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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성은 Jul 16. 2021

이랑의 아무도 다치지 않는 음악 수업

2018년에 쓴 일기

오늘은 미디액트에서 하는 <이랑의 아무도 다치지 않는 음악 수업> 4번째 시간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이 수업 이름이 왜 아무도 다치지 않는 인지 조금 알 것 같다. 이 수업은 음악수업이라기보단 집단 상담 시간이다. 


음악을 만들려면 가사가 있어야 한다. 가사를 만들려면 글을 써야 한다. 자기 안에 있는 이야기를 써야 한다. 사람들 안에 무엇이 있는지 이랑은 계속 물어본다. 그리고 그것을 끄집어내기 위해 애쓴다. 


매일 일기를 쓰라고 했다. 나는 한겨레 교육문화센터에서 100일 글쓰기를 하고 있으니 숙제를 안 해 가도 된다고 생각하다가 큰 코 다쳤다. 100일 글쓰기에서도 못 하는 내밀한 이야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내밀한 이야기에 대해 말했고 이랑은 그걸 듣자 너무 재밌는데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 이야기에 대한 증거자료들을 수집해 다음 수업에 가져가기로 했다. 


숙제 검사가 시작되었다. 지난 1주일 동안 생각한 한 가지에 대해 돌아가며 말했다. 그런데 수업에 온 9명 중에 4명이 무기력에 대해 말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랑은 말했다. 


‘제가 이 수업을 6년간 해오고 있는데 사람들이 갈수록 더 아파하는 것 같아요... 저 때문일까요...? 어떻게 해야 덜 아플 수 있을까요’ 원래는 기타도 배우고 해야 하는데 사람들이 너무 아파해서 그 이야기를 다 듣다 보니 시간이 다 갔다. 수업시간을 3시간에서 6시간으로 늘려야겠다고 했다. 


음악과 에세이와 인터뷰에서 본 이랑 역시 그런 시간을 오래 겪어 보였다. 하지만 실제로 본 그녀는 단단한 사람이었다. 그 과정을 통과하고 서른이 된, 그리고 또 더 시간이 지난 어떤 사람. 무기력을 호소하는 사람에게 그는 이런 말을 해 주었다. 


‘저도 그런 적이 많았어요. 저는 고등학교를 그만두었거든요. 그 이후로 출가를 했고 일을 하기 시작했죠. 저에게 가난은 아주 큰 화두였어요. 대학에서도 작업실에서 살았어요. 거기서 씻고 자고 했어요. 그러면서 생각했죠. 내가 좀 더 큰 책상을 가졌다면, 내가 좀 더 돈이 많았다면, 진짜 멋진 작업을 할 수 있을 텐데. 그래서일까. 늘 화가 나 있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흘러 그 시절을 뒤돌아 보니 그 시간들이 너무 아까웠어요. 아무것도 안 해 버린 시간들이 너무 아까워... 가난했던 19살의 나와 아이패드를 가지고 작업실이 있는 33살의 저가 있어요. 하지만 이런 장비들을 더 갖췄다 해서 그런 마음이 사라지는 거 아니거든요. 지금도 여전히 그래요. 작업실이 더 크면 좋겠다. 더 좋은 장비를 가지면 잘할 수 있을 텐데. 그런 마음은 늘 있죠. 하지만 19살 땐 19살의 작업을 했어야 했어요. 20살 땐 20살의 작업을 했어야 했고요. 그런 것들이 쌓여야 해요. 지금 나를 초라하게 하는 큰 것들을 그만 생각하고, 지금 이 시간에 당장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들부터 생각해요. 이를테면 음료수를 사는 것 같이 작은 것... 그런 작은 걸로 내 기분이 더 좋아질 수 있다면... 그래서 뭔가를 시작할 수 있는 환경을 세팅하여야만 해요.’


이랑이 이런 말을 해서 좀 신기했다. 에세이 속 그녀는 19살 때 10살 많은 남자를 사귀면서, 그 사람이랑 너무 같이 있고 싶어서, 그 사람 회사에 가서, 돗자리를 깔고, 그 옆에 누워서 하루 종일 붙어있던, 계속 울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무기력 저도 너무 오랜 시간 겪었고, 제 친구들도 그런 친구들 너무 많고. 저도 가끔 그렇죠. 그래서 저는 종교를 만들었어요. 세상엔 믿을 게 없고, 그리고 전 창작자인데 창작자가 아무거나 믿을 수 없잖아요. 그래서 제 종교를 만들어요. 믿는 게 아주 어려운 일인데 노력하면서 믿을 거리들을 만든 거죠. 저는 그렇게 제 종교를 만들어서 그걸 혼자 믿고 따르며 생각해요. 가끔은 찬송가도 만들어요. 사람들은 이랑이 3집을 냈네 라고 하겠지만 저에겐 사실 찬송가예요. 친한 친구들 만나면 이렇게 말하죠. 내가 종교 만들었는데 하나 믿어볼래?’


음악을 만드는 것, 소설을 쓰는 것, 영화를 만드는 것. 생각해보면 예술이란 것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거기에 살을 붙여 나가는 과정이다. 그렇게 치면 이랑은 아주 당연한 작업을 해 나가고 있는 거였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요즘 이런 생각을 해요. 내가 약해지면 누가 나를 구원해줄 것 같다. 이상하게 이런 믿음이 자꾸 들어요.’ 그러자 옆에 있는 사람은 말했다. ‘저는 딱 그 반대의 생각을 하는데. 내가 약해지면 아무도 나를 거두지 않을 것이다.’ 각자의 믿음들이 충돌했다. 그 순간 100일 글쓰기 첫 시간이 생각났다. 


그때 나는 나에게 아주 질려 있었다. 나라는 인간의 패턴이 너무 뻔하게 느껴져 나에게 지겨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직업도 거짓말로 말했다. 무언가에 화가 많이 나 있었고, 맨날 울고 글로 화를 냈던 것 같다. 지금 나는 어떨까. 지금의 나는... 그때에 비하면 평화로운 것 같다. 몇 가지 고민과, 몇 가지 성가신 것들이 있지만 나쁘지 않다. 2018년 6월의 심경이다. 


어떤 사람은 이런 얘기를 했다. ‘저는... 너무... 평범해지고 싶어요... 백팩을 메고 캠퍼스를 걸으며 기말고사를 보는 그런 대학생들... 너무 부럽고 저도 그렇게 되고 싶어요...’ 그 사람은 아주 힘이 없어 보였다. 학교를 안 다니는 걸까? 퀴어일까? 그러자 이랑이 평범함에 대해 말을 시작했다. 


‘저는 가끔 영상 작업도 하는데 사람들이 저에게 이렇게 부탁해요. '평범한 40대 가장’ 역이 필요해요. ‘평범한 20대 청년’으로 그려주세요. 그런 요구를 하면 저는 물어요. 몇 번만 물어보면 그 평범이란 환상을 깨지죠. 이를 테면 ’ 백팩을 메고/캠퍼스를 거닐며/기말고사를 공부하는 20대/가 있다고 쳐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 그려지나요? 그럼 하나씩 물어봅시다. 그 사람은 어떤 과일까요? 인문계? 공대? 예술대? 기말고사는 어떤 과목을 치는 걸까요? 백팩을 메었다면 브랜드는 어떤 걸까요? 대학도 마찬가지예요. 서울에 있는 대학교인지, 지방에 있는 대학교인지? 기말고사 공부는 어떤 식으로 할까요? 학점에 목숨을 거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커닝도 할 수 있는 사람일까요? 너무너무 다양해요. 너무너무 다르고요. 그 어떤 평범해 보이는 사람도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어요.'


어떤 수강생은 언론고시 준비생이었다. 기자가 되고 싶어 했다. 나는 그 사람을 아는데 그 사람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글을 아주 잘 쓰는 사람이다. 나는 그 사람이 쓴 독립 서적까지 샀었다. 하지만 그 역시 인서울 대학의 졸업한 언시생들이 그렇듯, 신문사에 들어가는 거 외의 길에 대해선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최선을 다해 취준을 하는 것도 아니어서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 말을 듣자 이랑은 물었다. 혹시 취업을 안 하고도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아냐고? 그녀는 모른다고 했다. 이랑은 그걸 찾아보길 권유했다. 그러면서 자기 이야기를 했다. 


‘저는 고등학교 때 학교를 안 다녀도 된다는 옵션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만약 중학교 때 그걸 알았더라면 저는 중학교 때 학교를 그만뒀을 거예요. 그렇게 패기롭게 학교를 그만뒀죠. 하지만 너무너무 불안했어요. 이런 길을 가는 다른 사람들이 있는지에 대해 잘 몰랐거든요. 그래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학교를 그만뒀을 때 할 수 있는 옵션들을 더 많이 알았더라면 그때 그렇게 불안해하며 무서워하지 않았을 텐데... 자신을 불안하지 않게 만들어 주는 여러 길을 알아놔야 해요. 그건 너무 중요해요.’ 


이야기가 끝나자 30분 정도의 시간이 남았고, 그제야 우리는 기타를 꺼내고 노래 만드는 법에 대해 배웠다. 그 날 배운 코드는 E와 D였다. 가장 쉽고 간단한 코드. 이것만으로도 음악이 만들어질까? 손가락으로 코드를 짚어가며 조금씩 변주하는 법을 이랑은 가르쳐 주었다. 여전히 미심쩍었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거렸던 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랑의 노래 <럭키 아파트>가 단 2가지 코드만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듣고 나서였다. 


벌써 수업의 반이 지났다. 4주 후에 우리는 곡 하나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그 안에 내 비밀을, 진실로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을까. 우리는 아무도 다치지 않으면서 조금씩, 서로를 보여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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