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타이포 잔치를 다녀와서
예술과 대중적 인기는 항상 어떤 긴장관계를 유지해왔다.
예술의 사회적 성공 여부는 심미성이나 독창성과 상관없이 일반인들의 기준에 따라 정해지는데 이들은 예술적으로 좋고 나쁜 점보다는 그들의 삶에 영향을 주거나 감동을 주는 여러 요소에 반응을 보인다. 예술적으로 가치 있는 것이 매력적인 소재로 보였을 때만 흥미를 갖기 때문이다.
어릴 때 미술관에 가서 반 고흐나 모네, 피카소, 몬드리안 같은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을 보면, 매우 아름답고 인상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당시 내가 느꼈던 감정들이 과연 진짜 내 것일까, 단지 이 그림들이 일반적으로 훌륭하다고 평가되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머리로는 아름답고 뛰어난 예술작품이라고 인지할 수 있지만 실제론 아무런 내적 동요도 안 일어났기 때문이다. 구글에서 반 고흐의 그림을 찾아본 것과 실제 고흐의 그림을 미술관에서 바라본 경험을 비교할 순 없다. 하지만 단순히 감명을 받는 것에 있어서는 그렇게 큰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음악도 마찬가지로 콘서트홀에 가서 절도 있고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연주회를 보면 아름다운 선율과 하모니를 들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나에게 어떤 특별한 영감을 주었는지, 진정한 음악적 향연을 느낄 수 있었는지 고찰해 본다면 연주를 듣기 전, 후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얼마 전 대학원을 다니는 친구와 서울 문화역 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2015 타이포 잔치'를 다녀왔다.
'타이포 잔치'는 2년마다 국내 그래픽 디자인 업계가 주최하는 유서 깊고 전통 있는 디자인 전시회다. 평소 시각 디자인 분야에 관심을 보이던 친구이기에 별다른 부연 설명 없이도 어느 정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 완전히 나만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한 작품이 지날 때마다 끊임없이 나에게 의문을 제기했고, (디자인 이론과 역사 수업만 들으면 졸던 나였지만) 이에 질세라 갖은 미사여구에 아는 지식을 총동원해서 이해시켜 주고자 노력했다. 그렇게 전시를 보는 내도록 묻고 답하는 설전이 이어졌고 전시장을 빠져나올 때쯤 우리는 거의 탈진했다.
친구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전시장에서 오갔던 말들을 곰곰이 생각해봤다. 과연 그래픽 디자인의 어떤 맥락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었을까. 물론 그래픽 디자인뿐만 아니라 어떤 예술이건 그 역사가 오래되면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서 과거의 발전 단계들을 알아야만 한다. 그러나 단지 디자인의 이론과 역사를 이해하지 못해서 숫한 의문을 가졌다고 하기엔 서로의 시각 차이가 컸다. 그는 스타트업에 통해 디자인을 접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시중에 유통되는 디자인, UX 서적과 디자인 방법론에 관련된 책들을 읽으며, 디자인은 논리적이며 정형화된, 규칙이 있는 학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에 반해 '타이포 잔치'는 작가들의 개성적이고 회화적인 성격이 짙은 전시였기에 뒤늦게나마 그에겐 조금 난해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좋은 작품들을 많이 보고 나온 직후였지만 조금은 아쉬웠다.
2015년 오늘 치열한 문화 컨텐츠 시장 속에서 수많은 예술 장르가 충돌하고 경쟁하는데, 각 분야의 순수 예술들은 장르 특유의 발전과정을 거치는 사이에 일종의 암호문처럼 표현되어졌다. 일반인들은 더 이상 특별한 훈련을 받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힘들게 되었고, 전공자들과 관심을 가지는 소수만이 향유하는 문화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예술을 모두가 똑같이 즐기고 이해하긴 힘들겠지만 좀 더 폭넓은 대중의 참여가 이루어질 수는 있다. 예술이 대중화를 지향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대중과 소통하고 교류하며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 예술을 향유하고자 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예술을 추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중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과 함께 하지 못하면 결국 침체를 거듭하게 되고 소수의 문화가 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 예술의 순수성을 지키고자 일반 대중의 관심을 소홀히 한다면 영원히 서브 컬처에 머무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진정한 예술작품은 본질적으로 더 적게 말하는 작품이다. 위대한 창조는 얼마나 단조로운 것인가."
알베르 까뮈
< 참고문헌 >
- 아르놀트 하우저 '문학과 사회의 예술사 3' 창작과 비평사, 백낙청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