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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형준 Dec 18. 2015

기술과 형식 너머에 있는  메시지에 주목하라

스탠리 큐브릭 전을 다녀와서




예술은 본질적으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이것은 회화나 문학, 연극, 영화, 조각, 그 밖의 모든 예술형식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전시장 입구부터 심오한 글귀가..


'스탠리 큐브릭 전'을 보고 나서 사람들은 대개 영화의 겉모습에 대해 평가를 한다. 어떤 배우를 섭외했는지, 의상이나 소품, 인테리어는 어땠는지, 무슨 촬영기법을 구사했는지, 줄거리는 어떻게 흘러가는지.

그러 당시엔 굉장히 뛰어난 연출력을 구사했던 작품이라도, 오늘날의 최신 헐리웃 영화가 보여주는 화려한 CG와 연출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이기 마련이다. 스티븐 스필버그나 제임스 카메론, 조지 루카스와 같은 후기의 감독들은 이를 뛰어넘는 연출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상을 떠난 지 16년이나 지났음에도 스탠리 큐브릭이 여전히 수많은 감독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고, 가장 존경받는 감독으로 그의 작품들이 회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다.

첫 째로 그는 같은 방법으로 영화를 찍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자신의 작품이 무슨 목적과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예술가이자 영화감독으로서 나는 누구이고 내 작품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왜 이것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오랜 시간 성찰을 거듭하다 보니 대부분의 감독들이 구조와 기술, 겉모습에 얽매일 때 큐브릭은 한 차원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그래서 영화라는 미디어를 통해 아무도 본 적 없는 그만의 예술 세계로 사람들을 인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두 번째로 영화에서 표현할 수 있는 예술 형식의 가능성을 전부 찾아냈다. 독창적인 연출기법과 롱테이크 촬영, 다양한 특수효과와 조형적 연출이 가미된 그의 실험들은 영화에 음악과 시각미술 형식까지 접목해 이야기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그리고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의도를 분명히 했기에, 로리타, 풀 메탈 자켓, 시계태엽 오렌지, 샤이닝, 아이즈 와이드 셧, 스페이스 오디세이 등 모든 주제와 장르를 아우르는 작품들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남자는 경제적 욕구와 여성에 대한 성적 정복의 무제한적 욕구에 쫓기고 있으며, 오직 사회의 압력만이 욕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저지시킨다.'

- 프로이트



이번 전시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인 로리타(Lolita, 1997)에 주목해 보았다.

영화 속에서 남자 주인공은 어린 시절 첫사랑을 얻지 못했다는 집착과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억눌려 있다가 뒤늦게 한 소녀에게 발현된다. 이는 특별한 '대상'에 대한 집착이 다른 사람을 대상으로 현실화하고 집중된 것이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뿐이라든가, 그 사람을 찾아내는 일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이라든가,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은 다른 모든 것에서 물러나는 일이라든가 하는 따위가 아니다. 단 한 사람에 대해서만 경험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새도 마조히즘적인 집착'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현대사 본능적 욕구와 욕은  끝없이 돈이나 지위, 명예를 얻는 데 도움되는 것만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면서 사랑도 진열장의 상품과 같 여기는  문제' 우리들에게 되새겨주었고자 한 게 아닐까.


영화 포스터나 자켓 디자인은 1997년도에 만들어진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세련됐다.
현대카드가 DP에 심혈을 기울인듯 하다



< 그 외의 작품들과 전시장 풍경  >

아이즈 와이드 샷.  국내에 개봉한 몇 안되는 작품 중 하나, 포스터가 인상적이다.
큐브릭 감독의 어마어마한 리서치 자료들과 제작과정을 엿볼 수 있다.
CG가 없던 시절 우주를 표현하기 위한 감독의 피나는 노력과 고민이 느껴진다.
  '시간의 연속성'에 대한 모든 이야기가 이 한 컷에 응축되어 있다.  
'풀 메탈 자켓' 포스터. 평범한 군인의 시각으로 '전쟁과 평화'를 얘기한다.


< 전시장 벽면에 새겨진 글귀들  >


전시장 곳곳에 큐브릭 감독의 철학이 새겨져 있다.




스탠리 큐브릭과 같은 위대한 감독들은 그들의 작품을 통해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모든 능력을 쏟아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감동을 주고 사고방식에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목적의식은 디자인 분야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


산업혁명 직후의 디자인은 순수미술(Fine art)에서 가져온 예술적 요소를 산업에 응용하는 픽토리얼 디자인(pictorial design) 정도로 받아들여졌으나, 19세기부터는 기술의 진보에 따른 대량생산과 실용주의 철학을 포괄한 개념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 후 20세기 초에 이르는 동안 디자인의 주된 논의는 '심미성'과 '실용성'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형식을 넘어서 모든 디자인 작품에는 '목적'이 있기 마련이고, 그에 따른 형식과 구조, 기술, 겉모습을 가지는데,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은 구조와 기술, 겉모습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찍어낸 듯한 디자인을 쏟아낸다. 작품이나 서비스의 목적을 분명히 하지 못하고 어설프게 기존의 디자인 형식을 빌려오다 보니 그저 그런, 어디선가 본 듯한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새로운 화두를 던지는 디자인의 거장들(하라 켄야, 존 마에다, 스티브 잡스, 엘론 머스크, 다이슨 등...)은 시대의 형식과 틀에 얽매이지 않고 세상을 내려다보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디자인은 그 자체가 목적일 수도, 아니면 어떤 목적에 이르는 형식일 수도 있다. 이는 사회, 문화적인 상황뿐만 아니라 디자인의 어떤 요소에 주안점을 두느냐에 따라 대답이 달라지겠지만, 사용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삶을 한 번쯤 되돌아보게 할 수 있다면  좋은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 참고문헌 >

- 스콧 맥클라우드 '만화의 이해'  1993, 비즈앤비즈, 김낙호 옮김

- 알베르 까뮈 '시지프 신화' 1997, 책세상, 김화영 옮김

- 에리히 프롬 'Art of Loving' 홍신문화사, 권오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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