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가르쳐준 시간의 진심
알람을 맞추지 않게 된 건 작년 11월이다.
그다음으로 한 일은 회사를 그만두는 일이었다.
요즘 아침은 몸부터 확인한다. 눈을 뜨면 바로 일어나지 않는다. 이불속에서 숨을 몇 번 고른다. 날씨가 춥다는 말을 들으면 괜히 웃음이 난다. 출근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기분에 영향을 준다는 걸 예전에는 몰랐다.
카팔라파티 호흡과 4-7-8 브리딩. 요즘은 이 두 가지만 반복한다. 한때는 알렉산더 테크닉, 카르마 해소, 네빌링, 호오포노포노까지 꽤 열심히 건드렸다. 방법은 많았고, 나도 성실했다. 다만 몸이 바빴다. 지금은 척추를 기준으로 몸을 세우고 깊게 숨을 내쉰다. 설명하기 어려운 쪽으로 기분이 이동한다. 우주의 에너지 같은 말을 떠올리다가도, 그냥 몸이 먼저 반응한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송과체라는 단어를 굳이 꺼내지 않아도 되는 정도의 납득.
아직 사랑 그 자체로 나아갔다고 말하긴 어렵다. 다만 방향은 분명하다. 예전처럼 헤매지는 않는다.
나는 꿈을 자주 꾼다. 그래서 숙면이라는 말이 늘 낯설었다. 〈수면의 과학〉, 〈매트릭스〉, 〈인셉션〉을 볼 때마다 잠은 쉬는 시간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공간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꿈도 하나의 ‘경험하는 장소’라고 생각하게 됐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일어난 시각과 가장 선명했던 장면을 적는다. 키워드 몇 개를 남기고 GPT에게 해몽을 부탁한다. 배우 홍경도 꿈을 기록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괜히 반가웠다. 회사를 다니던 시절에는 악몽이 잦았다. 최근에는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유명 인사들이 꽤 친근한 얼굴로 등장한다. 마음의 배경이 달라졌다는 신호라면, 그 정도면 충분하다.
스트레칭은 흉추와 골반 위주로 한다. 정렬을 기준으로 몸을 움직이면 가동 범위가 조금씩 열린다. 바로 기분이 따라온다. 그래서 운동과 운이 같은 글자를 쓴다는 말이 생겼을까. 몸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하루의 결이 달라진다. 운동과 거리가 멀었던 내가 맞춤 운동을 만나 이 시기를 건너고 있다는 사실이 가끔 우습다. 인생에도 척추가 있다면, 하나쯤은 제대로 세운 셈이다.
환기를 시키고 아포테케 인센스를 태운다. 음악은 히사이시 조의 Summer 거나, 기분 좋은 아침 재즈다. 수입은 줄었지만 시간이 생겼다. 그 시간으로 한 달 내내 대청소를 했다. 공간을 섹션별로 나누고, 디퓨저와 오일을 다시 고르고, 달과 해가 겹쳐 보이는 커튼을 달았다. 기분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인색해질 이유는 없었다. 확언이나 필사보다 더 강력한 건 결국 기분이라는 쪽으로 방향이 정리됐다. 안 좋은 일이 생겨도 오래 머물지 않는다. 스위치를 바꾸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오래된 소리야나기 주전자는 집으로 보냈다. 대신 무지 주전자를 새로 들였다. 물을 끓여 소금차를 마신다. 관리의 시작은 늘 이런 데서 출발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하지만, 여성에게는 솔직히 약간의 페널티가 있다. 생물학적 나이와 호르몬 변화라는 구간을 열대야처럼 통과해야 한다는 점. 다만 그 이후를 보면 세상은 생각보다 친절하다. 스킨 보톡스, 줄기세포 시술, 홈 디바이스. 뷰티 시장은 이미 화장품을 넘어 ‘고통을 최소화한 미’로 이동 중이다. 전신 부작용이 거의 없는 클라스코테론 탈모약은 임상 3상에 성공했고, 치아 재생 약물 TRG035도 인체 임상에 들어갔다. 이제 칠십이라는 숫자는 예전과 다른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더 중요해진 건, 재미있게 나이 드는 방식이다. 욕망과 품격 사이,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온도를 유지하는 일. 미지근함이 아니라 균형에 가깝다.
주식 창의 빨간색과 파란색은 이제 예전만큼 중요하지 않다. 내 것이 아닌 이상, 그날의 컬러 테라피 정도면 충분하다. 한 주로 70% 수익을 내고 설렜던 기억으로 주식에 입문했다. 요즘은 완벽보다 타이밍을 본다. 붉은말이 뜨겁게 달리는 시기라면, 끝까지 들고 가는 용기보다 70%쯤에서 내놓는 감각이 필요할 때도 있다.
눈에 보이는 책을 하나 집어 든다. 강헌 선생님, 고미숙 작가님, 도화도르님의 글을 따라 주역과 사주를 다시 본다. 며칠 전에는 이동진 평론가도 유튜브에서 사주 이야기를 길게 했다. 나를 알고 흐름을 알면 일희일비는 줄어든다. 대신 파도를 즐길 여유가 생긴다. 깊게 배우되 재미를 잃지 않는 것. 그게 지금의 기준이다.
벌써 오후 한 시다.
제철 꼬막과 미나리, 갓 짜서 보낸 엄마의 참기름이 들어간 비빔밥을 먹어야겠다.
엄마는 아직 내가 회사에 있는 줄 알겠지.
조금 웃긴 기분이다.