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을 기념한 포스터 제작
“예로부터 흥해 보지 않은 나라도 없고 망해 보지 않은 나라도 없다. 그런데 나라가 망하는 데는 거룩하게 망하는 것이 있고 더럽게 망하는 것이 있다. 의(義)로써 싸우다가 힘이 다하여 망하는 것은 거룩하게 망하는 것이요, 또 백성이 여러 패로 갈려서 한 편은 이 나라에 붙고 한 편은 저 나라에 붙어서 망하는 것은 더러운 것이다. 이제 왜의 세력이 궐내까지 침입하여 마음대로 하고 있으니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일사보국(一死保國)하는 길밖에 없다.” - 김구
올해도 어김없이 815 광복절이 다가왔다. 1년의 절반이 넘게 지난 시점에 '올해도 허송세월을 보냈구나'라는 생각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쳤다. (서른을 앞두고) 자기성찰 시간을 5분 정도 가진 뒤,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웹서핑을 시작했다.
20분 정도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타고 가십거리를 훑어보다가, 올해가 광복 70주년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70주년을 기념한 포스터를 한 장 제작해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에 곧바로 스케치를 시작했다.
<광복 70주년>과 <대한민국_태극기>, <2015년 8월 15일>라는 3가지 키워드를 놓고, 비주얼 아이덴티티를 잡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오늘을 대표하는 메타포를 찾기 위해 고심하던 중, 문득 박근혜 대통령의 해외순방 기사를 보고,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주제로 작업을 진행해보기로 했다.
박대통령은 외교차 해외 순방이 잦다. 그런 의미에서 일국의 대통령이지만 '해외 순방을 나갈 땐 자기 짐을 스스로 싸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2번째 소재를 캐리어로 정했다. 또한 여행 캐리어에는 여러 나라의 스티커를 붙이곤 하는데, 나라별 스티커 대신 대통령의 스티커가 붙은 캐리어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곧바로 박근혜 대통령의 스티커 작업을 시작했다. 3년 전 겨울, 야당 후보와 박빙의 경합을 벌이던 모습이 문득 떠올라 첫 번째 스티커를 만들어 봤다.(미니멀리즘과 귀여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스티커가 목표다) 아웃라인의 형태가 무게중심을 잃지 않고, 최대한 덩어리감이 느껴질 수 있도록 했다.
2번 째 스티커는 당선 후 첫 공식 행사에서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모습이다. 헤어스타일에서 조형의 변화가 많아 의상과 몸의 굴곡을 단순화시켰다.
3번 째 스티커는 국정업무를 수행 중인 모습. 밤이 깊어간다. 야근을 표현하기 위해 적당한 소재를 찾다가, 창문에 비친 밤 풍경을 넣었다.
4번 째는 해외 순방을 떠나는 박대통령. 작은 크기의 비행기를 하나 그려넣어 출국하는 그녀의 모습을 표현했다. 전체적인 스티커의 짜임새와 분위기는 마음에 드나, 2프로 아쉬운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저 그런 평범한 스티커가 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아주 살짝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대통령의 사진들을 찾던 중, 유머러스한 사진을 한 장 발견했다. 학창 시절, 대학교 수업, 회의 시간 때 누구나 한 번 쯤은 해봤다던 볼펜 세우기. 멀게만 느껴졌던 대통령인데 꽤나 인간적인 모습을 발견하고 친근감이 +3. 인물 외에 책상과 의자 등의 요소가 큰 면적을 차지해서, 아웃라인을 정리하는데 살짝 애를 먹었다.
6번 째는 극심한 가뭄이 계속되자 대통령이 몸소 농가를 방문해 대책을 수립하던 중, 임시방편으로 소방관과 논에 물을 주는 모습이 담겨 있는 사진이었다. 소방관과 대통령의 컬러, 물의 조합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귀여운 스티커가 완성되었다.(개인적으로 제일 맘에 드는 스티커다.)
7번 째 는 얼마 전 발생한 메르스 사태다.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힌 사건이라 스티커를 만들기가 조금 망설여졌지만, 몸소 병원을 찾아 사태를 수습하려는 장면이 인상 깊었기에 작업을 진행했다. 다행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는 메르스 사태가 종결되었다. (배경의 글귀는 실제 사진 속의 서체와 가장 유사한 것을 사용했다)
8번 째 는 6월 무렵(?)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사건이다. 뉴스를 잘 보지 않아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여당의 대표와 대통령간의 불화가 있던 사건이다. 국민을 대표하는 자리에서 있다보면 여러가지 일이 생기기 마련인듯 하다. 2명의 인물이 대립하고 있지만, 마주 보고 있는 팔이 교차되면서 자연스럽게 공간을 메워 줄 수 있는 형태를 구 상했다.
다음은 국무총리로 인선된 분이 죽은 사업가에게 비자금을 받아 문제가 되었던 사건이다. 뉴스를 보지 않아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다. 비타 500 박스 안에 돈을 담아 줬다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사과박스 같은데 넣어서 준다는 건 들어봤는데 비타 500이라니, 뭔가 귀여웠다.
마지막은 예정대로라면 김정은(북통령)스티커였으나, 하나같이 마음에 드는 사진이 없어 북한 군인으로 대신했다. 북한 군복의 디자인이 예상외로 깔끔하고 단정했다.
총 10개의 소스 작업을 마무리 짓고, 본격적인 배치에 들어갔다.
'스티커를 출력해서 실제 캐리어 위에 붙이고, 그 캐리어를 다시 카메라로 찍은 사진' 을 포스터로 만들 계획이었으나, 주말동안 이 모든 과정을 소화해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 합의점을 찾은 결과, 캐리어 일러스트 위에 스티커를 올리기로 했다. (합성하는 방법도 생각했지만, 자연스럽게 할 자신이 없었다.)
어설픈 흰색 캐리어가 완성되었다.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내일이 되면 더이상 작업 파일을 열지 않을 것 같아, 무조건 오늘 안에 끝내기로 했다.
밝은 톤의 캐리어가 스티커와 상충해서 남색으로 바꾸고, 배경에는 덕지덕지 붙어있는 신문지를 추가했다. 수습이 안되기 시작했다.
지저분한 레이아웃을 수습하기 위해 3가지 컬러의 라인 테이프를 만들어 넣었다.좋은 선택인지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냥 진행.
최초에 만들었던 요소의 4할을 제거했다. 소스를 만드는데 들어갔던 시간이 아까워 약간 눈물이 났다. 지저분했던 신문지도 다 불 태워 버렸다. 신문지의 빈 자리는 태극무늬 패턴으로 바꿨다.
불필요한 요소들을 걷어내고 나니, 어느 정도 합의점을 찾을 수 있었다. 최초의 기획과는 완전히 달라졌지만, '디자인이라는 게 원래 그런 게 아닐까'라고 스스로 자위하며 마무리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