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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형준 Nov 11. 2015

디자이너의 구매욕구와 그 함정



나는 그래픽 디자이너다.

다른 직군의 사람들과 모임을 가질 때, 처음에는 별 관심이 없다가 내 직업을 알게 되면 나를 굉장히 특이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분명 비슷한 취미를 가져서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내 평소의 습관이나 행동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는데, 여기에는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대한 일반인들의 선입견이 한몫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하앍...


그 선입견 중 하나를 예로 들어보자.

대부분의 디자이너가 그렇겠지만 나 역시 새롭고 세련된 것들을 보면 구매 욕구를 참지 못한다. 그리고 고민 끝에 지르고 만다. (고민하는 습관마저 들이지 않으면 가진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몇 년 내에 파산할 수도 있다. ) 

물론 좋은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선  명망있는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접하면서 견문을 넓히는 것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그것이 소비욕구와 맞닥뜨릴 땐 '나는 디자이너니까 좋은 디자인 제품이 필요해, 디자이너는 최신 디자인 제품을 가져봐야 좋은 안목이 생기는 법이지', 등의 반복되는 자기합리화를 통해 결국 충동구매를 한다. 물론 이러한 소비습관이 디자인 실력과 비례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향상시켜 주지도 않는다. 시간이 지나 불필요해진 물건들(애초에 실용적이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지만.)을 보며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져보지만, 그 순간일 뿐이다.




가끔 내 인생이나 가치관, 혹은 신념에 대해 얘기할 때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는 물건이나 브랜드로 답변을 대신한다. 예를 들면,


'나는 이케아가 좋아. 이 브랜드가 가치가 얼마나 높은지 아니? 이게 얼마나 멋진 디자인인지 알지? 나는 애플의 철학을 좋아해. 마이클 코어스 같은 디자이너의 삶을 살고 싶어.'


가치관을 설명할 때 알고 있는 브랜드나 물건들을 나열해서 설명함으로써 그 물건에 내 자신을 투영하고 동일시하며, 자아를 뒷받침해주는 받침목으로 삼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을 브랜드에 비유하는 것 외에는 딱히 설명하지 않는 이러한 태도는 은연중에 좋은 디자인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것들을 폄하하거나 비난하기도 한다.


'이 브랜드를 모르니? 그건 디자인이 너무 평범해. 식상해.'


나의 설익은 사유는(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거나 자극시키려 드는 철부지 같은 생각이) 디자인을 우리들만 향유할 수 있는 영역으로 만드는 것이고, 평범한 이들이 선입견을 가지게 하여 우리들과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물론 이것은 단편적인 오해에서 비롯된 극히 드문 사례일 뿐이고, 디자이너들이 대부분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늘 신중히 되새겨보아야 할 부분이긴 하다.


나는 어느새 평범한 사람들과 단절된 하나의 영역, 즉 아무런 제약 없이 우리들끼리 지배할 수 있는 하나의 영역을 만들고자 한 것은 아닐까.






“예술은 유혹적인 금단의 열매이다. 이 열매의 가장 깊은 단맛을 한번 음미한 사람은 실제적이고 활동적인 일은 다시 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는 점점 더 깊이 자기만의 좁은 쾌락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 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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