만 일단 말했다. “제가 아직 뚜렷하게 뭐가 된 사람은 아닌데요∼, 기사님 덕에 오늘 새로운 세계를 알게 돼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이야기를 해 주고 싶어요! 언젠가 기사님 인터뷰하고 싶은데, 혹시 번호 좀 주실 수 있을까요?” 

 기사님은 흔쾌히 번호를 주었다. “오메, 나야 영광이지. 나 같은 사람이 인터뷰도 하고… 고마워이∼.” 번호 따기 성공! 그런데 자꾸 기사님이 마지막에 한 말이 맴돌았다. 


나 같은 사람

그러고 보니 어떤 발언권을 가진 사람 중에 택시 기사는 없었던 것 같다. 신문에 글을 쓰는 사람들의 직업을 쭉 살펴봤지만 대부분 어디 교수이거나 화이트칼라 직종의 사람이었다. 농부나 은퇴 생활자, 가사도우미 같은 직함은 없었다. 그러한 타이틀로는 발언권을 가질 수 없는 걸까? 

다양한 사람들이 발언권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것. 운 좋게 발언권을 얻은 백수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쌓여 가는 번호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100명의 사람에겐 100개의 이야기가 있다. 조금의 각색만 거친다면 우리 모두의 삶은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저널리즘의 미래는 독자가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스토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늘 ‘내일 뭐 하지’ 고민했는데, 할 일이 생겨 기분이 좋다. ‘문송’하지 않은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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