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만난 <쉬운 천국> <우정 도둑> 유지혜 작가 인터뷰
그는 자주 오해에 시달린다. 책 5권을 내고, 메일링 구독 서비스 ‘유지혜 페이퍼’를 시즌15까지 진행하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돼가지만, 여전히 누군가는 그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나 사랑스러운 사진을 보며 ‘작가답지 않다’고 생각한다. 여행지에서 글을 써온 이력도 한몫한 다. ‘뉴욕을 또 가요? 여행 가지 않고서는 글을 쓸 수 없나요?’ 환상에서 깨어나길 종용하는 사람들의 냉소를 들으면서도 그는 다시 미국 뉴욕으로 떠난다. 독자는 일주일에 두 번, 메일 함에 도착하는 그의 글을 기다리며 낯선 꿈을 꾼다.
“20대 때 저는 동대문에서 장사하며 돈을 벌고 여행 가서 다 쓰고 돌아오는 생활을 했어요. 하지만 그 일이 행복하진 않았죠. 옷 입는 건 좋아하지만, 사업가 기질은 없었거든요. 그때 아빠가 이런 얘길 했어요. ‘지혜야, 나는 네가 영혼을 파는 일은 안 했으면 좋겠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글만 써보는 건 어때?’ 그건 택배기사인 아빠의 꿈이기도 했어요.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 떠돌며 사는 것. 그때 결심했어요. 이 일만 해야겠다. 다른 것들은 포기해야겠다.”
28살이던 2019년, 그렇게 그는 광고로 돈을 벌 기회를 포기하고 연재에 집중했다.
2022년 봄부터 ‘유지혜 페이퍼’를 구독한 나는, 인플루언서로서 그가 느끼는 수치심 이 글에 깊이 녹아 있음에 조금 놀랐고, 그가 ‘정통 작가’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번복하며, 벗겨질 준비를 하는 모습을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는 중이다. 그리고 2023년 가을, 그가 뉴욕에서 보내는 메일을 구독하며 나도 모르게 계속 답을 보내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이 문장 너무 공감돼요.’ ‘하… 존잼.’ ‘그런데 이 글은 좀 진부하네요.’
“지금 저한테 일어나는 일이 소화되기 전에, 더 리얼하게, 사랑스럽지 않게 쓰고 싶었어요. 논란의 여지가 있더라도요. 그러다 보니 정말 다양한 반응이 왔어요. ‘너무 좋아요’부 터 ‘너무 싫어요’까지. 악플에 시달린 이야기를 썼을 땐 이런 답장도 왔어요. ‘그런 안 좋은 얘기 하는 사람들 다 시궁창에 산다. 그런데 지혜님은 환상 속에 사는 것처럼 보여서 당신 글을 읽는 건데, 이런 사실적인 글을 읽으면 내가 너무 힘이 빠진다, 그냥 사랑을 보내달라, 나는 그 세계에 살고 싶다.’ 어떤 마음인지 알아요. 하지만 저도 이제 30대가 됐고, 실제 제 모습은 사랑스럽지만은 않아요. 산만하고, 터프하고. 그 괴리를 좀 좁혀보자. 그래서 모난 글이 차라리 좋은 것 같아요.”
어쩌면 작가들의 최종 목표는 거의 비슷할 수도 있겠다. 진실되게 쓸 것. 그러기 위해, 진실되게 살 것. 그가 뉴욕을 사랑하는 이유도 이 도시가 그를 살게 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사랑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을 내면서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몇 안 되는 애증의 말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뉴욕에 오면 ‘사람을 좋아한다는 게 이런 거였지…’ 느껴요. 뉴욕이란 곳이 혼돈 그 자체잖아요. 저도 완전 산만하고 정신을 못 차리는 애인데, 이 도시도 정신을 못 차리는 도시다 보니 에너지가 딱 맞는 거예요. 아무도 나한테 뭐라 하는 것도 없고. 저를 받아주는 도시, 우리 아빠 같은.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뉴욕에 와봐! 뉴욕 여행을 무조건 해봐!’ 이게 아니라, 그 사람이 어디에 있든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어요. 왜 좋아하는 립스틱 하나만 있어도 누굴 만나면 자신감이 생기잖아요. 글이 안 써질 때 좋아하는 시집을 읽다 보면 ‘아, 내가 이런 걸 쓰고 싶었지’ 하는 생각이 떠오르듯이. 그렇게 사람들이 스스로를 더 잘 알고 좋아하게 만드는 글을 쓰고 싶어요.“
어쩌면 이 인터뷰는 그 수혜를 받은 대가로 이뤄진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그의 메일링을 구독하며 ‘남의 이야기인데 참 재미있구나, 나도 내 얘기를 써보고 싶다’는 용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뉴욕에 몇 달 머무는 거로 글을 쓰는 제게 누군가는 냉소해요. 당신은 뉴욕에 대해 모른다고. 하지만 <파친코>의 이민진 작가가 한국에 안 살아봐서 그런 역사에 대해 쓸 수 있듯이, <H마트에서 울다>의 미셸 자우너도 한국에 방학 때만 갔기에 짜장면을 신선하게 써낼 수 있듯이, 유학생이 한국을 욕하며 낯선 땅에서 버티는 자신을 긍정하듯이, 누구나 다 생각이 다르잖아요. 그 모든 생각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그러면서도 내가 가진 생각을 다른 사람한테 휘둘리지 않고 써내고 싶어요.”
과장하지도 않고 축소하지도 않고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 어쩌면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어려운 일 아닐까.
“여기서 저한테 웃어주는 사람들을 보면서 제가 가진 순수함, 행복할 수 있는 역량을 다시 좀 찾은 것 같아요. 물론 그 사람들 표면적으로 웃어준다고 냉소할 수 있지만 제가 느낀 건 그게 아니기 때문에. 내가 느낀 걸 일단 믿고, 그게 나중에 반드시 배신당하더라도, 그거는 그때 쓰겠다. 남을 지적하고 깎아내리는 게 똑똑한 것처럼 보이는 문화 속에서, 내가 마냥 행복한 게 아니고, 그런 걸 숱하게 겪었지만 끝내 웃는 걸 택했다고. 그러기 위해선 제일 중요한 걸 쓰지 않아야 해요. 나의 어떤 부분을 다 말하지 않고 비밀로 남겨두면, 내가 미워하는 사람도 그 사람만의 아름다운 비밀이 있겠거니 짐작하며 함부로 판단하지 않게 되니까. 그래서 저는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쓰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