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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성은 Jan 17. 2022

마이큐를 좋아하세요?

화가로 거듭난 뮤지션 마이큐의 창작하는 마음

*이 글은 한겨레21 제1396호에 실린 <남플리:남들의 플레이리스트> 마이큐 편 에 분량상의 이유로 담지 못했던, 하지만 저와 동행한 친구에게 큰 위로를 주었던 대화들을 추가한 인터뷰 글입니다. 다시 한번 마이큐와 한겨레21에게 감사합니다!*


마이큐(MY Q)의 음악을 처음 접한 건 19살 때다. 1집 타이틀곡 <며칠째>를 들으며 세상에 이런 아름다운 음악이 있나 싶었다. 세월이 지나 그의 새 앨범 소식을 들었다. 스무 살에 날 만족시켜준 뮤지션이 서른세 살에도 그래 줄 수 있을까? 기대 반 걱정 반 음원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앨범에 달린 댓글 하나를 발견했다.



누가 마이큐 팬 아니랄까 봐. 좋다는 말을 이렇게 하다니. 편안해진 마음으로 한껏 기대하며 마이큐의 앨범 <EMO>의 타이틀 곡 'woori'를 재생했다. 너무, 좋구나. 무엇보다 위 댓글이 무언가에 대한 응답처럼 느껴져 앨범 소개를 찾아보았다.

오랜 시간 음악을 하다 보면 처음 음악을 시작했을 때의 감정과 느낌이 무뎌지게 됩니다. 물론 음악이 하나의 직업이기에 묵묵히 지켜나가는 방법도 있지만 마음으로 창작하는 순간이 더 이상 없다면 저로서는 음악을 만들 이유가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너무나 감사한 건 저에게는 오히려 처음 음악을 시작했을 때 보다 더 큰 창작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매번 꿈틀거린다는 사실입니다. 저도 가끔 이런 순간에 놀라며 창작하는 순간은 언제나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한 마음으로 자유롭게 헤엄칩니다. 하지만 음악으로서 나만의 오리지널리티를 찾아 떠나는 여정은 정말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하지만 꾸준히 작업하며 결과물을 흘려보내는 시간들을 반복하며 어쩌면 이제야 내가 표현하고 싶은 느낌과 사운드가 무엇인지 조금씩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번 앨범 ‘emo’는 그 시작점을 알리는 앨범인 것 같습니다. 더 자유로워지며 그 어떤 벽도 두지 않고 수많은 시간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곳에서 낯선 순간을 용감히 맞이하는 마음으로 창작하였습니다. (중략)

비록 작은 구멍가게여도 제가 가져다 놓는 물건은 늘 새롭고, 최상이며 최고의 것이라는 자부심으로 음악을 하고 있습니다. 그 어딘가에서 음악을 기다려 주시며 찾아 들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와 사랑을 전합니다.

오랜 시간 지치지 않고 음악을 해온 그가 뮤지션을 넘어 페인팅에도 도전하고 전시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화가로 새로운 문을 연 마이큐를 만났다.


Q. 전시도 하시다니! 대단해요. 그림은 언제부터 그렸어요? 제가 음악을 오래 하고 단독공연도 자주 했지만 매번 하는 곳이 정해져 있었어요. 상상마당 무브홀... 제가 할 수 있는 규모의 최대치가 늘 비슷하니 오시는 분들이 지루하지 않을까 미안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2019년 전국투어 할 땐 직접 꾸며보자. 아티스트를 섭외하면 수지타산이 안 맞으니까 내가 해볼까? 마음에 안 들면 안 걸면 되니까. 그래서 상상마당 공연장을 덮을 만한 흰색 커튼에 아크릴로 글씨 써 보았는데 괜찮더라고요. 그때 처음 붓을 사 보고 아크릴을 알게 됐고 그림을 그려 봤죠.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처음부터 끝까지 누구의 도움 없이 내가 혼자 컨트롤하고 표현할 수 있는 또 다른 플랫폼을 발견한 느낌. 그러다 팬데믹이 터진 거죠. 집콕하면서 미친 듯이 그렸어요, 정말. 자다가도 그리고 싶고.


Q. 와, 그런 순간 너무 원해요. 요즘 몰입을 못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어서요. 그 시간이 중요하죠. 내가 가장 성장하는 순간이니까. 사람들은 몰입하는 순간만을 원하지만 그 순간은 오래가지 않아요. 사랑도 설레는 순간은 길지 않잖아요. 설레는 시간을 지나 이 사람을 이해하고 그런 시간들. 힘들 때 사랑하는 게 진짜 사랑이지 기분 좋을 때 사랑하는 게 사랑인가요. 그건 강아지도 할 수 있죠. 좋은 순간을 보내고 계시네요.


Q. 그림을 그린다는 건 선택을 하는 과정이라고 하셨는데 어떤 부분에서 그랬어요? 색도 그렇고 위치 선정도 그렇고 용기 없으면 못 하는 것 같아요. 매 순간 붓을 드는 건 두렵거든요. 이게 맞을까? 틀릴까? 삶도 그렇잖아요. 내가 지금 하는 이 선택이 맞나? 회사 여기 다니는데 저기로 옮겨볼까? 하지만 붓질을 하면 되돌릴 수 없어요. 덮어도 남거든요. 미세하게 두께가 달라진다거나 질감 차이가 난다거나. 그런 걸 생각하면 선택에 신중해야 되지만 또 어쩔 땐 신중 안 해야 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영혼이 건강해야 되고 맑은 물에 있어야 하죠.


Q. 맑은 물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나요? 너무 힘들지만 노력하죠. 매일 주문하죠. 우린 완성형이 아니기 때문에. 완벽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신에게 도전하는 행위라서 완벽할 수도 없고. 가장 중요한 건 내 약함을 인정하는 것 같아요. 그게 가장 용감한 거 같아요. 요즘 자기 PR 시대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 장점만을 부각하는 건 자기가 아닌 것 같거든요. 나만이 아는 모습. 그게 진짜 나 아닐까요.


Q. 창작도 그 과정의 일환인가요? 실패가 근육을 만드는 점에서 그렇죠. 음악은 저를 비우는 과정이거든요. 세상이 인정해 주지 못하는 거에 대한 열등감이 저도 있었고, 지금도 불쑥불쑥 나올 때가 있지만, 밀어내려고 노력했고, 그래서 많이 편안해졌어요. 그래서 요즘엔 아무 생각 없이 그려요. 우리 무의식 속엔 아픔, 상처, 기쁨 다 있기 때문에 그리다 보면 그림이 나에게 다가와요. 내가 그림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나는 그냥 시작하면 돼요. 시작을 하면 그림이 나를 그려주게 만드는 것 같아요.


Q. 시작하는 용기도 어려워요. 그건 그냥... 하면 돼요. 생각하면 절대 시작 못하고 몸이 해야 돼요. 마음은 계속 두렵고 재보고 그러는데 몸이 하면 돼요. 저거 치워야 하는데 귀찮아. 그럴 땐 그냥 몸이 하면 돼요.

 

Q. 돈 받고 하는 일은 그게 되는데 더 창작적인 분야에서는 몸이 먼저 하는 게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각자 성향도 다르고, 본인만의 짐을 짊어졌을테니 쉽게 말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우리는 버릇에 익숙하기 때문에 버릇을 들이면 그렇게 돼요. 부정적인 사람이다? 부정적인 생각을 밀어내는 연습을 하면 되죠. 당연히 쉽지 않죠. 오랜 시간 연습을 해야 하죠. 그래도 해 봐야 아는 것 같아요. 모든 건 연습이 필요하고 적응기간이 필요한 거니까.


Q. 당신은 연습해서 더 잘하게 된 감정이 있나요? 저는 창작을 하고 사람들에게 선보이는 입장이기 때문에,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있죠. 제 결과물을 더 많은 사람들이 손뼉 쳐주고 대박이다 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지만 저는 그 인정을 내려놓는 연습을 계속했죠. 내 욕망만큼 안 따라줄 때. 안 따라왔고 늘. 부정적인 생각도 했어요. '니들이 모르는 거야.' '내가 앞서가는 거야.' 그런 걸 밀어내는 시간을 가졌죠.


Q. 그런 생각을 하면서 버텼나요, 아니면 그런 생각을 안 하도록 노력했나요? 그때그때 깨닫는 걸 계속 적용했던 것 같아요. 어쩔 땐 화를 내 보기도 했고. 그래서 넘어지기도 하고. 그러면서 단단해지는 거죠. 저에게 음악은 직장이에요. 저는 공장의 노동자고요. 음원 발표하면 아무것도 안 봐요. 좋네 안 좋네, 사실 이런 말들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정말 잘 됐으면 제 귀에도 들리겠죠? 좋아해 줄 사람은 계속 좋아해 줄 거고. 아닌 사람은 아닌 거고. 욕할 사람은 욕하는 거고. 제 영역은 거기까지. 본질에 충실하려고 해요.


Q. 본질에 충실한 게 뭘까요? 기자님의 업을 예로 든다면... 인터뷰를 진솔하게 해서 그 사람이 얘기한 내용과 온도를 정확히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겠죠? (클릭수를 유발하기 위해 자극적인 기사를 안 써야겠네요ㅎㅎ) 사실 요즘 같은 시대에 필요한 걸 수도 있으니 '그건 아니에요.'라고 제가 말할 순 없지만, 저널리스트의 본질은 인터뷰 글을 통해 인터뷰이에 대한 온도를 정확히 전달하는 것일 텐데 어렵잖아요. 나의 ‘아’와 상대의 ‘아’는 너무 틀린 ‘아’이기 때문에. 그래서 계속 노력이 필요한 거죠. 음악 하는 사람은 어떡하면 내가 이 음악에 진심을 담아 사람들이 들었을 때 행복할 수 있을까. 좋아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좋은 음악을 만드는 거. 그게 음악가의 본질이지, ‘이걸 어떻게 알리지? 요즘 이게 대세던데...’ 이건 음악가의 본질이 아닌 거죠. 음악으로 유명해지는 건 본질이 아닌 거죠.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순서가 바뀐 거 같아요.


Q. 요즘엔 일단 유명해져야 하고 그렇게 되길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초기 창작자분들 인터뷰하면 거의 다 유명해지는 게 꿈이라 해요.  유명해지는 건 힘든 삶이에요. 대가 지불이 있어요. (대가 지불이 있나요?) 있죠. (당신도 유명하잖아요.) 글쎄요. 저라는 사람보다는 음악이 조금 더 알려진 것 같아요. 마이큐 음악은 알아도 마이큐는 모를 수 있으니. 저는 그냥 제 창작물로 열심히 꾸준히 해서 다가가고 싶어요.


Q. 선생님 창작자로 정말 열심히 사시네요. 네. 저 자신에게 손뼉 쳐주고 싶어요. 포기하지 않는 거에 대해서. 아직도 해보고 싶은 게 많아요. 이 사람 이런 것도 하네? 이 스타일은 뭐지? 이 장르는 뭐야! 이런 걸 선보이고 싶죠. 이거 입어 봐. 너에게 잘 어울릴 거야. 멋있지? 좋지? 행복하지? 바로 이거야!


Q. 옷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GQ와의 인터뷰에서 '어떻게 하면 옷 잘 입어요?' 물으니 '나답게'라고 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나다운 것'이 좋다는데,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다 멋있는 사람들이에요.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그 말을 받아들이고 실현할 수 있죠? 그런데 지금 말씀하신 거에서. 기자님 마음속에 비교 대상이 이미 규정되어 있지 않나요? 이 사람은 멋진 사람, 이 사람은 아닌 사람. 그거부터 깨야 돼요. 저기 지나가는 할아버지, 추워서 큰 잠바 입은 건데 제 눈에는 너무 멋지거든요. 패션에 관심 없는 모르는 직장인 친구의 룩도 멋있죠. 그 친구가 입는 옷은 생활이니까. 이런 게 멋, 자기다움. 우리는 패셔너블한 거 멋있다고 하지만 저는 오히려 누군가는 안 멋있게 봐도 내가 편하고 내가 하는 일에서 적합하고 깔끔하면 되는 것 같아요.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이런 것도 있어하는 거? 이런 게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게 멋진 것 같아요.


Q. 오늘 가까이서 얘기하니 '마이큐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하나로 규정해서 쓰기 참 어렵고 조심스러운 것 같아요. 당신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결국 어떤 사람이죠?

저는 표현하는 사람이에요.


Q. 표현 왜 하고 싶은데요? 이건 창작자로서 사명감 같은 게 아닐까요. 사실 무에서 유를 창작한다는 거 위험한 일이거든요. (왜요?) 왜냐하면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보고 들은 것들에 영향을 받잖아요. 지나가다가 쓱 본 장면? 내가 보려고 한 게 아니어서 기억에 없다 생각하지만 우리 뇌엔 이미 정보가 들어왔고 쌓이거든요. 그런데 음악은 심지어 누군가 찾아서 귀에 꼽고 듣잖아요. (그러네요?)  엄청 위험하죠. 누가 기자님 귀에 속삭일 수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 비밀 얘기?


Q. 헉! 악마의 속삭임... 되게 위험한 거예요. 그리고 갤러리. 누군가 시간을 내서 찾아오잖아요. 들으러 오고 느끼러 오고. 그 사람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 무섭죠. 저는 페인팅에도 생명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무에서 유를 만들어 생명을 불어넣는 행위가 창작이니까. 그래서 건강하려고 노력해요. 우울함을 노래한다 해도 그걸 듣고 더 우울해지는 게 아니라 그걸 통해 '나도 그래' 하며 공감하고, '하지만 우리 이 우울에서 벗어나자. 같이 이겨 내자' 이걸 해내고 싶죠. 페인팅에서도 건강하고 활동적인 거. 더 꼬맹이 같고 순수한 거. 그런 걸 하고 싶죠. 쉽진 않겠지만요.


Q. 건강함과 꼬맹이 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죠? 우리는 자꾸 무언가를 찾으려 하는데 밸런스 있게 음식 먹고, 유제품 적게 먹고, 야채 많이 먹고, 가끔 라면도 먹고, 자연. 동네를 산책하고, 차가운 공기를 느끼고. 그게 특별한 건데 자주 잊는 것 같아요. 내가 무언가를 느낀다는 건 엄청난 건데. 추위를 느끼고, 더위를 느끼고, 땀을 흘리고. 이것들이 내 몸과 마음을 유지하는 것들인데 세상은 사람들이 늘 큰 걸 찾게끔 만들어요. 행복하면 이래야 할 것 같고 저래야 할 것 같고. 그럼 행복해질까요? 저는 아니라고 봐요.


Q. 그래서 오늘... 행복하시나요?

네 행복하죠. 요즘 너무 행복하죠.


Q. 2022년에는 어떡하고 싶어요?

전시 스케줄이 잡혀 있어요. 제가 전시를 한다는 건 여전히 놀랍기도 하고 재밌기도 해요. 의도하지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된 거여서. 그래서 2022년에도 바라는 거 없이 계속 이렇게 페인팅하고 음악 만들고 할 것 같아요.


Q. 물 흘러가듯 사시네요. 하지만 열심히 사시군요.

물 흘러가듯 살려고 노력해요.


Q. 그래도 선생님을 움직이게 하는 게 있을 것 같아요. 그게 뭐예요?

터널 끝에 빛이 조금 보인다는 생각으로 그 빛을 향해서 무의식적으로 계속 걸어가는 느낌이 들어요. 빛이 없을 수도 있고 있을 수도 있는 건데, 있다고 믿는 거죠. 그 빛이 뭘 의미하는지도 모르지만 일단 빛을 향해서. 어두운 곳에서 벗어나고 싶잖아요. 빛이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그걸 향해 가야 해요. 멈추면 도달할 수 없잖아요. 그게 원동력인 것 같아요.


Q. 아... 답변 정말 감사드려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여쭤볼게요. 평소 핸드폰으로 뭐 봐요? 인스타그램? 스테판 커리 농구선수도 좋아해서 유튜브로 많이 찾아봐요.


Q. 그 사람이 누구죠?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농구계 슈퍼스타인데 험블 해요. 한 가정의 아빠고 부인을 사랑하고. 그래서 멋있고, 그 사람의 게임을 보면 영감이 아주 그냥… 샘솟아요. 힘을 얻고 희망을 얻어요.


 

마이큐가 추천한 스테판 커피의 영상


이 인터뷰는 천재 일러스트와 함께 갔다. (그녀는 19살 때 나에게 마이큐 음악을 알려준 16살 때 만난 친구다. B.F.) 그녀에게 물었다. 너는 왜 마이큐를 좋아하냐고. 그러자 그녀는 답했다.



그날 이후로 내 꿈은 진실된 사람이 되었다.


모방해서 성공하는 것보다 순수 내 것으로 실패하는 게 낫다.


그리고 무언가를 잘하고 싶어서 미루고 싶을 때마다 생각한다. 시작하는 용기만 내보자고. 그럼 그게 나에게 올 거라고.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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